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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동화 낙선작

#03 신춘문예 이렇게 쓰면 심사평에도 못 오른다.

by 윤자매

이야기 나라 옛날, 아주 먼 옛날, 이야기 나라라 불리는 부강한 나라가 있었다. 이야기 나라는 세상에서 가장 크고 견고한 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웃나라에서는 그 견고한 성 앞에서 재물 보따리가 아닌 이야기보따리를 내놓았다. 이야기 나라는 희귀하고 재미있는 이야기일수록 더욱더 그들을 극진히 대했고, 결코 그 나라에는 칼을 겨누는 일이 없을 거라며 왕은 신을 향한 맹세도 아끼지 않았다. 이웃나라 왕들은 이야기를 사랑하는 이야기 나라가 몹시 마음에 들었다. 값비싼 재물이 아니니 금전적인 손실은 조금도 없었다. 정말이지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일이 있기 전까지 만이었다. 그 모든 기쁨은 딱 그때까지였다. 사신이 갇혔다는 소식이 작은 왕국의 왕에게 전해졌다. 사신은 이야기를 잘하기로 유명한 이야기꾼이었다. 남루한 옷차림을 한 그가 그토록 입담이 좋으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누구 하나 조는 이 없이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의 재능에 특별히 왕실 예절까지 가르쳐 조금의 부족함 없이 그를 이야기 나라에 보냈었는데 이 같은 소식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대체 그가 갇힌 이유가 무엇이더냐? 혹여 왕실 예절에 어긋난 행동을 했더냐!" "결코 그것은 아니옵니다." "그럼 이유가 무엇이더냐." "그것이……." "주저하지 말고 조금의 거짓도 없이 아뢰어 보거라!" "그가 전한 이야기는 이야기 나라의 왕이 아는 이야기라며 불같이 화를 내었습니다." "아는 이야기라니!" "예, 왕이 아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그가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뭣이라! 왕이 아는 이야기인지 모르는 이야기인지 대체 어떻게 확인을 한단 말이냐!" 책사는 고개를 숙인 채로 왕이 들릴만한 크기로 겨우 입을 열었다. "왕은 무조건 새로운 이야기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아는 그런 식상한 이야기 따위로 자신을 만족시킬 수 없다면서 말이지요. 새로운 이야기를 가져오지 못할 경우, 더 이상 이전과 같은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순간 왕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왕 조차도 이것이 분노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시간이 없었다. 왕은 서둘러야 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책사는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는지 말하라." 책사는 힘겹게 입술을 떼며 말했다. "나라에 방을 붙여 이야기꾼을 모을까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더군다나 새로운 이야기가 아닐 경우 그 이후 상황까지도 알게 된다면 나라는 크게 술렁일 것입니다. 그렇게 고심 중인 그때에 누군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지금 왕께 그가 누구인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책사가 눈짓을 했다. "아이를 들이게." 책사의 뒤로 문이 열렸고 그곳에는 남루한 옷을 입은 키가 작고 왜소한 체격의 아이가 있었다. 아이의 왼쪽 뺨에는 영양실조로 하얀 버짐이 피어있었다. 아이는 겁에 질려 있었다. 궁의 장엄함을 아이의 눈으로 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저 아이는 누구인가?" "그 이야기꾼의 아들입니다." "아들?" "예, 그렇사옵니다. 왕이시여, 이 아이보다 적합한 사람은 없습니다. 이 아이만큼 절실한 이도, 이 아이만큼 간절한 이도 없습니다." 왕은 바닥에 머리를 조아린 아이에게 다가갔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빈이옵니다." "빈, 빈이로구나. 너는 지금 이 모든 상황을 다 이해한 것이냐?" "예, 모두 알고 있습니다." "두렵지 않으냐?" "두렵습니다." "두려운데 가려는 것이냐." "제가 이토록 두려운데 아버지는 어떠실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용기가 났느냐." "이것이 용기인지는 모르겠사오나 우리 가족들과 저는 아버지를 간절히 원하옵니다." 왕은 고개 숙인 아이에게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아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가거라. 가서 네 아비를 구하라. 아비를 구하고 내 나라, 너의 나라를 구하라." 아이는 책사와 함께 갔다. 이야기 나라로 가는 그 길을 아이와 책사가 함께 걸었다. 아이는 길을 가는 중간중간 일기를 쓰고 있었다. 일기를 쓰지 않을 때에는 주위 풍경을 보거나 밤이 되면 악몽을 꾸는지 신음소리를 냈다. 악몽 후에는 곧잘 훌쩍였다. 책사는 아이가 다시 잠이 들 수 있도록 가볍게 몸을 토닥여주었다. 이 여린 아이에게 너무도 무거운 짐을 준 것만 같아 책사는 쉬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책사 역시 아이를 기르는 아버지였다. 드디어 아이는 이야기 나라에 도착했다. 견고한 성문이 열리자 두려움이 엄습했다. 처음 왕 앞에 불려 나갔을 때와는 비교되지 않을 크기의 궁궐이었다. 이야기 나라는 궁의 기둥이 금으로 둘러싸일 만큼 화려했고 또한 부강했다. 아이는 두려움에 두 주먹을 꼭 말아 쥐었다. 이야기 나라 왕 앞에 아이가 나아갔다. 아무도 아이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한쪽에 서 있던 키가 몹시 큰 남자가 손짓을 했다. 이야기를 시작하라는 것 같았다. 심드렁한 그의 손짓이 오히려 아이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다들 기대에 찬 눈으로 자신의 바라본다면 입도 못 떼고 그 자리에서 오줌을 쌌을 것이다. 아이는 조용히 일어나 가슴팍에 숨겨둔 일기를 꺼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고도, 담담하게 읽기 시작했다.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한다. 아는 이야기를 했다가는 큰일이 난다고 했다. 모르는 이야기를 해야 아버지는 풀려난다고 했다. 그러려면 나는 이야기를 만들어야 했다. 나는 나만 알고 있는 신기한 이야기가 없었다. 그저 나는 글을 모르는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좋아할 뿐이었다. 노동을 하여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리는 아버지가 좋았다. 자신의 새참을 아껴 우리들에게 가져다주는 아버지가, 그런 아버지를 우리는 사랑했다. 나는 왕에게 묻고 싶다. 새로운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나만 아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일기를 쓰라고 말해주고 싶다. 일기를 쓰고 후에 그 일기를 읽는다면 이보다 새로운 이야기도 이보다 재미있는 이야기도 없을 것이라고. 술렁이는 소리가 가득했다. 감히 왕 앞에서 이렇게 노골적인 조언을 하는 자는 없었다. 그것도 이렇게 어린아이가 감히 왕 앞에서 말이다. 왕의 눈치를 보느라 순식간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모두들 왕의 표정을 살폈다. "나에게 지금 일기를 쓰라고 했느냐?" "예, 그렇사옵니다." "내가 왜 일기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새로운 이야기를 원하신다 하기에 그런 생각을 해본 것입니다. 자신의 이야기만큼, 그리고 매일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만큼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재미는? 너는 너의 이야기가 재미있느냐? 지금 너의 이 상황이 재미있느냐?" "지금은 재미가 없습니다." "너는 방금 전에는 자신의 이야기가 재미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재미가 없다는 것을 대체 무슨 말이냐." "저는 아버지 대신 이곳에 왔으니 재미있을 리가 없습니다. 슬프고 두렵고 무섭습니다." 왕은 가만히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었다.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던 왕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너는 지금, 오늘 일어난 이 일을 일기로 쓸 생각이냐." "그렇습니다." "이 결과가 어떻게 될 것 같으냐." "모르겠습니다." "좋은 결과일 경우만 일기에 쓸 생각이냐." "아닙니다." "좋지 않은 결과도 쓸 거란 말이냐?" "그렇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냐? 넌 분명 일기가 재미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에게는 슬픈 결과가 될 수도 있는데 쓰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당장은 슬플지 모르나 일기라는 것은 힘이 있습니다. 현재의 감정이 담겼지만 이후에 펼쳐 보았을 때에는 분명 다릅니다. 그때의 감정이 읽히지만 그 감정이 읽고 있는 순간의 감정까지 지배하지 않습니다." "다를 수도 있다?" "네, 분명 그랬습니다." "너는 후에 너의 일기를 읽어 보느냐?" "그렇습니다." "읽어보니 좋았더라?" "웃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지만 분명 뭔가 다른 감정들이 생겼습니다. 뿌듯한 기분이라고 할까? 왕께서는 모르실 겁니다. 모르시기에 저에게 물으시는 겁니다. 일기를 써 보십시오. 묻지 말고 써 보십시오. 그래서 제가 하는 말을 꼭 느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후에 읽었을 때 그 감정을 못 느끼면 어쩔 것이냐? 책임질 수 있겠느냐." "반드시 느끼십니다. 꼭 그러실 것입니다." "좋다. 해보겠다." 아이의 눈빛이 빛났다. "그럼 보내주시는 것입니까!" "아니다." "그렇다면요?" "너는 1년의 시간 동안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 내가 매일 일기를 쓸 수 있도록 함께 있을 것이다. 바로 다음 해 오늘, 나는 그 일기를 읽어볼 것이다." "그렇다면 저의 아버지는요?" "아비는 너의 가족에게로 보내주겠다. 대신 네가 여기 있어야 한다." 아이의 얼굴에 잠시 슬픔이 찾아왔다. 하지만 아이는 넙죽 절을 올렸다. “감사합니다. 아버지를 집으로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로부터 1년이 흘렀다. 아이는 키가 한 뼘이나 자랐고 왕의 눈은 더욱 깊어져 있었다. 정확히 작년의 그날과 같은 날짜였다. "오늘이구나." 왕이 손짓하자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왕의 일기를 읽기 시작했다. 나의 발끝에 머리를 조아린 작은 나라의 아이가 읽기를 쓰라고 말했다. 일기의 힘을 믿으라 했다. 일기의 힘이 얼마나 위대하기에 나에게 감히 이런 말을 한단 말인가! 나는 부족한 것이 없다. 이제껏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일기 따위가 무슨 힘이 있단 말인가! 일기에서 금이 나오는가! 강력한 병력을 주지도 않는다. 이 두꺼운 책 안에 갇힌 이 글들이 대체 무슨 힘이 있단 말인가! 나는 아이에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나는 항상 옳다. 지금도 옳고 앞으로도 옳을 것이다. “그만!” 왕이 아이를 제지했다. 왕의 눈빛이 흔들렸고, 얼굴이 조금씩 달아오르고 있었다. 왕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작년 오늘, 너의 일기를 다오." 아이가 자신의 일기를 꺼내 펼쳐 보였다. 읽기를 마친 왕이 나직이 말했다. "너의 집으로, 너의 아비에게로 가거라." "정말이십니까!" "그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빈아, 네가 이겼다." 급하게 달려 나가는 아이는 왕의 마지막 말을 듣지 못했다. 성 밖으로 달려 나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왕의 신하들이 물었다. "왕이시여. 대체 저 아이가 일기에 뭐라 적었기에 그러십니까?" 왕은 웃으며 신하들에게 말했다. "왕은 반드시 나를 보내줄 것이다." 신하들은 왕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아주 오래도록 왕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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