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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Feb 22. 2024

노래를 못해도 좋아하는 당신에게

feat. 쿠알라룸푸르 여행기


쿠알라룸푸르의 여름은 몹시 덥고 습하다. 가장 더운 2시에서 5시의 시간을 달래줄 공간이 너무나도 절실했다. 그날 더위를 피해 우리가 선택한 곳은 라이브바였다. 빨간 밸벳으로 덮인 테이블에 높은 천장이 고급스럽고 트렌디한 느낌을 주는 장소였다. 그곳에는 드레스를 차려입고 머리를 곱게 단장한 중년 여자분이 목을 풀고 있었다. 검정정장을 멋지게 차려입은 피아니스트와 매니저인 듯이 앞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는 분위기를 보니 공연에 대한 기대감이 배가되었다. 드디어 반주가 시작되고 누구나 아는 유명한 성악곡이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기대하던 순간 그녀의 목소리가 재즈바를 가득 채웠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정성껏 부르긴 했지만 그녀의 노래는 지나치게 평범했고, 고음에서는 음이탈을 하기 일 수였다. 그러나 사뭇 진지한 태도로 노래를 부르는 그녀의 노래를 경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한곡을 마친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제 꿈은 성악가가 되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보시다시피 실력이 부족해 다른 일을 하게 되었죠. 저는 지금도 노래하는 것을 가장 좋아해서 성악 선생님께 개인지도를 받았어요. 아직 아마추어지만 이렇게 노래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합니다. 저를 잘 지도해 주신 선생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 내가 매니저로 보았던 사람은 그녀의 보컬 선생님이었던 것이다. 그 이후에 나온 남학생도 멋들어지게 음악에 취해 인상을 쓰며 열창을 했다. 가끔은 음이탈을 하면서도 몸을 둠칫듬칫 움직이며 리듬을 타는 모습에 나도 흥겨워졌다. 알고 보니 그곳은 원한다면 누구나 노래를 할 수 있는 재즈바였다.





아...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무대에는 프로페셔널한 실력자만 서야 한다는 나만의 엄격한 기준에 신선한  충격을 주는 순간이었다. 


그들의 신나는 노랫소리를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거리고 흥이 돋았다.  어느덧 나는 그들의 노래를 응원하며  즐기고 있었다.  어쩌면 남들 앞에서는 완벽해야 한다는 나의 기준은 타인의 시선을 더 중요시하는 것이 미덕이 된 한국식 고정관념이라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어릴 적부터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다 보니  무언가 하고 싶을 때도 꾹 참는 것이 습관이 된 나였다. 뒷짐 지고 보고 있으면 중간이라도 갈 수 있겠다 싶은 마음에 이런저런 눈치를 보고 살아왔던 것이다. 삑사리를 내면서도 흥에 취해 즐겁게 노래하는 사람들을 보니 왠지 이런저런 시선만을 의식하던 내 모습이 떠올라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타인이라는 상상의 관객 앞에서 나를 포장하기에 바빴던 것은 아닐까.. 늘 더 똑똑하고 잘나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착각과 불안감은  타인에 시선에 나 자신을 가둔다.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내가 주인공이 아니었던 순간들 속에서 나는 늘 잘 보이고 싶었고, 잘 해냈다고 과시하고 싶었다.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나 자신에게 솔직한 순간보다. 이런저런 부끄러움과 체면을 차리는 순간이 많아졌다. 하고 싶은 일보단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이 더 많은 의기소침한 사람이 되는 것이 곧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착각 속에서,  진짜 내면의 나를 잃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일부는 당신을 싫어할 수 있고, 그리고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당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
 알랭드 보통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 독특한 개성과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 누군가는 자신만의 소중한 것들을 펼치며 춤을 추듯 일상을 살아간다. 또 다른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타인을 의식하며 소중한 일상을 그저 버틴다. 어쩌면 실수보다 두려운 것은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나에게 정말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 조차 알지 못한 채 그저 인생을 하루하루 꾸역꾸역 살아가는 것이 아니었을까.

 

물론 아무리 연습해도 고음불가인 사람이 세계적인 성악가를 꿈꾼다면 그 사람의 삶은 실패로 끝날 것이다. 인생의 무대를 잘못 골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마추어의 무대에서 노래하면서 자신의 기량을 뽐내고 그 순간 행복하다면 그 사람은 그 순간 행복한 성악가이다. 그 무대는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고 행복하다는 이유만으로 무대에 설 수 있던 그날의 무대는 프로페셔널 음악가 못지않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체면을 차리려 헛기침을 하고 뒷걸음치는 모습보다는 훨씬 진솔하고 즐거워 보였기 때문이다. 나도 다음에는 그곳에서 멋들어진 노래를 한곡 부르고 싶다. 나에 대한 지나친 기대를 내려놓고, 실수하는 나에게도 따뜻한 격려를 보내고 싶다. 사람들의 삑사리에도 너그럽게 응원해 주며 박수를 보내던 그날의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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