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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자매 Jul 21. 2022

아빠와 수박 끈

절대 우리와는 살 수 없다고 버티던 아빠가 코로나로 무너졌다.


코로나로 일주일 입원을 하신 아빠는 퇴원 후 많이 쇠약해졌고 엄마 혼자서는 간병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와 지난 5월부터 살림을 합쳤다.


사실 무리해서 주택으로 이사 온 것도, 이층 집을 선택한 것도 부모님과 함께 살기 위함이었다.


아빠가 우리랑은 불편하다고 안 사신 다기에 그럼 그러시라고 했던 것이 벌써 재작년의 일이다.


아빠가 아프시니까 엄마는 아빠랑 둘이 사는 건 못하겠다 하셨다.


원래도 아빠가 집안 살림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는데 아프기까지 하니 엄마는 더는 못하겠다 하셨다.


감사하게도 휘청휘청 잘 걷지도 못하던 아빠가 2주 만에 많이 회복이 되셨다.


지금은 전처럼 밥도 아주 잘 드시고 자전거도 타실 수 있게 되었다.


운동 끝나도 집에 와서 아빠 방을 지나치는데 돋보기를 쓰고 수박 끈을 풀고 계셨다.



아빠, 뭐하는데?


아, 손가락 운동.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무디어 지니까 이렇게라도 손가락 운동을 하는 거야.



예상하지 못한 아빠의 대답에 예전 일이 생각났다.


어느 날엔가 식당에 부모님을 모시고 갔는데 주인이 부모님을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부르셨다.


처음에 나는 그게 너무 기분이 상하더라고.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부모님이 나이 드시는 것을 인정해드려야 하는데 나는 그게 안 되더라고.


그런데 오늘은 돋보기까지 쓰고 수박 끈 풀고 계신 아빠를 보니


마음이, 내 마음이 먹먹했다.



나는 살가운 딸이 아니다.


살가운 딸, 잘 못하겠더라고.


그런데 오늘은 말이야 수박을 자주 사다 드려야겠다 싶었어.


아빠가 심심하지 않게 손가락 운동을 할 수 있게, 수박 끈을 챙겨 드리고 싶다.


그냥 툭, 마치 오다 주웠다는 듯 건네주고 싶다.


별 것도 아닌데 그걸 드리면 우리 아빠가 분명 좋아해 줄 것 같다.


분명 그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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