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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에포크 Feb 07. 2022

'예비'아버님 댁

이제 곧 하나의 이야기가 될 공간 

물방울 가득한 습기를 머금은 여름이 지나고, 머리칼을 시원하게 날릴 수 있는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나는 적당한 높이의 단이 있는 버진로드에서 아빠와 손을 잡으며 그 거리를 한번 걷고, 남자 친구와 다시 그 거리를 한번 걸어 그렇게 파트너를 달리하여 처음 걸었던 자리로 돌아오면 비로소 '남편'이 생긴다. 


아직 북동쪽 시베리아 바람이 시원하다 못해 온몸을 긴장시키고, 마스크로 인해 따뜻한 콧바람과 차가운 바깥바람이 만나 그리 길지 않은 속눈썹에 물방울이 생기는 겨울에는 '예비'라는 형용사를 붙여 새로 생길 가족을 칭하게 된다. 


그 겨울, 설날이 오기 일주일 전 나는 남자 친구와 '예비'아머님과 함께 파주에 있는 '예비'아버님 댁으로 향했다. 일산에서도 한 시간을 더 자유로를 달려야 하는 먼 거리였다. 남자 친구는 "저기 보이는 곳이 북한이야"라며 남쪽 소도시에서 살아온 나에게 남한의 북쪽 끝이며 북한의 남쪽 끝인 그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렇게 북한을 보면서 한참을 더 달려 점점 여기가 북한인가 싶을 정도로 더욱더 북쪽으로 향하여 '예비'아버님 댁에 도착했다. 겨울이라 논에는 작물들이 없었고, 평평한 논밭에는 백 마리쯤은 넘어 보이는 오리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오리들은 우리가 엔진 소리로 놀라게 하려고 발장난을 해봐도 놀라는 시늉은커녕 날갯짓을 퍼덕이지도 않고 그저 차에서 좀 먼 곳으로 뒤뚱뒤뚱 천천히 걸어갔다. 뛰지도 않고 우리의 장난에 기껏 반응해준다는 느낌이었다. 피하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 몇몇 오리들은 마치 나에게 '어쩔티비' 라고 말하는 듯했다. (하, 저쩔냉장고)


연두색의 철제로 된 담장이 둘러진 '예비'아버님 댁의 대문으로 들어갔다. 내 생각보다 부지가 넓고 마당이 컸다. 남자 친구는 익숙하게 차를 주차하고 '예비'어머님의 명령에 따라 뒤 트렁크에서 폐기 뚝배기를 몇 자루 꺼내서 구석으로 옮겼다. "파주는 추우니까 옷 잘 껴입어야 돼"라고 말했던 남자 친구의 말이 실감 났다. 일산과는 달리 더 차가운 냉기가 얼굴에 닿았다. 남자 친구의 말을 듣고 바지 안에 레깅스를 입고 오기 잘했다. '예비'어머님은 먼저 현관으로 들어섰고 '예비'아버님은 우리가 오는 소리를 듣고 현관문을 나와 서계셨다. 나는 혼자 먼저 걸어가기 어색하여 남자 친구가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다가 같이 현관문 쪽으로 걸어갔다. '예비'아버님은 근엄한 모습으로 문 앞에 서계시면서 우리의 인사에 화답하셨다. 설날 전의 인사라 과일박스를 사 온 내 모습을 보고 '예비'어머니는 웃으셨고 '예비'아버님도 이런 거를 사 왔냐며 반색하셨다. "선물을 받았으니 나도 뭘 좀 줘야지!" 라며 집안에 들어가서 현금을 꺼내시더니 "많이는 아니고 이번에는 조금만 준다"라며 오만 원권 몇 장을 주황빛을 띄는 얇은 노랑 봉투에 넣어 주셨다. 남자 친구는 어색해하는 나를 위해 분위기를 좀 더 가볍게 하려고 먼저 다가가서 "감사합니다"라는 받는 시늉을 하였고, '예비'아버님은 "너 말고!"라며 나에게 용돈을 건네셨다. 그렇게 서로의 선물이 오가고 집안을 구경했다. 집안의 구조는 여느 시골집처럼 되어있었고 원래 '예비'어머님과 같이 사시려 했었던 집인지라 살림살이가 잘 갖춰져 있었다. 잠깐 집 구경을 하고 한우를 사주신다는 '예비'아버님과 '예비'어머님을 따라 '예비'아버님 차를 타고 고기를 먹으러 갔다. 숨쉬기가 어려울 만큼 배가 불러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남자 친구랑 천천히 집 밖을 구경했다. 


집 마당에는 소나무들이 간격을 두고 심어져 있었다. 아마 남자 친구의 두 팔의 길이만큼의 간격으로 소나무들이 심어져 있어 집의 바깥면과 안쪽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봄이 되면 파릇해질 잔디들이 마당에는 심어져 있었고 마당 중앙에 있는 집의 옆자리에는 작은 정자도 마련되어 있었다. 온도가 좀 올라가 따뜻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계절이 오면 정자에 앉아서 집 앞에 있는 산을 보면 수묵화 하나쯤은 금방이라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남자 친구와 함께 집 마당을 구경하면서 나는 자연스레 할머니, 할아버지가 떠올랐고, 나중에 내 아이가 생겼을 때 이곳에 오는 상상을 했다. 우리 집은 어렸을 때부터 아파트에 살았기 때문에 전원주택은 나에게 할머니 집으로 밖에 기억되지 않는다. 어렸을 때 할머니 집에 놀러 가면 우리가 오는 것을 알고 마당에 나와 우리를 기다리던 할머니 모습, "아유, 왔는가?"라며 전라도 사투리로 인사를 하고 '우리 강아지'라며 오빠랑 나를 안아주던 할머니 냄새, 여름이면 아빠랑 평상에 앉아서 먹기도 전에 녹아버리는 아이스크림을 흘리지 않고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던 할머니, 부엌 옆 큰 앵두나무에서 앵두를 따서 먹었던 잊을 수 없이 새콤하고 달았던 빨간 앵두의 맛, 겨울이면 뜨겁게 불을 땐 바닥장판으로 인해 아무리 두꺼운 이불도 가차 없이 뚫고선 열을 내뿜어 잠을 잘 수 없었던 마그마 바닥, 집으로 돌아갈 때면 저수지 앞에서 꼬깃한 용돈을 오빠랑 나한테 쥐어주며 손 흔들던 할머니의 모습. 나에게 주택이란 나의 어렸을 적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던 할머니가 있는 집이었기에 자연스레 아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중에 내 아이가 할아버지를 만나러 이곳에 오면 마중 나올 할아버지의 모습이 '예비'아버님에게서 보이고, 안아줄 할머니의 모습이 '예비'어머님에게 보인다. 파릇파릇한 잔디가 자라 푹신한 땅을 형성하게 되면 이제는 잘 걷고 조금은 뛸 수 있는 내 아이가 '쿵'하고 넘어질 곳이 보이고, 아빠가 된 남자 친구가 그런 아이를 일으켜 세우는 모습이 보인다. 햇볕이 좋은 날씨에는 정자에 앉아서 멀리서 보면 도란도란 행복한 식사시간이겠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아이에게 밥을 먹이기 위한 조금 정신없는, 여느 아이가 있는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식사시간이 보인다. 그렇게 집을 구경하면서 나는 나의 모습과 내 아이를 생각했고, 내가 느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모습을 내 아이가 꼭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 '예비'아버님과 '예비'어머님이 내 아이가 뛸 수 있을 만큼 자라서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 이쁜 짓을 하면서 사랑받을 수 있을 때까지 건강하게 살아계시기를 바랐다. 그리고 남자 친구가 아빠가 되어 자신의 아이와, 자신의 부모님이 함께하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기를, 그 옆에 내가 자리하고 있기를 소망했다. 


이제 곧 하나의 이야기가 될, 여러 목소리가 울리게 될, 이 공간을 나는 차가운 북한의 바람을 맞으며 남자친구와 함께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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