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4. 강진시문학파기념관(영랑생가)
-https://www.gangjin.go.kr/simunhak/
관람시간: 09:00~18:00
관람료: 무료
휴관일: 1월 1일, 설날, 추석
문의전화: 061) 430-3372
모터사이클 전국 문학관 투어 열네 번째, 시문학파 기념관이다.
'시문학파 기념관'은 '영랑생가'와 같이 있다. 영랑생가에서 나오면 바로 옆에 '시문학파 기념관'이 있다. 생가 뒤편으로 '모란공원'이 있는데, 많은 관람객들이 기념관을 지나쳐 모란공원으로 향했고, 시문학파 기념관에 들어섰다가도 입구에서 안을 쓱 보더니 그냥 나가는 분들이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많이 아쉬운 부분이었다. 덕분에 아무도 없이 혼자 문학관을 조용히 돌아볼 수 있었지만, 영랑 생가와 달리 사람이 없는 문학관은 너무 쓸쓸하게 느껴졌다.
영랑생가는 일부 보수 공사 중이었지만, 전체적으로 잘 정돈되어 있었다. 워낙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라, 평일인데도 방문객이 많았다. 날씨가 좋아 앉아서 쉬기 좋았다.
나무와 꽃, 풀이 가득한 정원이 꼭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잘 꾸며져 있어 좋았다
그리고 곳곳에 김영랑의 시비가 있는데, 그의 시를 하나하나 읽으며 생가를 둘러보면 더욱 좋다. 오랜만에 만난 김영랑의 시. 시문학파답게 순수 서정을 노래한 덕분인지 마음이 따뜻해졌다.
'오-메, 단풍 들것네'
장광(장독대)에 골불은 감닙 날러오아
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니리
바람이 자지어서(잦아서) 걱졍이리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오-매 단풍 들것네'
- 김영랑,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누이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잔잔하게 퍼져오는 시다. 가을이 온 지도 모르고 있다가, 바람에 감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퍼뜩 가을이 왔음을 깨닫고 놀라는 누이, 추석이 곧 다가올 테고 이제 바람이 더 거세지기 전 해야 할 많은 일들이 걱정인 누이. 그런 누이를 보며 화자의 마음에 단풍이 든다. 누이가 삶의 무게를 느끼는 모습을 보며 화자는 너를 보는 내 마음에 단풍이 들었다고, 그런 나를 보라고 말하는 듯하다. 참 아름답고 순수한 시다.
영랑생가를 둘러보고 나오면 바로 왼쪽으로 '시문학파 기념관'이 있고 영랑생가와 기념관 사이로 '모란공원'가는 길이 이어진다.
1919년 3.1 운동 이후 일제는 강압적인 방식으로는 조선 통치가 힘들다는 판단하에, 보다 고도화된 지능적이고 기만적인 통치를 하게 되는데 일명 '문화통치'다. 이전의 무단통치(헌병 경찰 통치)에서 문화통치(일반 경찰 통치)로 전환하게 되면서 언론, 출판을 일부 허용하게 되는데 사실상 사전 검열을 통한 탄압은 더 가중되었다. 어쨌든, 출판이 더 자유로워지면서 이 시기부터 많은 문학작품이 쏟아져 나오게 된다.
3.1 운동이 실패로 끝나서였을까? 암울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낭만주의' 작품들이 소개되었는데 많은 호응을 얻으며, 동인지 [백조]를 중심으로 '낭만주의' 문학이 시작되었다. 당시의 '낭만주의'는 인간의 '감성을 열정적'으로 노래하기보다, '낭만적 허무'에 빠지는 경향이 짙었다. '퇴폐적 낭만주의'라고도 부르는 이 문예 사조는 김억의 '봄은 간다'와 주요한의 '불놀이'가 대표적일 것이다.
한편 3.1 운동의 실패는 무력투쟁의 필요성을 요구했는데, 사회주의 사상이 한반도를 휩쓸면서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독립운동이 손을 잡게 된다. 많은 독립운동가와 지식인들이 사회주의 사상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문학도 역시 프롤레타리아 문학(프로문학, 계급문학)이 당시의 문단을 주도하게 된다. 퇴폐적 허무에 허우적거리던 '낭만주의'는 결국 사회주의 사상의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밀려나고, 1920년대 중반 결성된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가 문단의 주축이 되었다.
이렇게 1920년대는 퇴폐적 감성의 낭만주의와 이념성이 강한 계급문학이 문단을 지배했고 이에 대한 반성으로 1930년대가 시작되었다. 카프와 같은 정치적 사상적 경향성을 반대하며 등장한 것이 '시문학파'이다. 순수한 서정과 순수 문학에 지향점을 둔 '순수 서정시'를 지향하며, 시어를 새롭게 가다듬고, 은유, 심상과 같은 기교, 세련된 시상 등을 중시하며 현대시의 출발점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래서 시문학파 기념관 입구에 있는 '시문학파 3인상' 설명 글에서도 언급하고 있다.
이들이 발행한 [시문학]은 당대를 풍미했던 프로문학(카프 문학)과 낭만주의 문예사조에 휩쓸리지 않고 이 땅에 순수문학을 뿌리내리게 한 모태가 됐다.
시문학파는 문학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김윤식, 정지용, 박용철뿐 아니라, 그 유명한 김영랑, 신석정, 변영로, 이하윤 등이 시문학파의 주요 동인들이다.
입구는 밝게 빛이 들어오지만, 점점 들어 갈수록 조명이 어두워진다. 어떤 의도에서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관람객 입장에서는 긴 글이 전시된 전시물의 글을 읽기가 조금 불편하다는 느낌도 있었다. 나도 이제 노안이 와서 눈이 좀 침침해진 것도 '불편함'의 원인일 수 있겠지만, 조금만 더 밝으면 어떨까 싶기도 했다.
학창 시절 배웠던 '시문학파'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시문학파의 워낙에 많은 작품들을 배우기도 했고, 아무래도 김영랑의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모란이 피기까지는' 등의 작품들이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시문학파 기념관에 들어서면, 학창 시절 배웠던, 이제는 가물가물하는, 많은 작가들의 이름과 작품들을 만나게 될 것이고, 그중 몇몇 작품들은 다시 읽으면 기억이 새록새록 다시 돋아날 것이다.
'시문학파 기념관'은 학창 시절 문학시간의 추억에 빠지게 된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작품들, 그 작품을 설명하시던 선생님의 목소리와 분필소리, 꾸벅꾸벅 졸던 친구들의 모습, 그리고 시어에 밑줄 그어가며 '은유법', '이상향', '암울한 현실' 이런 것들을 받아 적던, 그런 추억을 소환하게 되는 문학관이다.
나 두 야 간다
나의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거냐
나 두 야 가련다
아늑한 이 항군들 손쉽게 버릴 거냐
안개같이 물 어린 눈에도 비치나니
골짜기마다 맡에 익은 묏부리 모양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 사랑하던 사람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
쫓겨 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 거냐
돌아다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희살짓는다
앞 대일 언덕인들 마련이나 있을거야
나 두 야 가련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거냐
나 두 야 간다
- 박용철, [떠나가는 배]
한 줄 느낌
- 예전에 배웠던 시들이 다시 떠올라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다.
한 줄 평
- 학창 시절의 추억이 소환되는 문학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