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조용히 온다

“탄생”

by 프리지아

겨울의 냄새가 옅어지고, 마른 나뭇가지 끝에 작은 초록이 매달릴 때 우리는 그 변화를 ‘봄’이라고 부른다.

봄은 조용히 온다.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어느 날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고, 그 순간 우리는 그것을 ‘시작’이라 부른다.

제주도를 노랗게 물들이는 유채꽃도, 길가에 아무렇지 않게 피어나는 민들레도

결국은 봄이라는 시간을 빌려 씨앗을 남긴다.

많은 식물들이 싹을 틔우는 계절.

그래서 우리는 봄을 ‘탄생의 계절’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봄이 모두에게 희망일까.

겨울에 피어 있던 수선화는 봄이 오면 자취를 감춘다.

여름의 무더위를 견디지 못하는 어떤 꽃들은 봄에 씨앗을 남기고 조용히 사라진다.

어쩌면 봄은 무언가 시작되는 계절이면서, 동시에 끝을 준비하는 계절일지도 모른다.

탄생은 그렇게 빛과 함께 그림자도 데리고 온다.

그렇다면, 탄생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모두 탄생한 자들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왜 태어났는가’에 대한 질문은 자주 미뤄둔 채 살아간다.

이번 봄에는 인간의 탄생에 대해 조금 더 오래 생각해 보고 싶어졌다.


우리는 스스로 원해서 이 세계에 온 것이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 겨울이 지나 봄이 오듯,

어느 날 문득 이 삶 한가운데 놓여 있을 뿐이다.


탄생은 하나의 답으로 단정 지을 수 없다.

그것이 축복인지, 감당해야 할 사건인지는 탄생한 이후에야 묻게 되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봄에 피는 민들레는 자신이 어디에 떨어질지 알지 못한 채 바람이 이끄는 곳에 뿌리를 내린다.

길 모퉁이일 수도 있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도로변일 수도 있다.

우리 또한 어디에 놓일지 모른 채 시작된 존재가 아닐까.

그렇다면 삶을 선물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삶은 빛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버거운 시간이 된다.

밝음과 어둠은 언제나 함께 온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다시 창조자가 되기를 선택한다.

그 선택 속에는 분명 고통도 있었겠지만 그보다 조금 더 큰 행복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빛이 있는 곳에는 그림자가 있다.

무엇을 더 오래 바라볼지는 결국 각자의 몫이다.


우리는 모두 마음 한편에 미완의 동경을 품고 살아간다.

채워지지 않는 어떤 환상을 붙들며 현재를 건너간다.

어쩌면 탄생이란,

완성된 답이 아니라

미완의 상태로 살아가게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꽤 괜찮은 곳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애를 써도 다시 살아갈 용기가 흐르는 곳에.

무언가 시도하면 아주 작은 점이라도 남는 공간에 말이다.


나는 완벽한 연출과 완벽한 인생을 꿈꿨지만 삶은 늘 내 손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탄생이란 본디 그런 것이 아닐까.

정답은 없지만 미완의 상태로 나를 만들어가는 일.

어쩌면 사전에 있는 말들로 이루어진 세상에 내던져져 미완의 환상을 꿈꾸며 살아가는 일이 나의 탄생일지도 모른다.


봄은 다시 돌아오는 계절이다.

영원할 것 같던 추위도 결국은 끝이 있었다.

행복이 영원할 수 없는 것처럼 슬픔 또한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이 그때의 나를 붙들어 주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탄생은 축복도, 형벌도 아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일지도 모른다고.

모두의 탄생 속에는 각자의 겨울과 봄이 있다.

수많은 계절을 지나며 버려야 했던 감정들을 다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다가올 봄에는

조금 더 다정한 말들이,

조금 더 단단한 마음들이

곁에 머물기를.

느리더라도 한 송이씩 피어나는 시간을 믿으며

우리 각자의 탄생을 조금 더 찬란하게 만들어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