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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에포크 Jan 17. 2022

지극히 평범한 삶

서른 살의 공무원

 아마 중학교 1학년 때였을 것이다. 일을 마치고 온 엄마가 저녁을 먹고 나서 집안을 정리하고선, 분리수거할 것들이 많아서 엄마랑 같이 쓰레기를 들고 아파트 분리수거장으로 갔다. 무슨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랑 나눴던 대화는 아직도 기억난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건지 알아?"

"평범....? 나는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데"

"너도 크면 알 거야. 남들만큼 갖춰놓고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엄마. 나는 그래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안 살 거야!"


 그러나 지금 '서른 살의 나'는 얼마나 평범한가. 

어쩌면 평범함보다 조금 아래인가 싶기도 하다. 내 직업은 공무원이다. 취업난으로 인해 공무원 시험의 열기가 한동안 들끓었을 때쯤 공무원이 되어 지금은 3년 차가 되었다. 10평 남짓한 나름 역세권인 구축 오피스텔에 살면서, 월급이 들어오는 20일만 꼬박 기다리지만 막상 통장에 들어오는 급여는 너무나도 작고 귀엽다. 그 월급을 쪼개 전세대출금 이자를 내고, 세액공제가 된다는 퇴직연금 IRP통장에 10만 원씩 자동이체를 하고, 청년 우대 청약통장에 10만 원을 넣고, 매달 오피스텔 관리비 13만 원을 낸다. 각종 보험금을 합쳐 6만 원 정도를 납입하고, 핸드폰 통신요금 3만 원을 내면 숨만 쉬어도 고정지출이 63만 원 정도가 나온다. 돈을 모으려면 통장을 쪼개서 관리해야 한다는 말에 고정지출이 나가는 통장을 따로 두었고, 적금처럼 매달 80만 원은 증권계좌에 넣어두고 전망 좋은 회사의 주식을 산다. 그리고 남은 금액을 생활비로 쓴다. 생활비에서도 10만 원 정도를 미리 경조사 및 비상금 통장에 넣어두고선 계획 없이 갑자기 나가야 하는 결혼 축하 비용 및 각종 부조금에 지출한다. 처음 공무원에 임용되었을 때 받은 첫 급여는 실로 어이가 없었다. 포털사이트 검색을 통해 내가 어느 정도 급여를 받을 것이라는 것은 시험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 급여를 받고 보니 참 기분이 묘했다. 예전 직장에서는 이 월급보다 더 많은 돈을 저금하고도 생활비가 넉넉했는데 이제 난 알바보다 못한 월급을 받아야 했다. 야근이나 휴일근로를 해도 남들은 1.5배의 급여를 받지만 나는 시간당 9천 원 정도를 받았다. 일이 너무 바빠서 밤 11시 퇴근이 조기 퇴근하는 날이고, 주말 중 하루를 쉬는 것도 감사해야 했던 시절에 초과근무를 150시간을 넘게 해도 그 달 월급이 내 정신적, 육체적 피폐함을 채워주지 못했다. 그나마 초과근무수당으로 받은 돈은 과로로 생긴 각종 질병에 대한 병원비로 지출해야 했다.


가끔 일을 하다가 다른 사람들의 건강보험료를 확인하게 될 때면 상대적인 박탈감이 몰려왔다. 같은 93년생이지만 건강보험료는 2-3배 높은 사람들, 번듯한 대기업에 다니면서 높은 연봉을 받는 사람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데 북한산이 보이는 좋은 동네의 신축 고층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게 '아기'라는 축복이 내려와 출산 전 조심스러으면서도 행복한 얼굴을 하고 나를 찾아온 사람들. 아마 이런 사람들은 자신을 평범하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조금은 더 나은 삶이라고 여길까?


내가 평범한 걸까. 그들이 평범하고 내가 평범보다 못한 것일까. 누군가는 취업도 못하는 사람이 있고, 공무원이 되고 싶어도 몇 번씩이나 낙방하며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너는 감사해야 한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맞다. 그들의 기준에서 나는 감사해하며 직장에서 하루를 보내야 한다. 그래도 안정된 직장에서 퇴직 후 연금이 주어지지 않냐고 '내가 낸 세금으로 네가 월급을 받는 거야'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공무원 연금은 박근혜 정권 시절 개혁되어서 내가 퇴직해서 연금을 받을 즈음에는 국민연금과 거의 같거나, 국민연금과 한 몸이 될 수도 있어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메리트가 없다. 국가에서 월급을 주는 만큼 나 또한 그에 합당한 근로를 하고 내 소득만큼 가장 성실히 세금을 낸다. 다른 사람보다 열심히 일을 한다 해서 나에게 보상으로 오는 것은 '다른 사람 몫까지 해내야 하는 추가된 일'이며, 같이 초과근무를 한다 해도 다른 공무직(무기계약직), 계약직보다 못한 급여를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산관리, 민원응대, 각종 보고서 작성 등 모든 책임과 의무는 공무원에게 주어진다. 이쯤 되면 "공무원, 그리 좋은 직업은 아니니 정신 차리고 꿈 깨세요"가 이 글의 주제인 듯싶지만, 사실이 그렇다 한들 이 글의 주제는 아니니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여러 가지 꿈을 가지고 있던 중학교 1학년이었던 나에게 '평범함'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던 엄마. 왜 그 어려운 '평범함'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그다지 매력적이게 보이지도 않는 '평범함'이라는 것을 왜 가져야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나는

어쩌면 그때 당시 엄마가 말했던 기준에서의
'평범한 삶'보다 더 못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을까?


중산층이란?
- 우리나라에서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중간에 위치한 소득분위의 계층
- 기준 중위소득 50% 이상 ~ 150% 미만
  (2022년 기준, 1인 가구 월소득 972,406원 ~ 2,917,298원)


현재 우리나라는 통계청 기준으로 사회안전망 및 고용안전망 강화를 위해 중산층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대체로 국민들이 느끼는 중산층은 월 소득 449만 원에서 547만 원 정도는 벌어야 중산층이라 여긴다.(부산광역지복지실태조사. 통계청) 또는 막연히 생각하기에 중산층이라 하면, 3-4인 가구가 30평대 아파트에서 살며 월소득은 500만 원 이상이며, 중형차를 보유하고 해외여행은 연 2회 정도 가는 것으로 그려진다. 어느 정도 자산을 보유하고 돈 걱정 없이 먹고살며 여가생활까지 즐길 수 있는 것이 중산층인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90년 대생 중에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30대, 20대로 내려올수록 중산층 인식의 비율은 더 적어질 것이다. 내가 태어났던 90년대에 비해 현재는 대한민국의 중산층 비율은 더 줄어들었고, 비단 한국만이 아니라 미국, 프랑스 등 다른 여러 선진국들의 중산층 비율도 마찬가지로 줄어드는 추세다. 그러나 현재 각종 통계자료를 보면 소득으로 인한 불평등은 점점 작게나마 완화되는 수치를 보여주고 있다. 체감은 더 심화되고 있는데 말이다. 왜일까?


그 이유는 소득불평등은 개선되고 있지만
순자산 불평등은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산. 즉 부동산이다. 최근 2020년부터 2021년까지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다. 집값이 폭등하면서 집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사람과, 그전에 대출을 받아서라도 집을 샀던 사람들과의 격차가 엄청나게 벌어졌다. 그 격차는 강남에서부터 지방까지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치솟는 부동산 가격에 때맞춰 집을 사지 못했던 사람들은 지금이라도 집값이 더 올라가기 전에 집을 사야 한다는 불안감에 온갖 대출을 끌어와서 무리하게 내 집 마련을 시도했다. 대출마저 영끌 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집을 사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있다. '내 집 마련'을 생각조차 안 하고 있었던 나와 같은 부류들은 갑자기 올라간 집값으로 인해 얼떨떨하게 '벼락 거지'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 그저 내 할 일을 묵묵히 했던 것이 '잘못'이었던 것이다. 이제는 내가 중산층이 되고자 해도 그 길은 더 멀어지고 있다. 더 이상 '소득'으로 중산층을 보는 시대는 지나고, '자산'으로 중산층을 보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로 인해 자산을 가지지 못한 자와 가진 자의 격차는 벌어졌고, 어떤 자산을 가지고 있는 가에 따라 그 장벽은 더 높아졌다. 과거에는 소득을 높이고자 좋은 학벌, 좋은 인맥, 직장 내에서 빠른 승진과 같은 것에 올인했다면 현재는 자산을 보유할 수 있는 부동산과 주식 매입 또는 위험성이 큰 코인을 사는 것에 올인하고 있다. 나 또한 직장에서 좀 더 빠른 승진을 위한 것에 노력하기보다는 오늘 내 주식이 오르는 가에만 더 집중하고 있다. 결국 나는 중산층이 아닌 것이다. 중산층이 되려 하는 평범한 직장인인 것이다. 

더 이상 '평범함'은 중산층에게 입힐 수 있는 타이틀이 아니라
중산층이 되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타이틀이 된 것이다. 


내가 번듯한 직장을 가진 배우자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자가'아파트의 분리수거장에서 '평범함'에 대해 논할 수 있는 것. 지금 나는 과거의 '엄마의 위치'에 가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경제 유튜브를 들으면서 주식공부를 하고, 청약 당첨을 위해 모집공고문을 A3용지로 프린트해서 한글 자라도 놓치지 않고 정독을 하는 삶을 살고 있다. 평범하게 사는 것의 고충에 대해 토로하는 엄마에게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당차게 '나는 평범하게 안 살 거야!'라고 말했던 내가 '평범함'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때 당시 나는 어떻게 살고 싶었을까? 다들 똑같은 교복을 입고 앉아 있는 교실에서 남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었던 나는,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과도 잘 놀면서 외모도 잘 가꾸는 그런 워너비 같은 삶을 살고자 했다. 더 나아가 내가 어른이 된다면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기량을 뽐낼 수 있고, 내가 재밌어하는 일을 하는 그런 커리어우먼이 되어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내 일을 잘 찾아서 해내다 보면 당시에 엄마가 되고자 하는 '평범함'보다는 내가 되고자 하는 '멋있는'삶을 살 수 있을 거라 막연히 생각했고 이루어질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정말 당최 왜 평범하게 살고 싶어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평범함이란 어느 무리에 속해있어도 눈에 띄지 않고, 그 누구도 나의 삶을 워너비로 삼지 않으며, 어떤 영화에서도, 어느 드라마에서도 주인공으로 다뤄주지 않는, 딱 주인공 옆 친구 역할 정도만 할 수 있는 특징이다. 나중에 30대가 되어 중학교 동창을 만났을 때 "너 걔 기억나? 그 주머니에 맨날 빗을 꽂고 다녔던 얘 있잖아. 이름이 뭐였지? 지수였나 지연이였나? 무튼, 걔 기억나?" 이렇게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고 걔, 저것, that, she, he 등 3인칭 대명사로 불려지다가 더 이상 이름을 찾는 것조차 의미 없어 '무튼'이라고 본론으로 넘어가 버려지는 삶. 정녕 나는 이런 존재로 인식되려고 그렇게 열심히 살아온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점점 고등학교를 가고 대학교를 지나 사회에 들어오고서부터는 원래 주인공이란 얼마 없기 때문에 주인공인 것임을 알았다. 부모님이라는 안전지대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안락한 공간과 먹을 식량은 '공산주의'가 아닌 이상 무료로 배급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고, '자본주의'사회에서 나의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그에 따른 근로를 해야 했다. 더군다나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기까지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하고, 밤새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을 제치고 A학점을 따야 하며, 대외활동이나 봉사활동을 통해 경험을 쌓아야 하고, 토익이나 토플같이 영어실력도 키워야 했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은 없었고 '멋있는'삶인 중산층으로 가기 위해서는 지루하고 끝없는 '평범한'삶을 이어나가야 했다. 

그렇게 나는 서른 살이 되었고 여전히 '평범한 공무원'으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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