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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요한 성실이 Jun 18. 2024

대한민국 : (물부족) 국가의 탄생(4)

"한국수자원공사의 탄생" 그리고 하천종합개발 

20세기는 "댐"의 시대  


대한민국 : (물부족) 국가의 탄생 1편에서도 말씀드렸듯 댐 건설은 국가 물관리에 반드시 필요한 사업입니다. 하지만, 모든 토목사업이 그러하듯 막대한 인력과 자본이 투입되며, 국가 인프라에 대한 장기적 이권이 걸려있는 사업이기도 합니다. 

 일본에서는 1920년대에 5대 민간 전력회사들이 경쟁적으로 일본에 발전소를 지어서 과장 경쟁을 했습니다. 


모노노베 가호 기념관 

  

일본 토목공학의 아버지  모노노베, 하천 종합 개발 계획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일본 토목공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모모노베는 1926년에 발표한   다목적댐 건설을 이용한  홍수 피해 경감, 수력 발전, 수자원 활용이라는 논리를 개발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패러다임이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하천종합개발계획"이라는 용어와 개념 자체가 이 모노노베가 만든 말입니다.   

 https://ja.wikipedia.org/wiki/%E6%B2%B3%E5%B7%9D%E7%B7%8F%E5%90%88%E9%96%8B%E7%99%BA%E4%BA%8B%E6%A5%AD


일본에서 하천종합개발 이론을 제창한 것은 당시 내무성 토목시험소 소장의 직장에 있던 물부장호이다. 물부장호는 1926년 (다이쇼 15년)에 발표한 자신의 논문에 있어서 다목적 저수지에 의한 수계 일관의 종합적 하천 개발의 필요성을 말했다. 이것은 ' 하수 통제 계획 '안이라고 불리며, '해수를 바꾸어 자원으로 만들기'라는 사상 하에서 국토 정비와 경제 발전을 위해 치수와 관개, 수력 발전을 통일하여 사업을 실시하는 것 중요성을 나타냈다. 하기와라 슌이치는 이에 더해 하천 관리자의 일원화도 지적했다. 이러한 하천계획은 미국의 TVA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어 당시 일본의 사회적·경제적 배경에 따른 것으로 주목되었다.

-일본위키 번역-



WWF의 보고에 따르면, 보호지역에 509개의 새로운 댐이 계획 중이나 건설 중이라고 합니다. 그중에서  중국이 해외에서 건설 중인 댐들이 있습니다. 동남아시아나 남미 등 제3세계 국가에 친환경 토목이라는 이름으로 펼치는 사업 중에 이 수력발전소(댐) 사업이 있는 것.  

이를   "중국의 수력발전 제국주의"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비판적으로 보기도 합니다..



각국의 보호구역에 건설 중인 댐 들 

중국의 해외 인프라 건설사업을 지지하는 사람의 게시물 

중국이 제3세계에 건설하고 있는 수력발전소 등의 인프라가 친 환경시설이라고 주장하는 게시물    




중국의  해외 수력발전소 건설 사업은 제국주의적 활동이라는 반론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110여 년 전, 중국에  최초의 수력 발전소가 지어질 때인, 1910년 유럽인의 손에 지어졌습니다.  프랑스인의 손으로 지어졌고,  발전기는 독일의 지멘스의 제품이 사용되었습니다. 결국 중국도 유럽 제국주의에게서 배운 대로 다시 실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910년에 세워진 중국 최초의 수력발전소 


지멘스 차이나는, 중국에 발전소용 발전기를 판매하기 위해서 세워진 회사입니다. 

지멘스 차이나의 건물 


1931년 중일전쟁 난징대학살 당시 일본군으로부터 난징시민을 구한 중국판 쉰들러라 불리는 "존 라베"는 당시 지멘스 중국 지사장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면, 발전소용 발전기와 터빈도 등장합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존 라베의 이야기 


https://www.siemens.com/global/en/company/about/history/stories/john-rabe.html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강점기에 발전소가 대부분 북한 지역에 지어집니다. 

당시에 북한이 공업지대, 남한 지역이 농업생산지대로 계획되었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해방 후에 많은 전력난을 겪습니다.  분단 이후에도 동안, 수풍발전소 전력으로 남한까지 공급했었다는 이야기를 전설처럼 들어본 같습니다. 일본이 조선에 발전소를 지은 이유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지만, 조선에서 수력발전소를 지었을 때의 비용이 더 저렴했고, 발전소 개발로 인한, 지역민 민원을 보다 강경하게 대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제하 대형 댐의 건설과 개발재난 : 일본질소의 부전강수력발전소 건설 사례를 중심으로(양지혜 2020)



수력발전소는 제국주의 시대에 경쟁적으로 개발되어, 불과 몇십 년 만에  전 세계 수많은 곳에 다양한 공법으로 지어졌습니다. 댐이 주변 하천과 생태계에 장기적으로 주는 생물학적 생태학절 형향도 차분하게 연구되었거나, 검토되었을 리가 없습니다. 

 당시는 인간의 두뇌의 크기가 인간의 성격과 지능을 결정한다고 믿는 골상학 이론이 대세인 시대로,  "네이쳐지"에서 두뇌 크기를 놓고 다투던 시절이었습니다.  

  

2차 대전이 끝난 이후에도 댐건설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미국은 공식등록된 댐이 9만 개라고 합니다.  국제 대형댐 위원회에 등록된 15m 이상 대형댐이 9254개라고 합니다. 대다수의 댐들이 1950년대부터 1980년대에 지어졌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도 전후 복구와 중화학 공업의 육성을 위해, 구로베 댐 같은 대형 수력발전소 건설에 집중했습니다.  

비비스앤 버트헤드를 떠올리면 늘 생각나는 후버댐 장면 


한국수자원개발공사의 탄생 



"한국수자원개발공사"가 설립된 것은 그즈음입니다. 

해방 이후 중화학 공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발전 설비가 필요했습니다.   

시대의 흐름상 중화학 공업을 선택한 이상 당연한 다음 스텝이었습니다. 


중화학공업 육성과 산업구조 근대화를 이룩하기 위한 정부의 국토종합개발계획에 의해 1966년 8월 3일 탄생한 회사가 바로 "한국수자원개발공사"입니다.  


1966년 설립당시 "한국수자원개발공사법"에 정한 업무 범위입니다. 


 제16조 (업무) ①공사는 다음 각호의 업무를 행한다.

1. 다음 시설(이하 “水資源開發施設”이라 한다)에 관한 신축ㆍ개축ㆍ조작 기타의 관리

가. 다목적댐

나. 다목적용 수로

다. 하구언

라. 저수지의 수위조절시설

마. 내륙수운시설 및 운하

바. 기타 수자원의 종합개발과 이용을 위한 시설

2. 수자원개발계획과 관련되는 공유수면의 간척 및 매립

3. 수자원개발시설에 관한 조사ㆍ측량ㆍ설계ㆍ시험 및 연구 기타 전 2호에 부대 되는 업무

②공사는 정관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 업무수행에 지장이 없는 범위 안에서 수자원개발시설에 관한 국가사업을 대행할 수 있으며, 타인의 위탁에 의하여 이를 행할 수 있다.


오로지 댐을 위해서 탄생한 공기업입니다. 

댐을 짓고 댐과 관련된 시설을 짓는 것, 그와 관련된 제반업무가 법으로 정해진 이 공사의 설립목적이자 존재입니다.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국민의 머릿속에 새겨진 "수자원개발"의 의미입니다. 

 1926년에 모노노베가 만든 개념입니다.     

 홍수 피해 경감, 수력 발전, 수자원 활용


"한국수자원개발공사"는 1974년에 "산업기지개발공사"로 통합되었다가 1988년 "수자원개발" 업무만 분리하여 "수자원공사"가 됩니다.

  

현재의 Kwater 홈페이지:  

https://www.kwater.or.kr/water/sub01/sub03/founPage.do?s_mid=1992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댐 건설 그 자체가 죄악은 아니며, 

"한국수자원개발공사" 도 절대 악의 조직이 아닙니다.  

다만 사기업이 아닌, 법률로 인해 설립된 공기업인 탓에, 설립 목적은 중요합니다. 

마치 로봇에게 입력된 미션과도 같습니다. 이 미션이 취소되거나 바뀔 때까지 끊임없이 미션을 수행하려는 본능이 있을 뿐입니다. 

공공기관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는 것은 생명을 지키는 것과도 같습니다.  

 




"물부족국가"라는 신조어를 만든 것  

(한국판) 물의 날을 만들고  제2회부터 (암암리에) 시작한 것.    


이 모두가 조직의 생존논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것은 특정기관의 집단이기주의가 아니라,

물관리 =  홍수 피해 경감, 수력 발전, 수자원 활용 = "하천종합개발" 100년을 이어온 모노노베 학파의 패러다임입니다. 

 

그런데, 90년대에 들어와서, 그동안 고려하지 않았던 요소인 "환경"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도전이 들이닥친 것입니다.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새로운 패러다음과 구 패러다임의 마찰은 피할 수 없었고, 

이후 30년 동안 계속해서 갈등이 이뤄졌습니다. 


지금까지 굵직굵직한, 하천을 둘러싼 싸움들 (동강, 한반도 대운하, 4대 강 사업)

그리고 신문에 나오던 크고 작은 "물부족" 관련 기획 기사들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 자료나, 외국의 연구사례만 보고는,  실제 의도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없습니다. 

얼핏 보면, '환경과 수자원 보호', '수해 예방'에 대한 것처럼 보이는 기사도,  문제 해결방법이 "댐"건설로 마무리된다거나, '하천 개발' 쪽으로 흘러간다면,  '환경'에 대한 기사가 아니라,  '개발' 쪽 스탠스에서 쓴 기사입니다.


이런 기사들은 읽어보면, 논리전개가 너무나도 익숙하고 편안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목적 댐에 대해서는 장점 밖에 배우지 못했습니다. 

댐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아마도, 댐 공사로 고향이 수장된 일부 사람들 정도 아닐까요? 

 


게다가, 하천을 개발하고 싶어 하는 쪽은,  하천의 보호와 정화에 신경 쓰는 쪽보다는, 조직적이고 돈도  더 있는 것 같습니다. 과거 기사를 살펴보면, 지면 편성에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수자원 공사"가 1966년에 설립되었을 당시부터 지금까지도 "사기업"이 아닌 "공기업"상태를 잘 유지하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만약 "민간기업"이었다면 어땠을까? 

  

2023년 K-water가 제작한 스티커

그동안 수자원공사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요. 


이제부터 진짜 세계 물의 이야기입니다. 

30년간의 (물의 날)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5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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