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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에포크 Jan 18. 2022

아니, 나 빼고 다 주식하고 있었네

적금 이자로 현타가 온 나의 주식 입문기 (1)

2021년 1월, 정신없이 일만 해야 했던 팀을 벗어나 다른 팀으로 인사이동이 되었다. 사업을 관리하는 팀이었기 때문에 내 능력대로 시간을 조절하면서 일할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갑자기 업무에 여유가 생겼고, 나는 갑자기 생긴 여유의 부적응기를 보내고 있었다.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12시 20분부터 티타임을 가지고 1시까지는 업무적인 카톡도 전화도 오지 않는다니. 나는 적막한 티타임이 어색해서 가만히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주식하고 있어?" 

"주식이요? 네. 저 사놓은 게 있기는 한데..."


주식을 처음 시작한 것은 스물일곱이었다. 공무원에 입사하고서 이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맘껏 하며 살고자 하며 많은 취미생활과 모임 활동을 했었다. 그때는 신입이기도 하고 내 업무가 많이 바쁘지 않아서 워라밸이 가능했다. 내 업무를 빨리 해치우면 6시면 제깍 퇴근할 수 있었고 주말도 당직이 아니면 출근할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퇴근하고 주 2-3회는 필라테스를 갔다. 처음 하는 필라테스는 숨이 찰만큼 힘들었지만 점점 실력이 늘어가는 즐거움 때문에 퇴근 후 필라테스는 나의 낙이었다. 주말에도 가능하면 오전에 필라테스를 갔고, 필라테스를 갈 수 없는 날에는 토론모임 활동을 했다. 한 달에 한 번은 서울로 독서토론 모임을 나갔다. 병원에서 일할 때는 불규칙한 스케줄로 인해 할 수 없었던 것들을 모조리 다 했다. 주말에 친구들을 만날 새도 없이 토론모임과 운동을 하느라 바빴다. 사람들과 책을 읽고 토론하고, 영화를 보고 토론하고, 현대미술에 대해 토론했다. 비록 적은 월급으로 취미생활을 하기에는 빠듯했지만 생동감 있는 하루들을 보냈다. 워라밸이 지켜지는 삶. 이게 내가 공무원을 한고자 한 이유 아녔던가. 다양한 분야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주제에 대해 토론을 하고, 전문가를 만나 그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고, 가고 싶었던 전시를 갔다. 내 사고가 확장되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주장을 수용하고, 이게 바로 내가 만들어가는 진짜 내 삶이 아닌가! 그러나 어느 한 중요한 부분이 계속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바로 경제지식과 투자관념이었다. 돈을 아껴 쓰고 저금하는 것은 잘 알지만 그 외에 투자의 영역에서는 무지했다. 주식과 부동산은 아예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격주로 열리는 재테크 기초반 클래스를 들어갔다. 


 선생님은 경제부 기자분이셨고, 주식과 부동산에 대해 알려주는 클래스였다. 그때 당시 '주린이'도 되지 못했던 나는 개념만을 이해하기에도 어려웠지만 배우고자 하는 열의는 높았다. 선생님은 격주마다 피피티 자료를 빔으로 띄워 큰 화면을 두고 주식, 금리와 채권, 부동산 등 여러 가지 개념을 열정적으로 가르쳐주셨다. 새로 듣는 용어들이 어색했지만 뭔가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아 노트에 필기를 해가면서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이 클래스에 나온 사람들을 관찰했다. 수업이 끝나면 점심을 같이 먹거나 티타임을 가지고는 했는데, 내가 이때까지 사귀었던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와는 주제가 역시 달랐다. 대화는 삼성전자의 주가와 배당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쿠팡 직원이었던 주식고수는 월급은 투자금으로 쓰고 생활비를 주식을 통해 번다고 했다. 또 모델같이 키가 컸던 쇼트커트의 여성 사업가는 부동산을 통해 여러 사람들과 어떤 건물에 투자한다고 했다. 강남에 있는 유명한 산후조리원에서 일하시는 분은 오피스텔 투자를 해서 월세를 받았고, 매매가보다 더 높은 값에 팔았다고 했다. 이때까지 내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이야기들이었다. 


여기 오는 사람들은 대략 삼십 대 초중반 여자들이었고, 내 또래는 나를 포함해 3명 정도였다. 나처럼 간호사를 하다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다니는 한 살 많은 언니와 일본계 회사에서 일하는 당찬 언니, 그리고 공무원인 나, 이렇게 3명이 20대였다. 30대의 시선에서 우리들은 '기특한 아이'였다. 본인들은 20대 후반에 술 먹고 놀기 바빴는데 어떻게 이런 곳에 와서 재테크 강의를 듣고 있는지 아주 기특하다며 대단한 아이들이라고 우리를 치켜세워주었다. 조금 앞서 나가고 있다는 생각에 우리 3명은 열정이 가득 차올라서 선생님이 알려주는 경제 독서토론 모임에 나가기도 했다. 국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모임인 듯했고, 유명한 경제도서 저자들의 특강도 있었다. 우리는 딱 한번 그 모임을 나갔었는데, 그때 홍춘옥 박사님의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 책이 나왔을 때라 박사님이 나와서 강의를 해주었다. 그 모임은 다른 독서토론모임과 달리 좀 더 전문적이었고 증권가 사람, 변호사, 국회에 관련된 사람들 등 내가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참석했다.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그 전문성에 압도되었고 깜냥이 되지 않아 더 이상 그 모임은 나가지 못했지만, 계속 모임에 참석했다면 아마도 지금 쯤은 보는 눈이 확 높아졌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 당시의 나는 열정은 가득했지만
주식을 시작하기에 모아놓은 돈이 거의 없었다. 

사회초년생이 모두 그러하듯, 은행의 낮은 적금상품에 가입했었고 그 적금을 깨는 것은 금기시되고 있었기 때문에 내 수중에 돈이란 없었다. 그래서 배운 것을 실전으로 옮겨 투자활동을 하지는 못했다. 대신 돈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통장을 어떻게 쪼개고, 적금은 어떻게 해야 돈을 잘 모을 수 있는지 등 돈을 허투루 쓰지 않는 방법들도 배울 수 있었다. 시드머니가 있었던 심평원 언니는 여름이 다가오기 전 선풍기 회사에 투자해 높은 수익률을 냈고, 클래스 우등생으로 상품권을 받았다. 물론 그 언니도 시드머니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높은 수익률에도 불구하고 치킨 한 마리 정도 값을 벌었다. 클래스는 3개월 동안 2주마다 열렸고, '지금 사람들은 어느 부동산을 사려고 하나' , '5억이 있으면 서울에 어디에 집을 살 것인가?' 등 여러 가지 주제로 나의 경제활동과 재테크에 대한 눈을 뜨게 했다. 클래스가 끝나고 나는 '증권계좌를 개설'이라는 첫 단추를 꼈고, 적금이 끝나면 시드머니를 넣어 주식을 해보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적금이 만료될 때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때를 기다리며 경제지식을 넓히기 위해 출근할 때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경제용어와 뉴스들을 공부했다. 


  마침내 친구가 증권가에서 일하는 남자 친구를 만나고 있었고, 나에게 어떤 주식이 이번에 새로 상장하는데 괜찮다고 하더라 라는 카더라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래. 증권가 직원이 여자 친구한테 이상한 것을 추천했을 리는 없어" 보였기에 나도 그 주식을 샀다. 그렇게 나는 열심히 재테크 수업과 팟캐스트를 들었지만, 카더라 소식과 함께 처음 주식을 시작하는 아이러니가 되었다. 돈이 없었던 나는 30만 원 정도의 시드머니로 주식을 시작했고, 남의 말을 듣고 사는 주식은 처음에는 오르는 듯싶지만 역시나 곧 다시 떨어졌다. 처음 주식을 해 본 나는 내 소중한 돈이 마이너스가 나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떨리고 너무 슬펐다. 2만 원의 손해도 싫었다. 3만 원, 4만 원 그렇게 자꾸 마이너스가 났지만 이걸 팔아버릴 수는 없었다. 내 소중한 4만 원. 잃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주식을 팔지 않고 기다렸다. 말이 좋아 기다린 것이지 일이 바빠지면서 주식은 내 기억에서 잊혀버렸다. 그냥 방치해둔 것이다. 그렇게 6개월이 흐르고 다시 증권어플에 들어갔다. 플러스였다! 내가 샀던 주식이 올라서 빨간불이 된 것이다! 역시 증권가 직원은 달랐다. 나는 이게 웬일이야! 하며 전량 매도를 했고 치킨 3마리 값을 벌었다. 기뻤다. 200만 원도 안 되는 급여를 받던 나에게 1,2만 원은 굉장히 소중했고 그렇게 돈을 벌어본 적은 처음이라서 너무 설렜다. 무엇보다 돈을 까먹지 않게 돼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주식이 무서운 것임을 알게 되자 주식을 사는 게 무서워졌다. 자연스레 경제 팟캐스트도 점점 안 듣게 되었고 경제관념은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 머물러있기만 했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졌고 전 세계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주린이인 나는 그때도 얼마나 심각한지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고 일하기 바빴다. 그러다 사람들이 여행을 못 가게 되면서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주식 중에 나중에 여행은 가게 되겠지, 설마 항공사가 망하겠어하면서 항공주를 샀다. 2만 원짜리 주식을 10개 사놓고 코로나로 일이 너무 바빠지면서 일 년 동안 그렇게 내 주식은 머물러 있었다. 다른 것을 더 샀으면 좋았겠지만 그럴만한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그렇게 1년 가까이 바쁘게 일만 하다가 드디어 조금 여유롭게 다닐 수 있는 팀으로 오게 된 것이다. 


나에게 다시 주식이라는 세계가 찾아왔다.


"오, 무슨 주식 가지고 있어?"

"저는 항공주 있는데 10개밖에 없어요 ㅎㅎ"

"오, 그래도 많이 올랐네. 너무 적어서 그렇지."

"주식 많이 하셨어요? 얼마나 버셨는데요?"


 2020년 하반기는 어마어마한 불장이었고 잘나가는 종목을 사기만 하면 주식들이 다 올랐다. 동학 개미 운동으로 삼성전자는 '4만전자'에서 '8만전자'가 되었고 유튜브에서는 '10만전자'가 될거라는 영상들이 줄기차게 올라왔다. 2차 전지, 신재생 등의 주식으로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게 되었다. 2021년 1월, 뒤쳐질 수 없던 많은 개미들이 더욱더 주식시장에 뛰어들면서 개미들의 증권계좌가 점점 많아졌고, 개인들의 예수금도 최대로 늘어났다. 한참 잠 못 자고 일만 하다가 다시 정상적인 세상에 돌아와 보니, 내가 일을 하고 있는 동안 사람들은 주식을 통해 돈을 벌고 있었다. 허탈함이 몰려왔다. 주식을 할 시간도 없이 일했던 나만 바보였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시간을 돌릴 수도 없고, 내가 업무를 바꿀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 지금에서라도 주식을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는 조급함이 들었다. 무섭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한 달 후, 나는 만기 된 적금을 찾으러 은행에 갔다. 1년짜리 적금이라 2%의 이자도 안 되는 금액이 딸려왔다. 열심히 모았는데 고작 이자가 몇만 원이었다. 5만 원도 채 되지 않은 이자를 손에 쥐고 다시 통장에 입금했다. 흠, 뭔가 잘못하고 있었다. 이건 아니었다. 적금이 아닌 주식을 해야 했다. 시작해야 했다. 나는 만기 된 적금과 몇만 원의 이자를 주식 계좌에 모조리 입금했다. 내 주식계좌에 드디어 몇백만 원이 들어왔다. 


나도 불장에 뛰어들어가보겠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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