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벨에포크 Feb 18. 2022

바게트 샌드위치

연약한 입천장 다 까져요

아침에 이불을 걷어차고 침대에 걸쳐 앉았다. 실내화를 신고 집안을 걸어 다니자 등에 뻣뻣한 감각이 느껴졌다. 흐물흐물 유연해야 할 내 등이 직사각형의 철판으로 모양을 바꾼 듯했다. 아마 어제 유튜브를 보면서 등과 상체운동을 열심히 따라한 덕분에 생긴 철판이었다.


저번 주 친한 언니에게 생일선물로 요가복을 선물 받았다.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받은 거라 사이즈를 정할 수 없었다. 적당히 내 사이즈를 보고 잘 주문해주었거니 싶어 배송이 오자마자 택을 떼고 서랍장에 고이 모셔놓았다. 모처럼 운동을 하기 위해 등이 좀 파인 슬리브리스 상의를 입었는데, 아니 입으려 시도하였다가 더 맞을 것이다. 우선 머리가 먼저 나와야 하는데 머리만 먼저 나와버리면 팔이 나오기 힘드니까 머리를 삼분의 일 가량을 세상에 보이게 한 다음, 팔을 자연스럽게 연결시켜서 입어야 했다. 그렇게 애써서 요가복을 입었다. 내 사이즈보다 작은 옷이었다. 사이즈를 찾아보니 xs이다. 내가 아무리 언니보다 덩치가 작다한들 xs를 입을 만큼 작지는 않은데 언니는 나를 한참 과대평가 했나 보다. 작은 요가복을 입고 거울 앞에 섰다. x자로 예쁘게 등 라인이 들어가 있는 옷 덕분에 내 등살은 쪼이지 않는 부분을 찾아 우악스럽게 튀어나오고 있었다. 살들은 숨쉬기 어려워 보였다. 마치 고문을 당하듯 좀 괴로워도 보였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아기 수영복을 입은 것 같았다. 쉬느라 움직임이 적어진 탓에 몸에는 군살이 점점 붙었고 타이트한, 아니 아기 수영복을 입고 보니 배가 볼록 툭 튀어나와 있었다. 옷이 작은 탓도 있지만 살이 찐 탓도 있었다. 배에 아무리 힘을 준다 해도 이제 가려지지 않는 뱃살이 되었다. 이제 진짜 살을 좀 빼야 했다. 탄탄한 근육을 좀 만들어야 했다. 근육이 없는 지방들이 중력의 방향대로 추욱 늘어지고 있었다. 


유튜브를 보고 상체운동을 열심히, 아니 조지기로 했다. 우선 상체를 집중적으로 운동하기 위해 탄탄한 상체를 만드는 15분짜리 동영상을 틀었다. 플랭크가 주된 동작이었고, 어깨를 내리고 겨드랑이에 힘을 주는 동작들이 많았다. 예쁜 어깨와 팔 라인을 만들기 위한 주된 근육을 기르는 것이었다. 평소에 쓰지 않던 근육이기에 힘을 주는 것도 어색했지만 이미 등살과 뱃살로 충격을 받은 나는 열정이 넘쳤다. 동영상에 나오는 날씬하면서 탄탄한 몸매를 가지고 있는 강사를 보며 어떻게 힘들어 보이지 않는 얼굴로 저 동작들을 할 수 있는지 감탄했다. 나는 숨을 후후 내쉬면서 한 동작 한 동작을 따라 했다. 내 열정에 15분은 너무 짧았기에 유튜브 채널에 있는 운동 영상 몇 개를 더 보고 따라 했다. 그렇게 팔과 복부와 등에 힘을 줬다 뺐다 했더니 오늘 아침에 팔과 등이 뻣뻣하게 근육이 잡힌 것이다. 


등 전체에 근육통이 온 적은 필라테스를 할 때도 없었다. 대부분 엉덩이나 허벅지, 복부에 근육통이 오는데 등에 진하게 근육통이 온 것을 보면 그래도 제대로 조졌다 싶었다. 기분이 좋다. 이렇게 열심히 운동을 했으니 당연히 저녁은 닭가슴살을 먹었다. 저번 주에 마켓 컬리에서 주문한 큐브형 닭가슴살이다. 어니언 맛 닭가슴살은 전혀 닭가슴살 같지 않고 맛있었다. 요즘엔 닭가슴살 시장이 커져서 맛있는 닭가슴살을 먹을 수 있었다. 두유 한 컵과 닭가슴살을 먹고 생각했다. 빵이 먹고 싶다. 두유도 맛있고 닭가슴살도 맛있었다. 빵이 먹고 싶다. 빵이 맛있다는 그 빵집을 가고 싶다. 아니야. 닭가슴살은 맛있다. 그 빵집의 시그니처 빵들을 먹고 싶다.  닭가슴살은 맛있다. 나는 빵순이가 아니지만 지금은 빵이 먹고 싶다.


바게트 샌드위치 _후앙

그래서 오늘은 아침부터 그 빵집에 왔다. 이 빵집에서 유명한 바게트 샌드위치를 샀다. 저번에 큰 사이즈로 샀더니 다 먹기 힘들어서 작은 사이즈 샌드위치를 샀다. 특제소스가 바게트 안쪽면에 발라져 있고 햄과 치즈, 양상추, 수제피클이 들어가 있는 간단한 샌드위치다. 턱관절이 안 좋아 입을 벌리는 게 힘들지만 그래도 애써 입을 벌리고 바게트를 집어 입안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좀 눌러본다. 내용물이 압력에 의해 빠져 버리기 전에 어서 입속으로 넣었다. 바삭한 소리와 함께 거친 바게트표면이 입안으로 들어왔고 양상추가 아삭하며 함께 씹혔다. 턱이 조금 아프지만 그래도 감수할 수 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한 잔 들이켠다. 이것이다. 방금 만든 바게트와 신선한 야채들이 입안에서 만나 톡톡 튕길 때 쓰디쓴 아메리카노가 재기 발랄한 야채들과 만나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한동안 카레만 먹었더니 이런 프레시 함이 반갑다. 거칠거칠한 바게트가 연약한 입천장을 다 까버리고있지만 이게 바게트 샌드위치의 매력이라며 계속 입안으로 바게트를 집어 넣는다. 바게트. 딱딱하고 거칠거칠한 빵. 


이 빵을 본격적으로 접했던 것은 스페인 여행에서였다.


호기롭게 간호국시를 통과하고 병원 입사 전에 친구들과 함께 스페인으로 여행을 갔다. 그동안 알바를 해서 번 돈과 부모님이 조금 도와준 돈으로 시작된 여행이었기에 여행경비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친구들이랑 스페인에서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자주 먹었다. 그때 먹었던 샌드위치들이 대부분 바게트 샌드위치였다. 처음에 우리는 보편적인 샌드위치였기에 큰 경계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샌드위치를 받아 들고 한입을 무는 순간 바게트의 거칠거칠한 표면이 반들반들한 입술과 입천장에 닿았다. 배가 고팠기에 크게 앙 하고 한입 물었다. 그리 크지 않은 입이었기에 내용물은 없이 거칠거칠한 빵만 입천장을 공격하며 들어왔다. 파리바게트의 부드러운 식빵이 야채들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던 샌드위치만 먹어온 나로서는 적잖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오오..." 하며 당황스러운 웃음을 작게 내보이며 서로의 눈을 보았다. 어쩔 수 없다는 눈빛이다. 하루 종일 관광을 하느라 다리는 아프고 배는 고팠기 때문에 이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고 다음 관광지로 가야 했다. 어느 정도 먹다 보니 입천장이 조금 적응이 된 건지 이미 다 까져버려 감각이 없는 건지, 이제 소스 부분과 고기가 나와 맛있어버린 건지, 먹다 보니 또 잘 그렇게 샌드위치를 먹었다. 음료와 함께 큰 샌드위치를 해치우고 셀프로 쓰레기를 치우고 샌드위치 가게에서 나왔다. "맛있네" 라며 간단히 후기를 남기고 입에 묻은 빵부스러기를 털며 여행을 진행했다.

스페인에서 먹은 바게트 샌드위치

우리는 그 다음날 점심도 그 샌드위치 집에 갔다. 다른 선택지가 많이 없기도 했지만 왠지 모르게 다시 가고 싶기도 했다. 저번이랑 다른 맛으로 샌드위치를 시키고 자리에 앉았다. 주문한 샌드위치를 받아 들고 우리는 또 앙 하고 그 바게트 빵을 물었다. 하루가 지났다고 다시 연약해진 입천장은 어제의 당황스러움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그래도 입 밖으로 당황스러운 웃음이 흘러나오지는 않았다. 익숙해져야 할 때였다. 누구도 그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빵이 좀 딱딱하네". "입천장 아파" 등 이런 평가를 하지는 않았다. 10일 정도 여행이 진행된 탓에 다들 조금 지치고 한국이 그리워지고 한식이 먹고 싶었지만 서로의 여행을 망칠 수 없어 불평을 늘어놓지 않았다. 다들 모난 성격이 아니라서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하려 했다. 그중에 좀 더 모나고 예민한 사람이 있다면 그건 나였을 것이다. 우리의 여행은 어떤 상황에서도 "이것도 경험이니까" 라며 쿨하게 넘겨야 했다. 친구들과 떠나는 해외여행이었기에 무조건 즐겁고 행복하고 좋아야 했다. 거칠거칠한 바게트 샌드위치도 그 순간 딱딱하다던지 입 천장이 아프다던지 등 불평을 토로할 순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바게트 샌드위치로 식사를 해결하고 바르셀로나를 구경했다. 5일 정도 바르셀로나에 있을 예정이라 우리는 바르셀로나를 구경하고 와서도 그 다음 날도 바르셀로나를 구경할 셈이었다. 그렇기에 숙소 가까이에 있는 샌드위치 집은 편히 고를 수 있는 선택지였다.


 "내일 점심은 어떻게 할까?"라고 묻자 친구 한 명이 말했다. "우리 그 샌드위치 집은... 가지 말자. 나 사실 입천장 까질 것 같아" 누군가 물꼬를 텄고 나도 그제야 내 솔직히 말했다. "나도야. 바게트 엄청 딱딱해 진짜" 우리는 그렇게 말하면서 한참을 웃었다. 왜 이렇게 딱딱한 빵 밖에 없는 건지, 왜 그 바게트로 샌드위치를 만드는 것인지 알 수 없다며 그 샌드위치에 대해 웃으며 시식평을 남겼다. 우리는 그 이후로 다시 그 샌드위치집을 가지 않았다. 그래도 바게트 샌드위치가 싫은 건 아니였다. 단지 입천장이 좀 아팠을 뿐이고 아직 입안의 살들이 우리가 앞으로 겪게 될 사포처럼 닿기만 해도 쓰라린 병원생활을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연약했을 뿐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빠와 딸이 연애상담을 한다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