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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에포크 Mar 22. 2022

옆집의 '카톡' 알람이 들린다

현대인의 외로운 고독사를 막기 위한 프로젝트 

"카톡!"

귀를 의심했다. 내 핸드폰은 무음인데 우리 집에서 카톡 알람이 들리다니. 소름이다.

설마 하고 나는 벽지에 귀를 대보았다. 

"카톡!"

아니, 이 정도면 옆집이 아니라 옆방이라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아니지, 옆방도 이렇게 방음이 안 될 수는 없어!!


2년 전, 나는 일산에 급하게 집을 구했다. 새로 입사한 직장의 인사과에서 정식발령이 나기 전에 수습발령이 있을 것이라 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발령이 난다면 지낼 곳이 없으니 먼저 집을 구하기로 했다. 그러나 우리 집은 일산에서 5시간 정도 차로 가야 하는 거리였기에 하루, 이틀 왔다 갔다 하면서 집을 찬찬히 알아보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미리 어플로 알아본 집을 보러 가겠다고 부동산과 날짜를 정한 후, 괜찮으면 바로 집을 계약하기 위해 아빠 차에 내 이삿짐을 빼곡히 실었다. 그렇게 겨우 엉덩이를 비집어 넣어 앉고선 5시간을 걸려 부모님과 함께 집을 보고 그중에 가장 괜찮은 집을 당일 바로 계약했다. 새로 계약한 집은 유동인구가 많은 곳의 오피스텔이었다. 아파트는 무리고, 빌라는 무서웠기에, 혼자 살기 무난한 오피스텔을 새로운 집으로 선택했다. 이 주변에는 다 복층 오피스텔만 있는 것인지 예전 병원 근처에 살던 오피스텔이랑 비슷했다. 복층은 여전히 여름에는 좀 덥고 겨울에는 추웠다. 그래도 평수가 넓은 편이었기에 하나하나 가구를 채워보니 그럴듯했다.


그러나 1년 정도 지난 후, 새벽마다 윗집에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시작되었다. 윗집 주인이 바뀐 것 같았다. 그전에는 들리지 않았던 소음이 밤만 되면 심해졌고, 발소리 하나에 우리 집은 '두두우 우웅' 하며 윗집 충격에 의한 소리가 집 전체로 퍼져나갔다. 어쩌면 윗집은 사람이 아니라 공룡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렇게 심함 층간소음은 처음이었다. 윗집 사람은 잠도 안 자는지 새벽만 되면 아주 '쿵쿵쿵' 난리였다. 가끔씩은 여자가 새벽마다 화장실에서 토하거나 우는 소리가 우리 집 화장실을 통해 들렸다. 한 여인의 우는 소리가 화장실 배기구를 타고 들릴 때면 어렸을 때 봤던 공포영화가 오버랩되면서 내 팔에는 소름이 돋고, 계속하던 일을 멈추고 목을 뻣뻣하게 세워 그저 화장실만 바라보게 되었다. 저 여자는 왜 저렇게 우는 걸까? 나에게 무슨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걸까? 나는 잠도 못 자고 밤새 윗집 여자가 불치병에 걸려 우는 걸로 잠정 결론짓고, 약을 너무 많이 먹어 토를 하는 상상을 하며 겨우 잠에 들고는 했다. 


어느 날은 부부싸움을 하는 건지 여자와 남자가 번갈아 소리를 지르는 소음과, 물건이 던져져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들이 났다. 이건 분명 심각한 일이었다. 뭔가 사단이 날 것만 같았다. 나는 며칠 후 안타까운 사고로 인해 목숨을 잃은 한 여인에 대해 목격자 인터뷰를 하는 상상을 하다가, 정말 저러다 쥐도 새도 모르게 은폐되는 사고를 당할까 싶어 황급히 경찰에 신고를 했다. 그러나 경찰에 신고를 하자마자 이상하게 갑자기 조용해졌고, 경찰은 '그 집 앞에 가봤더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이런 경우 우리가 자택 침입을 할 수는 없다'는 민원답변을 해주었다. '그래도 초인종 한 번은 눌러볼 수 있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우선 저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다면 나는 신고라는 이웃집의 도리를 다했고, 초인종도 누르지 않았던 것은 경찰이기에 그에게 책임을 돌리며 잠에 들었다. 며칠 후에 윗집 소음은 여전히 계속되었다. 둘 다 살아있다는 것에서는 다행인 일이었지만 나에게는 다시 지옥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잠을 자기 위해 귀마개를 껴보았지만 울려 퍼지는 진동소음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잠에 들려면 나의 바이오리듬보다 그들이 조용해진 틈을 노려야만 제대로 잠들 수 있었다.


층간소음,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뉴스에 간간히 들리는 '층간소음으로 인해 다투다 사망'한 사건에 대한 여론이 '이해된다' , '저럴 수 있지'라는 반응이 많은 걸 보면 그 스트레스가 말도 못 할 만큼 끔찍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층간소음은 자신의 바이오리듬이 깨지며 잠을 잘 수 없고, 시도 때도 없이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키고, 분노가 차오르고, 그 분노가 행동으로 이어지면 걷잡을 수 없는 인명피해가 생긴다. "이웃 간에 배려합시다"라고 엘리베이터에 붙어있는 전단지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소음을 일으키는 가해자들은 피해자의 고통을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들에게는 작은 발소리일 뿐이지만 아랫집에는 티라노사우르스가 다다다다 걸어 다니는 쥐라기 공원이나 다름없다. 이런 망상을 일으키는 것을 보면 층간소음은 법적으로 해결이 필요하다. 층간소음을 해결하겠다는 정치인이 있다면 난 무조건 그 사람을 뽑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이웃의 소음이 기준 데시벨을 넘기면 경찰이 벌금을 불과할 수 있도록 가정마다 측정기를 도입한다던지, 주거 건축물을 세울 때 방음이 잘 되는 구조물을 필수적으로 넣어야 한다는 지침을 마련한다던지 하는 것들 말이다. 나날이 늘어가는 아파트와 오피스텔에서 층간소음이란 피할 수 없는데, 이것을 계속해서 '배려합시다'라는 문구와 전단지로만 해결하려 한다면 수직적 권력 구조에서 위층에 의해 영원히 피해받는 분노와 독기에 차서 칼을 가는 아래층 사람들만 많아질 뿐이다. 


층간소음에 대해 열변을 토해가던 차, 나는 전세 계약 만료로 그 집을 나오게 되었다. 1년간의 지옥에서 벗어난 기분이었다. 난 그 해방감을 만끽하며 새로운 오피스텔을 구했다. 이번에는 복층이 아닌 단층 오피스텔, 개방형이 아닌 분리형 원룸 구조인 곳으로 정했다. 보자마자 구조가 마음에 들어서 바로 계약을 했다. 화창한 가을 하늘을 창문으로 바로 볼 수 있었고, 주위에 유흥시설이나 술집이 거의 없어 도로가 깨끗했다. 이번 집은 확실히 전보다 더 조용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웬걸. 층간소음이 없어 좋아했더니 이번엔 옆집 방음이 문제였다. 옆집 아저씨의 재채기 소리, 전화받는 소리, 카톡이 울리는 소리, 텔레비전 보는 소리, 손님이 놀러 오는 소리들이 다 들렸다. 심지어 다른 옆집에서는 불을 끄는 스위치 소리가 '탈칵'하며 청량하게 우리 집을 울렸다. 옆집도 이런 옆집이 없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외롭지 않도록, 옆집 소리가 들릴 수 있게 벽과 벽 사이에 방음 물질이 아닌 쓰레기들을 넣은 것이 틀림없었다. 그것은 건축사가 현대인의 외로운 고독사를 막기 위해 정부의 눈길을 교묘히 피해 세운 선량한 프로젝트임에 틀림없다. 그러지 않고서야 사람이 살도록 만들어 놓은 집이라는 곳이, 입구만 다른 옆방보다 못한 역할을 할리는 없다. 정녕 이것은 고의적으로 만든 프로젝트가 아니고서야 이해할 수 없는 행태였다.


그들의 프로젝트에 따라 나는 옆집 아저씨의 얼굴을 본 적은 없으나, 그의 재채기가 어느 정도의 데시벨인지, 기지개를 필 때면 '으아아 아'라고 크레셴도에 따라 점점 세게 단청에서 올라오는 소리를 뱉는 것을 알 수 있었고, TV 프로그램은 예능을 좋아하는지 뉴스를 좋아하는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도 알 수 있게 되었다. 아저씨는 11시 반 정도면 취침을 해서 11시에 자는 내가 그리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했고, 가끔 잠이 안 오는 날에는 새벽에 깨서 TV를 보고는 하였으나 그런 날이 잦지는 않았다. 전화통화를 할 때면 나긋나긋한 목소리라기보다는 흔한 5-60년대에 태어난 가부장적인 톤으로 내뱉는 목소리로 통화를 하고는 했으며, 정기적으로 출근을 하고 퇴근하는 일이 있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고, 집에 누가 찾아오는 일은 별로 없었다. 


아마 건축사들이 우리 집에 걸어 놓은 프로젝트의 이름은 아이유와 이선균이 나오는 드라마의 이름을 본 따  '나의 아저씨'가 아닐까 싶다. 옆집 아저씨의 고독사를 막는 프로젝트.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아이유가 될 생각은 추어도 없다. 

그러니 어서 이 프로젝트 좀 중단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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