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계절의 끝에서
“여기까지만 가야겠지?”
재현이 곧 저물 것 같은 해를 바라보며 말했다.
“응. 이제 내려가자.”
민혁은 나뭇가지에 마지막 노란 끈을 묶으며 답했다.
산 위에서 내려다본 이 세계는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빼곡하게 늘어선 건물들과 나무들.
단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산을 내려와 선우와 재민을 기다렸다. 아침에 헤어졌던 바로 그 장소였다. 하지만 해가 거의 질 때까지도, 산속에서 내려오는 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점점 불안한 마음이 올라왔다.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다행히 아직 그 괴물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왜 이렇게 안 내려와…”
민혁도 주변을 살피며 중얼거렸다.
“올라가 볼까?”
재현이가 물었다.
선우와 재민이 나뭇가지에 묶어 두고 간 노란 끈을 바라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그 끈을 따라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꽤 오래 오른 것 같은데도 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나는 점점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곧 해가 질 텐데…’
재현과 민혁은 말이 없었다.
하지만 분명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말없이 산을 조금 더 오른 뒤에야, 멀리서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백선우!”
민혁이 크게 소리쳤다.
나는 그 방향에서 뛰어 내려오는 선우를 보고 그제야 긴장이 조금 풀렸다. 펄쩍펄쩍 뛰어 내려오는 걸 보니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았다. 선우의 뒤를 따라 재민도 천천히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미안, 미안… 생각보다 오래 걸렸어. 시간 계산을 잘못했어.”
선우가 다급하게 말하며 얼른 내려가자고 했다.
해가 거의 지고 있다는 걸 그도 신경 쓰는 것 같았다.
“다친 데는? 어디 다친 건 아니지?”
나는 내려가려는 선우의 팔을 붙잡고 두 사람을 살피며 물었다.
“나뭇가지 하나에도 안 긁혔어. 일단 내려가면서 얘기하자.”
선우는 괜찮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빠르게 산을 내려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선우와 재민은 생각보다 산이 훨씬 커서 속도를 내 더 안쪽까지 가 봤다고 했다.
“그러다가 해 지는 거 보고 놀라서 다시 내려온 거야.”
재민이 말을 이었다.
“어때? 끝까지 가 봤어?”
재현이가 물었다.
“아니. 이 산… 생각보다 훨씬 큰 것 같아.”
선우는 잠깐 우거진 숲을 바라보며 말했다.
“일단 빨리 가자. 벌써 어두워졌어.”
민혁이 선우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우리는 산을 거의 다 내려왔을 때, 동시에 걸음을 멈췄다.
이미 어둠이 내려앉은 숲 사이로 괴물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재빨리 근처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어떻게 집까지 돌아갈지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있었다.
“일단 나눠서 움직이자. 다 같이 이동하는 게 더 위험할지도 몰라.”
재현이가 낮게 말했다.
“그럼 나랑 선우가 먼저 갈게.”
재민이 선우의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선우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주변을 한 번 더 살핀 뒤 조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재민과 선우가 먼저 떠나고, 남은 우리는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본 뒤 출발하기로 했다.
“뭐 하는 거야…”
먼저 출발한 재민과 선우를 지켜보던 민혁이 낮게 중얼거렸다.
“왜?”
나는 웅크리고 있던 몸을 조금 일으켜 민혁이 바라보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재민은 가던 길을 멈추고 서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산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앞에서 선우는 답답하다는 듯 손짓하며 재민을 부르고 있었다.
“아!”
나는 재민의 옆으로 가까워지는 괴물의 모습을 보고 놀라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안 돼.”
그 순간, 뛰어나가려는 내 손목을 붙잡은 건 재현이었다.
“지금 나가면 더 몰려들 거야.”
재현이는 나를 진정시키듯 다시 앉혔다.
나는 불안한 눈으로 다시 재민을 바라봤다.
“서재민!”
점점 가까워지는 괴물을 본 선우가 결국 크게 외쳤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재민은 선우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괴물은 재민을 향해 더 빠르게 달려들었고, 결국 그는 중심을 잃고 넘어지고 말았다.
민혁과 재현, 그리고 나는 금방이라도 뛰어나갈 준비를 한 채 몸을 긴장시키고 있었다.
그때였다.
선우가 먼저 움직였다.
선우는 길에 떨어져 있던 작은 돌멩이를 집어 괴물을 향해 던졌다. 돌은 괴물의 몸에 맞았고, 괴물의 시선이 잠깐 선우에게 향했다.
괴물은 잠시 선우를 노려봤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재민이 쪽으로 몸을 돌렸다.
“뭐야… 왜…”
당황한 선우의 얼굴이 보였다.
이상했다.
괴물은 선우에게 관심이 없는 것 처럼 보였다.
재민은 넘어져 일어나지도 못한 채 잔뜩 겁먹은 얼굴로 괴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재현이의 손을 뿌리치고 재민에게 달려가려 했다.
하지만 나보다 민혁이 더 빨랐다.
그는 나와 재현이를 한 번 돌아봤다.
그리고 괜찮다는 듯,
작게 웃었다.
나는 그 미소의 의미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안 돼.”
나는 두 손으로 민혁의 팔을 붙잡았다.
“이재현.”
민혁이 내 뒤에 있는 재현을 바라봤다.
“애들 데리고 안전한 데로 피해.”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가 붙잡은 팔을 가볍게 토닥였다.
그리고 그대로 뛰어 나갔다.
“야!!”
민혁이 크게 소리쳤다.
괴물의 시선이 다시 민혁의 쪽으로 향했다.
“뭐 하는…! 안 돼!”
나는 민혁을 따라 뛰어나가려 했지만 재현이가 나를 붙잡았다. 괴물은 곧 민혁을 향해 가기 시작했다.
민혁이 전력으로 달렸다.
하지만 주변 숲에서는 또 다른 괴물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언제 그를 덮쳐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 사이 선우는 넘어져 있던 재민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재현이는 내 손목을 잡고 민혁과 반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