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비평
1부부터 4부까지 다방면의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이 책의 정체성은 책 제목에도 드러나듯, 단연코 ‘슬픔’을 공부하는 1부이다.
이 책을 관통하는 문장은 책의 시작점에 있다.
“인간에게 특정한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바로 결함이라는 것. 그러므로 인간이 배울 만한 가장 소중한 것과 인간이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은 정확히 같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슬픔이다. “
“인간은 자신의 한계를 슬퍼할 줄 아는 생명이기도 하니까. 한계를 슬퍼하면서, 그 슬픔의 힘으로, 타인의 슬픔을 향해 가려고 노력하니까. 그럴 때 인간은 심장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슬픔을 공부하는 심장이다.”
“나는 오늘도 당신의 슬픔을 공부한다. 그래서 슬픔에 대한 공부는, 슬픈 공부다.”
작가는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를 '결함'으로 인식해 타인의 슬픔에 대해서라면 인간은 자신이 자신에게 한계라고 제시한다. 회의주의에 빠질 수 있는 발상이지만, 이는 분명 회의주의와는 다르다. 작가는 인간이 노력을 통해 한계를 극복해 나가는 존재임을 분명히 하여 인간존재를 부정하지만은 않는다. 자신의 한계를 슬퍼할 줄 아는 생명이므로, 그 슬픔의 힘으로, 타인의 슬픔에 다가가려 노력하는 존재임을 인정함으로써 인간은 자신을 위해서만 뛰는 심장을 가진 존재 자체가 결함인 존재이기 때문에 한계를 지니지만 여기에 국한되어 포기하는 것이 아닌 타인의 슬픔을 공부하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가 된다.
"거대한 고통은 정체되어 있다가 이완의 순간에 터져 나오는 법이다. “
거대한 고통이 정체되어 있어 괜찮은 듯 하지만 실은 괜찮지 않은 것이다. 이를 이완의 순간에 깨닫게 되는 법칙. 걷잡을 수 없이 거대한 고통은 간과할 수 없다.
“어떤 책이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으려면 그 작품이 그 누군가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것. “
“위로받는다는 것은 이해받는다는 것이고, 이해란 곧 정확한 인식과 다른 것이 아니므로, 위로란 곧 인식이며 인식이 곧 위로다. 정확히 인식한 책만 정확히 위로할 수 있다”
‘위로=이해=인식’ 이 공식에 따라, 누군가를 위로하는 상황을 가정하면, 슬퍼하는 대상에게 위로하는 주체가 슬퍼하는 대상의 상황을 정확히 인지한 후 그 상황을 한 번 더 정리하여 말하며, 여기에 약간의 공감을 더하면 분명 위로받고, 이해받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책으로부터, 혹은 누군가로부터 위로받는 것 이전에 자기 자신을 잘 돌봐주는 일이 먼저임을 암시한다. <슬픔의 위안>의 다음과 같은 문장을 소개한다. "순수한 휴식은 슬픔의 고통을 치료해 주는 가장 효과적인 치료제다. “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위로받기 이전에 순수한 휴식을 통해 자신을 잘 돌봐주고, 슬픔의 고통을 치료해 주는 것이 가장 건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