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자매 Mar 15. 2023

어쩌다 복싱

몇 년째 복싱을 하다 보니 관심도 없던 단증이 따고 싶어졌다.

언제까지 복싱을 하게 될지 모르지만 그래도 나에게 복싱을 기록으로 남겨주고 싶었다.


그리하여 나는 2월의 어느 날 단증 심사를 보게 되었다.


예상은 했지만 초중고 학생들과 뒤엉켜 앉아 있었다. 8살부터 응시가 가능하니 여덟 살과 함께 있었네요, 내가. 그 아이들과 함께 체육관에 나란히 앉아 있으니 한쪽에서 앉아계신 학부형들이 보였다. 학생들을 보며 작게 응원을 하고 있더라. 내가 저기 있어야 하는데 그게 마음이 훨씬 편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이지 어쩌다 내가 이곳에 착석하고 있는 것인가.


어느새 오른쪽 가슴에는 숫자 25번이 부착되었고 오늘 나는 25번 참가자!


나는 다섯 번째 줄에 앉아 있었고 앞줄에 있던 18번 참가자가 나에게 물었다.

복싱 단증 1단 따러 오셨어요?

네.


딱 봐도 초등학생 5, 6학년 정도로 보였다.

그러더니 심사 중간중간 말을 걸기 시작했다(나도 사실 내내 궁금했어, 너의 MBTI).


필기시험 준비 잘하셨어요?
긴장 안 되어요?

대답 없이 웃기만 해도 질문은 이어졌다.

저 떨려요.


어찌나 귀엽던지. 아가야, 나는 이제 분해야 몸이 떨릴 나이란다.

떨린다는 그 아이는 윗몸일으키기를 50개나 했다(내가 너 그럴 줄 알았어).


“푸시업 어떻게 하실 거예요?”

“정석대로 할 거예요.”


(팔 굽혀 펴기는 웨이브 방식과 정석으로 할 건지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고는 푸시업이 끝나고 자리에 앉자 여지없이 질문공세.


“푸시업 얼마나 하셨어요?”

“마흔 두 개요.”

“음, 많이 하셨네요.”


칭찬 고맙다.


나에게는 참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이번 복싱 심사는.

내가 이렇게 학생들과 섞여 체력검증을 받는다는 게 특별한 경험이었다. 같이 운동을 했지만 동등한 자격으로 앉아 있다고 생각하니 새삼 신기했다.


줄넘기를 시작으로 쉐도우 심사, 샌드백 심사, 그러고 체력검증(푸시업, 싯업, 사이드스텝)이 있다. 이 과정이 끝나면 필기시험으로 단증 심사는 종료된다.


줄넘기 심사가 끝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심사자 분이 말했다.


현재 0점도 있어요. 긴장 늦추지 마세요. 그리고 1단은 1단꺼 잘하시면 되어요. 그 이상을 구사하실 필요 없으니까 감점 안 받게 주의하세요.


그 말에 체육관 공기가 무거워졌다. 아이들이 조금씩 긴장하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잘한답시고 괜히 오버했다가 망치지 말찌니.

 

총 2시간이 꼬박 걸렸다. 과정별 심사는 3분 안쪽으로 끝났고 필기시험도 3분 컷으로 종료되었다.


나는 1단 심사였고 뒤에 앉은 학생들이 2단과 3단 참가자들이었다. 확실히 뒤에 있는 분들은 잘하더라. 빠르고 능숙했다. 3단은 메쓰심사가 있는데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어.


“거리조절실패, 감점.”


중간중간 들리는 심사자의 단호한 어투에 메쓰 심사와는 아무 관련 없는 나까지도 긴장감이 유지되더라. 그날은 3단이 최종 심사여서 4단 심사를 구경해 볼 수는 없었다. 4단부터는 실제 스파링이 있다고 한다. 관장님 말씀이 공인 4단을 한 번에 따는 방법은 도대회를 나가서 금메달을 따라고 하셨다. 눼눼, 좋은 팁 감사합니다, 관장님.


1단에서 2단으로 넘어가려면 1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이 또한 대회를 나가서 우승하면 6개월 만에 자격이 주어지니 이것도 팁이라고 알려주셨다. 눼눼, 고맙습니다.


대회에 나가 우승하면 6개월 만에 2단 단증 자격이 주어진다는 말에 살짝 혹한 건 사실이다. 그럼 1년 안에 2단까지 딸 수 있다는 건데, 물론 우승한다는 조건이지만.


아, 도전해보고 싶기는 해.

그럼 브런치에 ‘어쩌다 복싱대회’ 후기를 올릴 수 있겠네.

아닌가? ‘어쩌다 골절‘, ’ 어쩌다 입원‘이 되려나.


엄마가 복싱 대회는 절대 안 된다 그러셨는데.


대회에 나가서 맞는 것보다 나는 엄마가 더 무섭다.

암만, 그렇고 말고.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아빠에게#03나도 좀 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