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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에포크 Mar 18. 2022

웃고 있는 유튜버에게 침 못 뱉는다

아니 뼈가 안 보여... 

"딩동! 택배가 도착했습니다"


기다리던 택배가 왔다. 부모님 집에 내려오니 가장 중요한 나의 필수템이 없었다. 바로 요가매트다. 아침에 스트레칭도 하고 저녁에는 복합 유산소 운동과 근력운동도 해야 하는데 부모님 집에는 요가매트가 없었다. 거실에 깔려있는 황토매트에 대고 플랭크와 다운 독을 해보고는 했지만 자꾸 발이 미끄러져 자세가 무너져 버렸다. 왜 항상 부모님 집에는 스위치 하나면 따뜻해지다 못해 뜨거워지는 전기 황토매트가 있는 걸까. 50대 이상은 추위와 싸울 수 있는 힘이 부족하니 각 가정마다 정부에서 보급해주기라도 한 것일까...


요가매트를 황토매트 옆에 깔았다. 무채색 요가매트가 들뜸 없이 바닥에 찰싹 딱 달라붙었다. 바닥과 매트가 만나는 마찰 소리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여름방학에 외할머니 집에 가면 밤마다 청개구리들의 발바닥이 유리창문에 붙어있는 것 마냥, 아주 찰싹 정전기가 일어난 것처럼 딱 붙었다. 날이 갈수록 어떻게 이렇게 질 좋은 요가매트를 만드는 것인지. 어느 중소기업의 직원들에게 잠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애플 워치에 지-잉 하고 알람이 왔다. "상대방이 실외 걷기 운동을 완료했습니다. 운동시간 40분. 140칼로리" 나와 일주일간 겨루기를 하고 있는 상대가 자꾸 운동을 한다는 알림이었다. 집에 있는 나에 비해 회사를 다니는 상대방은 기본적으로 운동량이 나보다 많았다. 아마 점심시간에 밥 먹고 산책을 했나 보다. 쳇. 질 수 없지. 나도 새로 온 요가매트 위에서 실내 걷기 40분을 완료하며 어느 정도 운동량을 따라잡았다. 


저녁을 먹고 본격적으로 운동에 들어갔다. 집에서 운동을 하더라도 나는 항상 운동복을 갖춰 입고해야 더 집중해서 할 수 있기에 레깅스와 브라 나시 탑을 입고 거실로 나갔다. 매트 앞에 아이패드를 두고 유튜브 영상을 찾았다. 나는 각자 스타일이 다른 여러 유튜버를 그날의 컨디션에 맞게 선택해서 운동 영상을 따라 하고는 하는데 최근에 한 유튜버를 발견했다. 새로 발견한 유튜버는 예전 같았다면 구독하지 않았을 스타일이었다. 그녀는 힘든 운동을 하면서도 밝게 웃고 있는 사람이었다. 정말 웃고 있었다. 입꼬리를 올리고 하얀 치아를 보이며 하이톤으로 목소리를 올리며 "여러분! 하하하하 웃으면서 하시고 있죠?!"라고 외쳤다. 조금 부담스러웠다. 뭐랄까. 주부들이 많이 모이는 동네의 한 줌바댄스 강사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파워풀한 에너지에 압도당하며 나도 에너지를 뿜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그 부담감. 


그러나 나는 지금 그런 부담감을 견딜 수 있는 에너지가 있었다. 그녀의 채널에 가장 조회수가 많은 것을 찾아보았다. 팔뚝살을 빼는 영상이었다. 그리고 그 조회수는 1300만...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조회수였다. 어디 한번! 하며 나도 그 영상을 틀었다. 15분간 14개 동작을 1분씩 하면서 팔뚝살을 빼고 근육을 키우는 프로그램이었다. 쉬는 시간은 없었다. 대체로 팔에 힘이 없는 나는 15분간 쉬지 않고 팔을 좌우로 앞뒤로 계속 동작을 바꿔가며 흔드는 것이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두 번째 동작부터 위기가 왔다. 그녀는 그래도 웃으면서 말했다. "여러분! 벌써 힘들죠?? 하하하하 그래도 웃으면서! 포기하지 말고!"


웃는 얼굴엔 침을 뱉을 수 없다. 웃는 얼굴에 실망을 줄 순 없다. 웃는 유튜버에겐 포기할 수 없게 하는 힘이 있었다. 힘들어도 웃고 있는 저 이름 모를 유튜버는 이미 내 앞에 실제로 존재하는 듯했다. 그녀의 비타민 에너지가 아이패드 화면을 뚫고 오렌지색 빛을 마구 발사하고 있었다. 나는 양 팔로 공기를 사정없이 가르며 누군가를 밀어내듯 사정없이 팔을 양쪽으로 찔렀다. 그리고 다시 팔을 굽혀 내 옆구리로 가져왔다. 그리고 이 동작을 무한정 반복했다. 그녀는 "더 빨리!!"라고 외쳤고, 나는 "으아-!" 하며 더 속도를 냈다. 다음 동작도 쉬운 것이 없었다. 창문을 닦는 것처럼 양팔을 벌려 손바닥으로 창문을 닦듯이 허공에 원을 그려야 했다. 그녀가 외쳤다. "창문 닦기 아르바이트하는 것처럼~~!! 500만 원 준다고 하면 하겠죠?!"라며 의욕을 불태웠다. 팔이 빠져버릴 것 같았다. 이제 팔은 내 것이 아니었다.  "자 다음 동작은 나비가 날아가는 것처럼 하는 버터플라이 동작이에요~! 조금만 참으세요! 하하하" 나는 그녀의 하하하 하는 소리에 자동으로 반응하는 로봇처럼 열심히 팔운동을 따라했다.


열심히 따라 하는 나를 보며 엄마도 나를 따라 했다. 나는 유튜브를 보고, 엄마는 나를 보고, 그렇게 서로 다른 사람을 보면서 팔운동을 했다. 엄마는 평소에 운동을 하는 사람이 아녔기에 빨리 지쳤다. 나는 웃고 있지 않았고, 엄마는 웃고 있지 않은 나를 보았고, 그저 신나는 유튜버의 목소리만 우리에게 들릴 뿐이었다. 내가 웃지 않아서인지 엄마는 금방 포기했다. "자! 나비가 날갯짓을 하는 것처럼~ 나비가 날아간다아아아 하하하" 유튜버의 목소리가 거실에 울렸다. 엄마는 "날아간다~~~ 너도 빨리 따라 해 봐!" 라며 유튜버를 따라 했다. 엄마는 또 유튜버가 "아유 힘들다~"라고 말하면 "너도 힘들다고 해 얼른!" 하며 말하라고 했다. 나는 평소에 말을 하면서 운동을 하지 않는 타입인데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유튜버를 흉내 냈다. 좀 나았다. 어차피 못 듣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말해도 소용없다 생각했는데, 막상 말로 힘들다고 해보니 유튜버랑 동시에 운동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15분간 파워 긍정 유튜버와 함께하는 팔뚝살 운동을 마쳤다. 팔운동을 가장 힘들어하는 나에게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비타민 유튜버와 이번 한 해를 같이 보낼 수 있도록 '구독'버튼을 눌렀다. 


아직 겨루기 상대방을 따라잡기에는 운동량이 부족했다. 나는 자주 듣던 '힙 으뜸'언니의 유튜브 채널을 들어가서 새로 업로드된 '전신 근력운동 50분' 운동을 시작했다. 전신 유산소와 상체 근력, 하체 근력, 복부 근력까지 모두 다 들어있는 운동이었고 난이도가 좀 있어서 힘들었다. 쉬지 않고 50분을 하다 보니 어느새 오늘 활동할 칼로리를 다 채워버렸다. 운동이 거의 끝나갈 무렵 으뜸이 언니는 "그럼 좋아요와 구독 눌러주시고~ 안녕~~!" 하며 마무리를 했고 나는 영상을 껐다. 계속 거실에서 나를 보고 있던 엄마가 "좋아요 눌렀어?"라고 물었다. "안 눌렀는데..."라는 답변에 엄마는 공짜로 그렇게 운동을 따라 하고서 좋아요를 안 누르면 어떡하냐며 어서 좋아요를 누르라고, 그게 그 사람들의 낙일 텐데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나는 다시 영상에 되돌아가서 '좋아요'를 누르고 마무리 스트레칭을 했다. 


계속 요가매트에서 이리저리 운동을 하는 나를 보며 엄마는 "너 그러다 뼈밖에 안 남아! 그만해~"라고 말했다. "엄마 무슨 소리야..." 나는 운동복을 조금 올려 내 두둑한 뱃살을 엄마에게 보여줬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엄마가 잠시 멈칫하는 것을. 생각지도 못한 거대한 액체 괴물을 본 것처럼, 엄마는 메롱하고 나오는 내 뱃살을 보고 말을 잃었다. 


"아니..." 


"뼈가 이 안에 살아는... 있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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