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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에포크 Mar 17. 2022

봄 욕심

아침 8시. 알람이 울렸다. 오래된 암막커튼은 여전히 제 기능을 잘하고 있었던 것인지, 어젯밤 불을 끈 상태로 시작된 어둠이 여전히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핸드폰 알람을 끄고 방문을 열어 갇혀있던 어둠을 밖으로 내보냈다. 화장실로 들어가 양치와 세수를 하며 정신을 깨운 후에 스킨케어를 하기 위해 화장대가 있는 엄마방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엄마! 엄마도 산책하러 갈래?"

전날 비행기를 타고 부모님 집으로 내려온 탓에, 아침에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아직 침대에 붙어있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침대란 워낙 강력한 자기장 활동을 하기 때문에 한 번 들어가 붙어버리면 웬만해서는 떨어져 나오기 쉽지 않았고, 그것은 아직 50대 여성에게도 작용하는 것 같았다. 


"아유~ 귀찮아"

그렇게 말하고 멋쩍게 하하하라고 웃더니 식탁 위에 있는 오가피즙을 하나 먹고 가라고 권했다. 나는 공복에 걸어야 한다며 거절하고선 손등에 선크림을 가득 짰다. 마스크를 쓰는 탓에 이마와 눈가에 선크림을 좀 더 두껍게 바르고 나머지 얼굴에도 햇빛을 차단하기 위해 꼼꼼히 선크림을 발랐다. 조금 번들거리는 얼굴을 만들고는 가벼운 옷차림을 옷을 갈아입었다. 공복 걷기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준비물이 필요했다. 밤새 충전되어있던 애플 워치를 빼고, 다시 충전기는 맥북으로 옮겨 놓은 채, 주머니에 아이폰과 에어 팟을 넣었다. 물 한잔을 벌컥벌컥 마시고 집을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사과 모양이 그려진 전자기기들을 하나하나씩 탑재한 채, 나도 당신들과 같은 신세대라는 묘한 연대감을 느끼며 산책할 준비를 마쳤다.  


초등학생들이 등교하는 시간대였는지 아파트 단지에는 가방을 메고 친구들과 손을 잡고 학교를 가는 아이들이 있었다. 아이들의 가벼운 옷차림을 보면서 날이 많이 풀렸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아이를 춥게 입히는 엄마들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내가 가는 길은 아이들이 가는 길과 같았고, 의도치 않았으나 아이들을 따라다니게 되었다. 차도에는 아이들의 보행을 도와주는 어머니가 깃발을 들고 나와있어서 나도 덕분에 아이들과 함께 안전하게 횡단보도를 건넜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횡단보도를 건너는 게 얼마만인지, 어머니와 눈이 마주치자 좀 머쓱해졌다. 나의 후리 한 모습을 왠지 모르게 설명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은 뒤로 한 채, 나는 아이들과 정반대로 방향을 틀어 아파트 뒷산으로 향했다. 


햇빛을 가로막는 구름 하나 없이 하늘은 파랬다. 파란 하늘. 그동안 비가 올 것처럼 흐린 하루들이 계속되어 오랜만에 보는 파아란 하늘이었다. 봄을 기다리는 땅에게 햇빛은 그 기대만큼 흠뻑 제 몫을 부어주고 있었다. 나도 오랫동안 봄을 기다렸기에 그 몫을 좀 빼앗아 내 얼굴과 내 몸뚱이를 햇빛에 맡겼다. 대놓고 자연을 만끽하러 온 손님을 알아본 것인지 바람도 '손님 어서 오세요'하는 거 마냥 내 몸을 가볍게 휘리릭 감싸고돌았다. 그 바람에서 봄 냄새가 났다. 


조금 더 올라가니 길에는 벌써 매화꽃이 펴있었다. 윗 지방에는 아직 꽃도 피지 않았는데 여기는 벌써 꽃이 핀 지 며칠 된 것 같았다. 봄꽃축제 중 가장 빨리 열리는 매화축제가 여기서 얼마 걸리지 않은 곳이니, 아마 벌써 매화를 보러 오는 상춘객들의 발걸음이 시작되었겠다 싶었다. 나는 이곳에서 20년 무렵을 살면서도 한 번도 제대로 매화축제를 구경해 본 적이 없다. 주말에는 차가 막혀서 못 가고, 평일에도 역시 차가 막혀서 못 갔다. 차가 막힌 채로 길가에 피어있는 매화들을 구경한 것이 전부였다. 겨울이라는 지루한 시간을 견디면서 피어난 꽃들을 '어머 예뻐라'라고 감탄사를 내뱉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만이 봄을 먼저 만끽할 수 있었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은 나처럼 불현듯 이렇게 봄을 만나게 되고는 한다. 불현듯. 그리고 "어머..."라고 말하겠지. 봄꽃은 누구에게도 항상 그 시작은 '어머'로부터 시작된다. 기대하며 찾아왔든, 불현듯 만나게 되었든. 짧은 들숨으로 나도 모르게 '어머'라고 내뱉으며 인사를 건네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인사도 '어머'이겠지. "어머! 벌써 꽃이 졌네" 


항상 봄은 아주 짧게 지나갔다. 대학교 새내기 시절 학교에 적응을 어느 정도 마친 후, 뭐랄까 기대조차 하지 못한 아주 커다란 행복이 닥칠 것만 같은 봄 날씨가 찾아오면 그 설렘을 즐기기 위해 용돈을 털어 샤랄라 한 옷들을 사곤 했다. 옷이 도착할 날짜와 놀러 갈 날짜를 조율한 뒤,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린 채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놀러 가기 전날 딱 맞게 옷이 도착하게 되면 그 정확한 타이밍에 설렘은 더 증폭되었다. 일교차가 큰 아직은 좀 쌀쌀한 날씨임에도 추위란 설렘을 이기지 못하기에, 나는 원피스를 입고 꽃들을 보러 나갔다. 꽃을 잡고, 꽃을 보고, 꽃들 안에 서있고, 그걸 사진으로 남기면서 완벽한 꽃놀이를 다 즐기고 나면 봄에 해야 할 일을 다 마친 기분이 든다. 


그러나 설레는 꽃놀이는 사실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꽃놀이를 귀하게 만든 것은 중간고사. 바로 그것이었다. 항상 벚꽃이 만개할 때는 중간고사였다. 잠시 쉬는 시간에 커피를 사서 밖으로 나갈 때만 벚꽃을 볼 수 있는 날들도 많았다. 봄이 와서 반겨주는데 나는 그에 맞는 텐션으로 답을 줄 수 없었다. 벚꽃의 만개시기와 중간고사 시기가 겹쳐버리면 도서관에 열린 창문 틈으로나마 봄을 느꼈다. 그리고 창문 바깥의 세계를 가지 못하는 나의 삶에 고통의 서사를 써 내려가고는 했다. 세상에서 나처럼 처량한 아이가 없었다. 


봄이란 모두가 기다리나 모두가 즐길 수는 없는 것. 봄을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사람이란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이거나, 갖추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거나. 나는 후자가 아니었으니, 전자가 된 사람을 매 봄마다 부러워했다. 중간고사나 일로부터 해방되어 꽃이 만개할 때 자신의 시간을 쓸 수 있는 사람. 자기에게 어울리는 옷을 날씨에 맞춰 입을 수 있는 사람. 꽃이 만개한 곳을 자신의 의지로 갈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 꽃놀이를 같이 즐길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있는 사람. 


그러나 지금에서야 깨닫는 것은, 많은 욕심을 버렸을 때 봄이 불쑥하고, 꽃이 불쑥하고 얼굴을 내밀어 내 앞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봄이 가기 전에 내 눈과 코와 몸에 휘감아 버리겠다는 생각을 버렸을 때, 진짜 봄을 맞이할 수 있었다. 설렘을 온몸으로 느껴버려 그 강력함을 내뿜지 않고서는 바로 서 있을 수 없었던 나의 스무 살은, 어느새 서른 살을 맞아 조금은 진득한 설렘을 느끼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나는 두 손가락을 펴고 앞으로 내가 꽃놀이를 갈 수 있는 날들을 세어보았다. 오십 번은 될까. 아니 몸이 아프거나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길 수 있으니 사십몇번 정도. 내가 꽃놀이라는 말을 붙여 나들이를 갈 수 있는 날은 사십몇번. 운이 좋으면 사십몇번. 어쩌면 삼십몇번일지도. 


이렇게 생각하면 또 욕심이 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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