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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에포크 Jan 10. 2022

단 7일 만에, 출근을 안 했더니 바뀐 변화

이렇게 여유로운 시간들이 존재했다니

 출근을 하지 않은 지 7일이 되었다. 처음 출근하지 않는 월요일은 너무 생경했지만 다시 맞는 월요일은 전보다 여유롭다. 매일 일요일 밤마다 “내일 또 출근이야”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일요일 밤에도 ‘내일 출근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7일간의 나에게 생긴 변화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나는 어떤 부분에서 만족을 느끼고 또 어떤 부분에서 불안함을 느끼게 되었을까?


첫째. 아침 시간의 변화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아침이다. 출근할 때는 7시 10분에 기상했다. 아니 알람이 7시 10분이었고, 7시 15분 정도에 자리에서 일어난다. 일어나서 아이패드를 켜고 실시간으로 방송되는 경제방송 유튜브를 튼다. 나는 매일 유튜브를 켜놓고 출근할 준비를 했다.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한다. 냄비에 계란 2개가 물에 잠길만큼 넣고 중불에서 10분간 삶는다. 계란이 삶아지는 동안 나는 머리를 말렸다. 삶은 계란을 차가운 물에 한소끔 식히는 동안 사과 1개를 집어 깨끗이 세척한 후에 껍질채 잘랐다. 턱관절이 안 좋은 나는 사과를 1/4조각이 아닌 1/8조각으로 먹어야 한다. 삶은 계란과 사과가 준비되면 아이패드 앞에 앉아 경제방송을 시청한다. 7시 50분이 되면 양치를 한다. 양치를 할 때도 내 두 눈과 귀는 경제방송에 보면서 양치를 하곤 했다. 한마디 말도 놓쳐서 안 되는 수험생 모드로 아침부터 머리를 깨웠다. 날씨를 확인하고 옷을 입는다. 이제 아이패드를 화장대로 위치시킨다. 화장할 시간이다. 많은 시간이 들지는 않는다. 선크림을 바르고 파운데이션을 손등에 덜어낸다. 쿠션에 있던 퍼프로 파운데이션을 소량 찍어 얼굴에 군데군데 두들겨준다. 피부 화장이 끝나면 틴트로 입술을 바르고, 남은 틴트를 눈두덩이에 발랐다. 브러시 같은 것은 이용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두 개로 눈두덩이를 문질러 섀도를 끝낸다. 시간이 조금 남으면 먹은 것들을 조금 정리한다. 그리곤 책상에 앉아 마저 경제방송을 시청하며 셔틀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시간을 체크한다. 8시 15분이면 이제 집에서 나가야 한다. 집에서 7분 정도 걸어가면 셔틀버스를 탈 수 있다. 줄 서 있는 다른 직원들 뒤에 나도 자리 잡는다. 내 뒤에 또 다른 직원이 자리 잡고 서있는다. 매일 보는 사람들이지만 모르는 사람들이다. 셔틀버스가 오면 차례로 버스에 탑승한다.


 쉬는 일주일 간은 아침의 속도부터 굉장히 달랐다. 우선 아침은 7시 30분에 일어났다. 조금 뭉그적 되는 날은 7시 40분, 어느 날은 7시 50분이다. 8시 전에만 일어나면 된다. 그러면 괜찮은 오전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일어나서 미리 깔아놓은 요가매트에 앉아 아침 명상 영상을 튼다. 5분 정도 명상을 하고 10분 정도는 간단한 스트레칭을 한다. 어느 정도 정신이 깨어나면 가글을 하고 물을 마신다. 턱관절 장애로 인해 밤마다 스플린트 교정기를 하고 자는데, 교정기 때문에 아침이면 입안이 건조하고 찝찝한 느낌이 든다. 바로 물을 마시는 것보다 밤 동안 입안에 있던 세균을 씻어내고 물을 마시는 것이 좋다고 하여 먼저 가글을 한다. 이제 페트병에 있는 생수를 컵에 따른다. 물을 한잔 마시면서 공복에 먹어야 하는 유산균과 관절영양제를 하나 챙겨 먹는다. 엄마가 보내준 오가피즙도 생각이 나면 한 잔 따라 마신다. 아침에 일어나면 항상 나는 배가 고프다. 삶은 계란 2개와 사과 1개를 준비한다. 책상에 앉아서 아침을 먹는다. 경제방송은 일주일 간은 듣지 않았다. 가지고 있는 주식도 모두 정리했다. 쉬는 동안 주식을 너무 많이 확인하게 되는 것이 주식을 정리한 이유다. 계속 보게 되니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고 마음이 뒤숭숭하여 편안히 내 할 일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한동안 일주일간은 주식을 정리하고 경제방송도 보지 않았다. 어느 정도 내가 휴식기의 루틴에 익숙해지고 나면 다시 경제 공부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잠시 나의 투자 활동도 휴지기를 가지기로 하였다. 오늘 할 일을 정리하고 책을 읽는다. 책을 읽고 좋은 구절은 필사를 하면서 정리한다. 오전에 글쓰기는 잘 되지 않아 어떤 주제로 글을 쓰면 좋을지 맥락만 정리한다. 그렇게 여유롭게 나의 시간을 보내다 보면 11시 30분 정도가 된다. 


 모든 것이 여유롭다. 분단위로 쪼개가며 아침을 준비하던 출근길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모든 시간을 나를 위해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좋은 점은 아침 명상을 여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과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이다. 매일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아니지만, 책을 읽으면서 오전을 시작하게 되면 나 스스로 하루에 대해 만족감이 높아진다. 이렇게 오전만 잘 보내도 하루의 반 이상은 잘 보낸 것이다. 


둘째, 평일 오후의 여유로움


직장생활을 할 때는 알 수 없는, 평일 오후 바깥의 상황은 생각보다 더 여유로웠다. 햇살이 좋으면 햇살을 맞으러 산책을 갈 수 있었다. 직장에서는 점심시간 1시간을 쪼개 밥도 먹고, 산책도 하고, 커피도 사 오는 시간이었지만, 이제는 1시간을 통째로 산책을 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점심을 만들어 먹고 배가 불러오면 산책을 갔다. 한 시간 정도 걷고 나면 여유로운 오후라는 시간이 더 크게 느껴진다.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여유롭다. 시간대별로 공원에 오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그 무게가 다르다. 아침에 공원에 오는 사람들은 발걸음이 가볍다. 가볍게 아침을 시작하고 싶은 사람들이 오는 시간이라 그런가. 그들이 신고 있는 러닝화도 광고에서 보던 몇 그램짜리 가벼운 러닝화이고, 뛰는 폼도 예사롭지 않다. 관리가 잘 된 중년의 여성이 러닝을 한다. 내 옆을 지나갈 때면 그 에너제틱한 공기가 내 콧등에 닿는다. 60대의 할아버지들도 활기를 뿜으며 아침 공원 거리를 채운다. 그러나 오후는 다르다. 오후 공원 사람들의 발걸음은 템포가 다르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내딛는 다리 길이도 다르다. 여유가 넘친다. 매일 여유로운 오후를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이 내딛는 발걸음이다. 어딘가에 쫓기지 않고 나의 속도로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발걸음이다. 기분 좋은 늘어짐이다. 자유로운 발소리이다. 카페에 가도 이 발걸음들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재촉하는 목소리도 부산스러운 움직임도 없다. 다들 추운 겨울, 유일하게 온도가 올라간 2-3시의 오후를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사무실에만 갇혀 전화를 받던 그 공간과는 온도가 다른다. 추운 겨울 바깥의 한기가 들어오는 것에 대항하기 위해 틀어진 히터가 눈과 목을 건조하게 만들 던 사무실은 이제 없다. 적당히 데워진 카페 안의 온도와 통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문으로 들어오는 한기를 잊게 만든다. 흘러가는 시간의 속도도, 음악도, 소음도 모두 다 다르다. 햇살 좋은 오후란 이런 거구나. 나만 빼고 이 좋은 시간들을 다른 사람들은 한가로이 소유하고 있었구나. 이제 나도 이 시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아니 즐기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서 한참 멍하니 창만 바라보고 있곤 했다. 나는 마치 겨우 장기간의 연차를 쓴 후, 멀리 유럽 어느 나라에서 노상카페에 앉아있는 외국인들을 따라 하는 관광객의 모습인 듯했다. 


셋째, 저녁과 밤의 변화


쉬게 된 월요일 첫날부터 나는 요가 수업을 등록했다. 간간히 직장생활을 하면서 필라테스를 하고는 했는데 주 3회 그룹 필라테스로는 내 신체가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근육량이 많이 증가하지도, 체형이 더 좋아지지도 않았다. 운동을 하고 왔다는 뿌듯함은 있었지만 전과 다르게 만족도가 많이 떨어져서 이번에는 요가 수업을 등록했다. 이번에 등록한 요가학원은 저녁 80분간 요가 시퀀스를 하는 수업이 있어서 몇 년 만에 요가를 제대로 했다. 유튜브에서 보고 따라한 적은 몇 번 있어도 수업을 듣는 것은 아주 오랜만이었다. 수업은 일시정지가 없어서 시퀀스를 계속 따라 해야 했는데 그래도 아는 동작들이 있어서 남들보다 1초 정도 느리지만 잘 따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1초 느린 요가를 80분하고서 다음날은 온몸에 근육통이 왔다. 안 쓰던 근육들을 수축하고 이완하다 보니, 앉았다 일어날 때마다 곳곳이 아팠다. 정확히 어느 곳이 아픈지 짚어낼 수도 없었다. 하나의 근육을 키우는 동작들이 아니다 보니 한 부위가 아닌 전체적인 부위에 근육통이 왔다. 일어나거나 움직일 때마다 "아이고"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지만 기분 좋은 근육통이었다. 요가학원은 집에서 30분 정도는 걸어야 하는 곳이라 운동을 끝나고 집에 오면 8시 반 정도 되었다. 샤워를 마치면 9시 정도. 그때는 남은 하루의 일들을 마무리했다. 일을 할 때나 하지 않을 때나 저녁시간은 짧은 게 맞았다. 


출근을 하지 않다 보니 하루 운동량이 크지 않아 잠에 드는 것이 힘들었다. 11시만 되면 졸음이 몰려와 어쩔 수 없이 바로 잠들고는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11시 반 정도에 졸음이 찾아온다. 하루가 고단하여 픽픽 쓰러져 자던 나는 이제 수면을 유도하는 명상을 듣고 자게 되었다. 왜 프리랜서들이 잠을 잘 자고 규칙적인 삶은 유지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정해진 규칙들이 없다 보니 잠을 자야 하는 때가 자유로웠다. '오늘 잠을 자야 내일 출근할 수 있지'라는 압박감도 없었다. 그렇게 11시에 자지 않고 조금 더 핸드폰을 봤더니 11시 30분이 되고, 그렇게 12시가 된다. 그러나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그다음 날 제시간에 일어날 수 없고 그렇게 하루의 균형이 무너져버리고 만다. 이래선 안된다. 그렇지만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아마도 이제 내가 하루를 컨트롤해야 한다는 불안감에 더 잠을 못 자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자야 하는데'라는 불안감과 압박감이 내 몸을 뒤척이게 하는 것이다. 쉬고 있지만 건강하게 쉬는 게 아니라 늘어져버리는 게 아닐까라는 걱정에 잠을 설친다. 쉬고 있지만 나의 불안감이 다 사라지지는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일주일 간을 쉬면서 역시 사람은 휴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여러 가지 자극적인 것들이 나를 덮쳐오지 않고, 오로지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나를 어지럽게 했던 자극들, 소음들이 없는 고요한 나의 공간에서 내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은 정말 중요하다. 쉬는 일주일 동안 우울 발작이 나타나지도 않았고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내 삶이 변화하고 있다는, 내가 '잘될 수 있다', '잘하고 있다'는 희망적인 말들이 나를 들뜨게 했다. "내일은 또 어떤 즐거운 일을 해볼까?", "어떤 재밌는 책을 읽을까?"라는 생각들이 내 뇌를 거쳐갔고, 나는 이 휴식기를 통해 앞으로 살아갈 10년의 기반을 다져놓을 수 있다는 생각이 날 긍정적으로 변화하게 했다. 단 7일 만에, 회사를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긍정의 기운이 넘치는 것이다. 물론, 이 생활이 익숙하지 않아 잠을 설치고는 있지만 점차 이 생활에 익숙해지면 다시 잠을 잘 잘 수 있을 것이다. 내 루틴이 정착되고 나면 잠을 자는 것도 일어나는 것도 내 생활에 맞춰 바이오리듬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쉬어야한다. 쉬어야 나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사라져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쉬고보니 '필요한 것'보다 '사라져야할 것'이 더 중요했음을.
그것을 분별하는 것이 더 중요했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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