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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자매 Jul 02. 2021

또 하나의 일기장

나의 악필을 감추어주니 이 또한 감사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좋았던 점은 글에 대한 ‘가벼움’이었다. 글쓰기가 쉬워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게감을 말하는 것이다.


글쓰기에 대한 무게감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 감당하기가 버거웠다.


잠깐, 이 표현이 적절한가?

이거 좀 이상해.


한 문장을 넘기기가 힘들었어.


잘 쓰고 싶은 욕심, 인정받고 싶고 배움을 통해 성장하고 싶어 나는 대학원을 선택했다.

동화를 정말 잘 쓰고 싶었다. 논문을 세 번을 까이고(정말 이렇게 표현하고 싶었어) 교수님께 죄송하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너는 정말이지 창작이 적합한 글이야, 라는 말(그러나 반대로는 너는 논리적인 글은 영 아니구나)을  나름의 위안으로 삼아가면 버티고 버티었지만 돌아오는 차 안에서 수없이 울었다.


엄마가 후에 그러시더라.


밤마다 엄마, 나는 왜 이렇게 멍청해요......

그 말을 너무 많이 해서 힘들었다 하셨다.


터널을 지날 때마다 나의 삶이 이런 것만 같았다. 이 어둠 속에서 나올 수 없을 것만 같아 불안하고 무서웠다. 빛은 저 멀리, 아주 멀리 있는 것만 같았다.


결국 논문을 통과하지 못해 졸업은 결국 못했지만 나는 등단이 너무 하고 싶었다(나중에 알게 된 사실, 과에서 논문 통과 못해서 수료 상태인 사람은 나를 포함한 단 두 명인데 나머지 한 학생은 국적이 중국이어서 논문 쓰기 버거워 못했다는 나에게는 너무 슬픈 이야기). 신춘문예 당선 소식은 크리스마스 전에 알려주는데 지도 교수님 크리스마스 선물로 등단 소식을 전하겠다 큰소리쳤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등단 1호 졸업생이 되고자 발버둥 쳤던 것 같다. 나는 글로 인정받고 싶었다. 그리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누구를 위한 글쓰기인가.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글쓰기였던 거야, 결국은.


대학원을 끝내고 3년 동안 동화를 쓸 수 없었다. 잘 쓰고 싶어서 대학원을 갔지만 나는 결국 내 글에 갇혔다.


개연성이 없다.

주인공 캐릭터가 너무 수동적이야.

말이 너무 많아.


이유가 너무 많았다. 많은 것들이 나의 창작을 가로막았다.


그러다 브런치를 알게 되었고 나는 글쓰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그저 진솔하면 되었고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되더라. 형식에 갇히지 않고 그냥 내 얘기, 내 생각들을 적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았다(사실 뭐 잘난 것도 없는데 뭘 잘난 것을 보여주겠냐고).


어릴 적 반 친구들에게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던 그때가 기억났어. 나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그 눈빛과 그다음 상황을 궁금해하며 반쯤 입을 벌린 채 집중하는 그 상황들이 생각났다. 그래서 그 느낌을 기억하며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정말 메모하듯 적어 내려갔다 말하고 싶다. 가볍게 쓰인 글.

사실 예전에는 글 잘 썼단 소리 너무 듣고 싶어서 어려운 단어들 섞어가면서 뭔 소리인지도 모르는 말들 쉼 없이 내질렀어. 사전 검색하면서 이 단어가 적절한지 찾아가면서 말이지.


결론만 말하면 글을 쓰는 지금이 너무 행복해.

브런치는 내 또 한 권의 일기장인 셈이다.


고맙다,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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