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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자매 Jun 29. 2023

언니의 생일

언니는 몇 해 전, 지인에게 돈을 빌려줬다.

천 단위의 돈을 빌려주었고 그 사연은 이랬다.


언니의 지인은 오랜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었다.

힘들 때 지인을 많이 도와주고 애틋했던 친구라고 했다.

친구는 사천만 원을 빌려달라고 했고

지인의 신용으로는 기존 은행 대출이 힘들었다.

뭐에 홀린 듯 제2금융권에서 돈을 빌려주었고

그리고 그 후는 다 우리가 예상하는 이야기다.


친구는 몇 번은 내주다가 잠적을 했고

그 빚은 고스란히 지인의 몫이 되었다.


빚을 갚느라 투잡을 뛰어야 했다.

낮에는 직장에 나가고 밤에는 식당 주방에서 일했다.

남편과 아이가 있던 지인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고

정말이지 죽지 못해 살았다고 한다.


변화된 아내의 행동에 이상함을 느낀 남편이 왜 그렇게 일을 무리해서 하냐고 하면

밤에 잠이 안 와서 그런다며 얼버무렸다고 한다. 그렇게 몇 년을 밤낮없이 일했다.


그러다 우리 언니와 연락이 닿았다.

언니와 지인은 1년가량 같은 직장에서 친하게 지냈었다.

언니는 사정을 듣고 돈을 빌려주었다.


그러고 나니 언니는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란다.

나를 혹시 속인 건가?

내가 정말 어려운 사람 도와준 것이 맞을까?


매달 30만 원씩 돈을 갚기로 약속을 했고

언니 딴에는 어려운 사람 살린다 생각을 빌려준 돈이었는데 너무 앞뒤 사정도 살피지 않고

빌려준 것이 아닌 지 몇 달을 힘들어했다.


그러다 정말 내려놓더라고.

그러고 나니 언니는 매달 통장에 찍히는 그 30만 원을 고마워했다.


행여 떼이기라도 한다면

비싼 돈 주고 인생을 배웠다 생각하고

털어내자고 굳게 마음을 먹었다(아빠에게 수없이 뺏기더니 아주 통이 커졌다).


작년, 그 지인분이 오랜 시간에 걸쳐 돈을 다 갚았다.

중간에 지인은 여러 고비를 겪었다.

한 번의 자살기도가 있었고 그 일을 계기로 남편을 포함한 모든 가족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시련은 부부를 더 돈독하게 해 주었다.

남편은 아내를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아내를 살피지 못하고 힘이 되어주지 못한 것을 미안해했다.


언니 생일 앞두고 지인이 케이크와 선물을 보내왔더라고.

비를 뚫고 운전해서 직접 가지고 왔더라고.


좋은 마음이었으니 좋은 결과가 따르는 것이 맞는데

이런 그림이 정말 좋은 그림인데

뭔가 이런 상황이 꿈만 같았다.


모두가 이런 결과를 맞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세상이 살만하다는 것을 모두가 느낀다면 얼마나 좋을까.


좋은 마음은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이치인데

뭔가 서글픈 마음이 드는 것을 왜일까.


사실 아빠 생각이 났어.

아빠의 빚보증이, 지인을 위한 행동들이

정말로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그런 짧은 생각들이 스쳤다.


언니는 사람을 얻었고

지인은 언니를 만나

안정적인 삶을 얻었다.


지인이 보내온 언니의 생일 케이크를 보는데

마음이 뭉클했다.


칭찬해, 언니야.

축하해, 언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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