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온기

잃어버린 계절의 끝에서

by 프리지아


눈을 뜨자마자 통증이 밀려왔다.

누군가가 나를 끌어안고 있었다.

고개를 들었다.

재현이었다.

이마가 찢어져 피가 눈가를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눈은 감긴 채로.

너무 조용했다.

나는 천천히 그의 어깨를 흔들었다.

움직임이 없었다.

조금 더 세게.

고개가 힘없이 기울었다.

가슴이 서서히 조여왔다.

나는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미약한 숨결이 느껴졌지만 재현은 눈을 뜨지 않았다.

손이 먼저 그의 뺨으로 갔다.

피가 묻었다.

따뜻했다.

“일어나.”

목소리가 낮게 떨렸다.

대답이 없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이렇게 가까이 본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가까웠다.

눈을 뜨지 않으면,

이 얼굴을 다시는 보지 못할 것 같았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었다.

“봐… 나 여기 있어.”

입술이 마른 채로 붙었다.

그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팔에 힘이 들어갔다.

놓으면 사라질 것 같았다.

목이 조여왔다.

“이번엔 안 돼…”

거의 들리지 않는 소리였다.

숨이 가빠졌다.

눈물이 떨어져 그의 뺨 위로 번졌다.

피와 섞였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가, 거의 기도처럼 중얼거렸다.

“…찬영아.”

짧았다.

애원도, 설명도 없었다.

그때,

그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눈꺼풀이 천천히 올라갔다.

초점이 흐린 눈이 나를 향했다.

“…그만 울어”

쉰 목소리.

나는 그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


“다쳤네.”

재현이가 내 얼굴을 오래 바라본 채 말했다.

“하… 지금 내 걱정할 때야? 너는 정신도 못 차리고—”

울음이 목을 막았다.

말이 끝나기 전에 그는 바닥을 짚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괜찮아. 잠깐 기절했나 봐.”

숨을 고르고는 덧붙였다.

“넌? 어디 아픈 데 없어?”

시선이 내 어깨, 팔, 무릎을 훑었다.

확인하듯.

놓치지 않겠다는 사람처럼.

“나도… 괜찮아. 근데 다른 애들이…”

고개를 돌리자 아무것도 없었다.

조용했다.

지나치게.

파도 소리도, 바람 소리도 없이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안 보이네.”

그가 낮게 말했다.

“이상할 만큼 조용해.”

내 얼굴을 다시 붙잡아 돌렸다.

손이 따뜻했다.

“일어날 수 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우리는 천천히 걸었다.

부서진 것도, 피 냄새도 없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길처럼 깨끗했다.

그게 더 무서웠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의 옷깃을 붙잡았다.

“괜찮아.”

짧은 말.

억지로 만든 미소.

그리고, 떨리는 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더 가까이 붙었다.

“애들은… 어디 있을까.”

목소리가 바람에 흩어졌다.

“우리처럼 괜찮을 거야.”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그래서 믿는 척했다.

“휴대폰은…?”

주머니를 더듬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없어. 가방도.”

그의 시선이 허공에 멈췄다.

버스에 오르기 전, 내 어깨에 걸려 있던 가방을 떠올리는 것처럼.

그 안에 휴대폰이 있었다.

그 안에—

그날 찍었던 사진도.

나는 입을 다물었다.

한참을 걷자, 멀리서 파도 소리가 들렸다.

느리게,

반복적으로.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이상하게 확신이 들었다.

거기 있을 것 같았다.

그날도, 우리는 바다를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으니까.

“바다로 가자.”

나는 멈춰 서서 말했다.

재현이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래. 거기로 가자.”

대신 내 손을 잡았다.

내가 옷깃을 잡은 게 아니라,

재현이 먼저 손을 쥔 거였다.

손이 따뜻했다.

나는 그 온기를 더 세게 붙잡았다.

이번에는,

놓치고 싶지 않았다.




“너 정신차리고 나는 언제쯤 일어났어?”

한참을 걷다 재현이 물었다.

“모르겠어.. 시간은 생각 안해봐서”

굳은 피를 손으로 문질렀다.

따끔거렸다.

재현이 걸음을 멈추더니 내 손목을 잡았다.

“나중에 물로 씻자. 억지로 문지르면 더 아파”

손이 내려가고, 대신 그의 손가락이 조심스럽게 볼을 스쳤다.

핏자국 아래를 확인하듯 천천히 살폈다.

나는 그 얼굴을 가만히 올려다봤다.

“시간은 왜?”

“그냥.. 네가 얼마나 울고 있었는지”

아무렇지 않은 말투였다.

그래서 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대신 재현의 손을 더 꽉 잡았다.


“김민혁..?”

멀리 길 끝에 누군가 쓰러져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는 순간 심장이 먼저 알아챘다.

나는 달려가려 했다.

“아 —”

그 순간 계속 욱신거렸던 오른쪽 발목이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다는 듯 고통이 몰려왔다.

나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재현이 곧바로 내 옆에 무릎을 꿇었다.

“괜찮아?”

“나 말고.. 저기 민혁이 같아”

조금만 늦으면 민혁이를 놓칠 것 같았다.

이상하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 있어. 내가 갔다 올게”

재현은 발목을 살짝 만져보고는 바로 뛰어갔다.

“김민혁!”

멀리서 들리는 목소리에 숨이 조금 돌아왔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나를 끌어안았다.

몸이 굳었다.

“괜찮아? 발 다친 거야?”

낯익은 숨결에 나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백선우..”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웃는 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그의 팔을 잡고 몸을 돌렸다.

“괜찮아? 어디 있었어?”

“멀쩡해. 좀 떨어져 있었어”

선우는 짧게 대답하곤 내 발목을 내려다봤다.

“아, 저기..”

나는 민혁이를 바라봤다.

“가자”

선우는 나를 가볍게 안아 올렸다.

“나 걸을 수 있는데..”

“지금은 내가 걷게 해”

단호한 목소리에 나는 더 말하지 않았다.


“백선우? 너 괜찮아?”

나와 선우가 다가가자 재현의 놀란 눈이 마주쳤다.

“멀쩡해. 그보다 민혁이는?”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여”

“그보다 너 발목 좀 봐”

나는 천천히 내려졌다.

“의사 선생님 모드네.”

장난스러운 말에 그가 코웃음을 쳤다.

“의대 다닌다고 다 의사 아니거든.”

“그래도 제일 믿음직하네.”

그 말에 그는 아무 말 없이 내 발목을 잡았다.

“아파?”

조심스럽게 돌렸다.

“아파…”

대답하는 순간, 이상하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지금 이렇게 셋이서 떠드는 게 너무 평범해서.

그 날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아서..

“괜찮아.”

머리 위로 손이 내려왔다.

짧은 한 번의 쓰다듬음.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너 여기서 민혁이 좀 봐. 이재현, 재민이 찾으러 가자.”

나는 반사적으로 선우의 손을 붙잡았다.

“나도 가—”

“넌 여기 있어.”

“가만히 있어.”

거의 동시에 날아온 말.

나는 입을 다물었다.

“너까지 가면 얘 혼자 깨서 울면 어떡해.”

선우는 장난처럼 말했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아이고 착하네.”

머리를 헝클고 그는 돌아섰다.

“갔다 올게.”

재현이 짧게 남긴 말.

두 사람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졌다.

나는 가만히 앉아 민혁이의 얼굴을 바라봤다.

고요했다.

너무 고요했다.

바람도, 파도도 멈춘 것처럼.

심장이 천천히 조여왔다.

이번엔… 다 잃지 않아도 되는 거지?

나는 민혁이의 손을 조심히 잡았다.

차갑지 않았다.

그 사실에,

이상하게 더 무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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