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 생일
슬픔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아.
너의 흔적의 찾아 블로그에 들어갔다가 결국 울며 나왔어.
보고 싶고 그리워서 눈물이 났어.
보다가 또 울어 버렸어.
참 신기했더랬어.
클래식을 좋아하는 너를 보면서 대중가요만 듣는 나는 참 의아했어.
왜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러잖아.
남녀 주인공이 나란히 테이블에 앉아 있는데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남자가 음악가의 이름을 대면 여자는 곡의 이름과 이게 뭐 몇 번째 곡이니 어쩌고 맞장구치는 장면.
나는 그게 그렇게 신기하더라고.
근데 막상 너를 따라 들어보니까 반복해서 듣는 곡은 이제 조금 알겠다 정도야.
가슴이 먹먹해.
네가 좋아했던 뮤지컬 배우, 그리고 네가 좋아했던 공연들.
나 사실 네가 좋아하면 따라서 많이 좋아했어.
그냥 나 너를 닮고 싶었어.
기사를 봤어.
네가 보고 싶어 했던, 우리가 보고 싶어 했던 공연이 오픈했더라고.
그것들을 기사로 접하면 네 생각부터 나더라.
하나의 바람이 있다면 네가 좋아했던 뮤지컬 배우 사인을 받고 싶어, 너의 이름으로.
그걸 들고 너한테 가고 싶어.
그리고 보여주고 싶어.
네가 좋아하는 그 배우님이 사인을 해주셨다고 말이야.
근데 나 입이 떨어질까 모르겠다.
그 배우님한테 너의 이름을 대며 사인을 받는 일이 생각만 해도 눈물이 차올라서 내가 너의 이름을 말할 수 있을까 모르겠어.
사실 자신은 없는데 해볼게.
의식을 잃어가는 너에게 마지막까지 그 배우님의 곡을 어머니가 들려주셨다고 하는데 그 말을 들으면서 결심했어,
후에 꼭 너에게 사인을 꼭 받아다 주자고.
그게 언제 이루어질지는 나도 모르겠어, 그렇지만 해주고 싶어.
네가 해달라고 한 적은 없지만 그냥 그러고 싶어.
그냥 너를 위한 모든 일에 나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너랑 보려고 정말 오래도록 그 배우님 공연 기다렸었어.
그런데 너는 2주를 남기고 결국 배우님 공연을 보지 못했네.
난 이제 그 공연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싶어.
아마 나는 그 배우님이 무대에 계신 내내 울 것만 같아.
울 이유가 없는 그 공연에서 나만 서글프게 울 것만 같아.
슬픔은 절대 익숙해지지 않더라.
눈물은 절대 참아지지 않더라.
곧 너의 기일인데 벌써 세 번째 돌아왔네.
나는 사실 네 기일 말고 그다음 달인 너의 생일이 기다려지더라고.
그냥 모르겠어, 축하해주고 싶다 해야 하나?
‘축 생일’ 동화책이 생각난다.
전쟁 속에서 아이는 아버지의 죽음을 전하는 군번줄이었나?
그걸 받은 아이는 그 군번줄이 생일 선물이라 생각하고 아주 좋아했던 것 같아.
그 동화가 참 먹먹했어.
동화지만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 매년 찾아오는 생일이 너무 서글플 것 같아서 말이야.
그런데 너의 생일이 이렇게 서글퍼지리라고는 생각조차 해보지 못한 일이네.
나는 드라마 보면서 가슴을 쥐어짜며, 혹은 가슴을 치며 우는 여자 배우들
아니 왜 가슴까지 저렇게 아프도록 때리는지 잘 몰랐었거든.
근데 겪어보니 알겠더라.
가슴을 치지 않으면 숨이 쉬어지지 않더라고.
숨이 막힐 것만 같아서 아픔의 깊이가 가늠이 되지도 않고
정말이지 못 견디겠더라고.
너의 절친들을 왜 나는 너의 장례식에서 보아야 하는 것인지
왜 너 없이 그 친구들을 보아야 하는 것인지
모든 상황들이 이보다 더 슬플 수 있을까 싶었어.
너를 만나고 돌아가는 길이면
항상 나 바래다주었는데
내가 심각한 길치라서 또 이상한 버스라도 탈까
꼭 나를 배웅해주었는데
네가 없어서 나 너한테 가는 길을 또 헤맸어.
결국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잖아.
네비가 있어도 이상한 길로 가는 재주가 있어, 내가.
이거 봐, 다 네가 없어서 그래.
돌아오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
네가 이런 나를 보고 웃어주지 않았을까
어떻게 친구 장례식 위치도 헤매는 내가
어쩜 저렇게 변함이 없냐 싶어서
웃어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말이야.
그럼 정말 좋겠다.
네가 많이 웃어주었으면 좋겠다.
그립다, 네가.
못 견디게 그립다,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