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희망이라는 것

잃어버린 계절의 끝에서

by 프리지아


“아니야, 잠깐만! 민혁이가!!”

나는 뛰어가는 재현이를 붙잡으며 소리쳤다.

“그러니까!!”

재현이가 크게 외쳤다.

“더 늦기 전에 민혁이한테 가야 하니까! 너라도 제대로 숨어야 할 거 아니야!!!”

재현이의 손에 힘이 더 들어갔다.

조금 떨리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재현이의 뒷모습만 보며 달렸다. 재현이는 선우와 재민이 들어간 건물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나와 재민의 상태를 확인한 뒤 선우와 함께 다시 밖으로 뛰어 나갔다.

나도 따라가고 싶었다.

하지만 더 이상 걸림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넘어지면서 무릎이 까진 재민이를 확인한 뒤 민혁과 아이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빌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재민은 놀란 것 말고는 크게 다친 곳이 없어 보였다.


“나 때문에…”

재민은 얼굴을 손으로 감싼 채 울먹이고 있었다.

재현과 선우가 나간 지 꽤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밖은 조용했다.

문을 열고 나가볼까 생각도 했지만 도저히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괜찮을 거야… 괜찮아…”

나는 같은 말만 계속 반복했다.

재현이와 선우는 달리기도 빠르니까. 분명 민혁에게 금방 갔을 거야.

민혁은 운동신경이 나쁜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땀 나는 걸 싫어해서 고등학교 때 축구도 거의 하지 않던 아이였다.

늘 느긋하고 편한 걸 좋아하던 아이였다.

그런 민혁이 괴물을 향해 뛰어갈 때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나는 민혁이 무사하길 바라며 찬영이를 떠올렸다.

‘찬영아… 다들 무사히 돌아오게 해 줘…’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 쪽으로 달려갔다.

창문이 높아 밖은 보이지 않았다.

재민과 나는 건물 안에 있던 긴 쇠파이프를 하나씩 집어 들고 문 가까이 섰다.

문은 닫혀 있었지만 문고리가 고장 나 있어 조금만 밀어도 열릴 것 같았다.

‘저벅… 저벅…’

발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사람의 발소리라고 하기엔

너무 느리고,

너무 무거웠다.

나는 재민을 바라봤다.

재민도 긴장한 얼굴이었다.

‘이제… 어떡하지…’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 순간,

쾅!

문이 튕겨 나가듯 열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얼굴의 형태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진 괴물이 서 있었다.

지금까지 본 괴물 중 가장 크고,

가장 끔찍했다.

존재만으로도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뛰어!”

뒤에서 재민이 외쳤다.

나는 곧바로 방향을 틀어 재민과 함께 문 반대편으로 달렸다.

우리가 움직이자 괴물도 기다렸다는 듯 달려들었다.

어느새 괴물은 내 바로 뒤까지 따라왔다.

그리고 한쪽 팔로 내 어깨를 거칠게 잡아챘다.

나는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어깨에서 따뜻한 피가 흐르는 게 느껴졌다.

괴물의 손에는 날카로운 손가락과 긴 손톱이 있었다.

그 손톱이 내 옷을 찢고 어깨를 베어 낸 것 같았다.

너무 놀라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괴물은 그대로 입을 크게 벌렸다.

입은 어디까지 벌어질지 모를 정도로 점점 커지고 있었다.

기괴한 소리가 함께 흘러나왔다.

‘재민이는 잘 도망갔을까… 선우랑 재현이는 민혁이를 만났을까…’

나는 끝없이 벌어지는 괴물의 입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괴물은 점점 가까워졌다.

나는 두 팔로 얼굴을 막았다.

어느새 괴물은 내 위에 올라와 있었다.

그 무게에 짓눌려 숨이 막혔다.

“윽…”

나도 모르게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때였다.


‘푹.’

무언가가 괴물을 관통하는 소리가 났다.

괴물은 입을 벌린 채 그대로 굳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쇠파이프였다.

괴물의 몸을 꿰뚫은 쇠파이프 사이로 검붉은 액체가 흘러내려 내 옷을 적셨다.

“괜찮아??”

재민이였다.

재민은 괴물 아래 깔린 나를 힘겹게 끌어냈다. 우리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멈춰 선 괴물을 바라보며 숨을 골랐다.

“…나가자.”

나는 언제 다시 움직일지 모르는 괴물을 보며 말했다.

우리는 달빛조차 닿지 않는 어두운 건물을 빠져나왔다.

“발밑 조심해.”

재민이 앞서 걸으며 말했다.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천천히 아까 선우와 재현이와 함께 뛰어왔던 길로 걸어갔다.

민혁과 헤어진 그곳으로.



“아까.. 왜 멈춰있던 거야?”

나는 적막 속에서 재민에게 물었다.

선우와 함께 가다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산을 바라보던 재민의 모습이 계속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산 위에 큰 공터가 있었어.”

재민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공터?”

나는 되물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익숙한 느낌이었는데, 그때는 생각이 안 났거든. 근데 산을 내려오니까 알겠더라…”

그는 잠깐 말을 멈췄다.

“그 공터… 벚꽃나무가 있던 그 곳이었어.”

그는 걸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둠 속에서도 분명히 보였던 건, 조금 떨리고 있던 재민의 눈동자였다.

“그게… 무슨…”

나는 한 번에 이해가 가지 않았다.

“벚꽃나무는? 벚꽃나무는 봤어??”

그 공터가 우리가 알던 그 곳이라면, 그 옆에 서 있던 벚꽃나무도 봤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재민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없었어.”

우리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벚꽃나무가 없었다는 그의 한 마디에,

내 안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무너졌다.


벚꽃이 없다는 건,

그 봄이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일까.


“…일단 가서 마저 이야기하자.”

재민은 몸을 돌려 다시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선우와 민혁, 재현을 무사히 만나는 걸 먼저 생각하기로 했다.

나와 재민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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