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정수 Dec 22. 2023

옥죄지 말아라

스스로를 옥죄지 말아라

          

스스로를 옥죄지 말아라!     


당신의 행동을 옥죄지 말아라.

욕심으로도 옥죄지 말아라.

열망으로도 옥죄지 말아라.

스스로가 소모되지 않게

집착스런 마음을 거두고

편한 길을 택하여라.

해방을 얻어라.  

   

당신의 생각을 옥죄지 말아라.

아집으로도 옥죄지 말아라.

고집으로도 옥죄지 말아라.

스스로를 놓아주고

타인에게 양보하여

평화를 택하여라.

친구를 얻어라.     


왜 스스로를 괴롭히려 하는가?

어느 행동도 옥죄지 말아라.

어떤 생각도 옥죄지 말아라.

스스로가 옭아맨 억압을

스스로에게 씌운 굴레를

과감히 풀어 버려라.

자유를 얻어라.       


   

  우리 인간은 참으로 모순된 모습들을 많이 보이는 것 같다.

  우리가 살아가며, 자신도 모르게 자기 스스로를 점점 옥죄고서, 나중에는 스스로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자기모순적 실수를 많이 범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우리 모습은 스스로의 과도한 욕심이나 열망으로부터 출발하거나, 자기도 인식을 잘 못 한 상태에서, 저절로 심리적인 측면의 어떤 옥죔으로부터 출발하는 경우가 아주 많다고 하겠다.

  즉, 알량한 자존심으로 혹은 남들에게 지기 싫어서 스스로를 자꾸 보채기도 하고, 막연히 스스로의 지나친 열망을 채우고픈 마음에서 자신을 옥죄는 경우도 있고, 또 스스로의 생각을 자기 세계에 가두어 놓아 스스로 옥죔을 당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옥죄임 없는 편안한 마음을 얻어라(.houstonbehavioralhealth.com)



  이렇게 스스로 자신을 마구 옥죈 결과, 자기 생활이 매우 피폐해지고, 많은 스트레스로 인해, 결국 삶에 지쳐 큰 회의감이나 우울감을 느낄 수 있다.

  다시 말해, 자신을 에워싼 듯한 그 모든 것들과 치열한 공방을 펼치게 되어,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려하고, 끝까지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어디 지치지 않을 수 있겠으며, 결국 나중에는 삶에 대한 심각한 회의를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기대가 크면 나중에 실망도 크듯이, 팍팍한 현실과 열정적으로 투쟁한 결과는 당연히 자신의 기대에 크게 못 미치게 되어있다.

  이렇게 현실은 자신의 기대보다 턱없이 부족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니, 결국 매번 실망할 수 있고,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면, 자기 몸과 마음이 온통 상처투성이로 되어갈 수 있는 것이겠다.

  이 모두가 불필요하게 타인을 의식한 지나친 경쟁 심리와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한 탐욕 때문이라고도 해석해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이러한 ‘옥죔’ 현상을 그 대상 측면으로 한번 구분해 보게 되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질 수 있겠다.     

  첫째는, 자기 행동을 옥죄는 경우이다.


  이 경우는 주로, 자기의 과도한 욕심으로 인하여 스스로 헤매게 되거나, 자기 열망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무리한 목표를 세우게 되고, 무리한 경쟁을 하게 되어, 그렇게 되는 경우이다. 

  이는 스스로도 그러한 문제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도무지 잘 고쳐지지를 않는 경우에 해당한다.

  또, 자신의 실수에 대해 자주 반성도 해보고, 무지 고쳐보려고도 해 보지만, 자기 속만 타들어 가고, 도무지 컨트롤이 잘 안 되는 경우라고도 할 수 있겠다.


  둘째는, 자기 생각을 옥죄는 경우이다.


  이 경우는 주로, 자기 스스로의 아집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해, 타인이 아무리 좋을 말을 해주어도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거나, 자기만의 엄청난 고집으로 인하여, 절대 자기 생각을 바꾸지 않게 되어 스스로 옥죄임을 당하는 경우이다.

  이는 주로, 위의 첫 번째 경우와 달리, 자기 자신은 자기가 그런 사람인지를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상대방은 이러한 당신에게 너무 실망하여, 이미 당신 곁을 서서히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상태일 것이다.

  특히, 이 경우는 자기 마음이 제대로 해방되고 개방되어 있지 못하여, 자기 생각을 스스로가 정한 틀 안으로 가두고서, 그 안에서 헤매게 되는 경우이니, 보다 더 자기 내면세계에 대한 심리적 치유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이렇게 자기 행동을 옥죄는 경우이든, 자기 생각을 옥죄어 가두는 경우이든, 모두 자기 스스로의 마음이 소모되어 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겠는데, 이러한 옥죄임 현상에서 벗어나, 비교적 자유로운 세상을 누리려면 과연 어떻게 하여야 할까?   

  

  첫째, 옥죄지 말고, 추구하여라.   

  

  만약, 그 옥죔의 대상이 자기의 행동을 옥죄는 경우라면, 옥죄면 죌수록 점점 마음이 초조해지고, 원하는 결과는 잘 안 나오고, 입술이 바싹바싹 타들어 가게 될 수 있다.

  그래서, 점점 기운이 빠지고, 삶의 허무감에 빠질 수도 있겠다.  

  또한, 만약 그 옥죔의 대상이 자기의 생각을 옥죄는 경우라면, 처음에는 잘 못 느낄 수 있겠지만, 점점 외로워지고, 마치 왕따가 되는 기분이 들 수 있고, 그럼으로써 더욱 고립감이나 자기 피해의식, 초조감 등에 빠져들 수도 있겠다.  

   

  그러니, 차라리 이러한 옥죔의 굴레에서 벗어나, 부담 없고 편안한 상태에서, 그냥 ‘추구’를 선택하는 것이 낫다. 

  추구하는 것은 어떠한 목표나 가치를 따를 뿐, 부담을 가지는 상태가 아니므로, 얼마든지 스트레스 없이, 어떠한 강박 관념도 없이 시도가 가능하다.

  그래서, 최대한 편안한 마음으로, 깃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자기 가치에 따른 자기 생각을 그냥 추구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옥죄임 없이 깃털처럼 가볍게(그림;.oprah.com/health_wellness)


            

  둘째, 네 마음이 아주 편해질 때까지 한번 양보를 해보아라. 

    

  우리는 대개의 경우, 자기 현실을 과도히 협소하게 생각하거나, 옥죄어 생각한 결과, 여러모로 양보가 쉽지 않게 되어있다.

  돈이나 재산도, 권력이나 자리도, 어느 작은 것 하나에 대해서도, 실제로는 별로 부족하지 않은 상태에서마저도, 결코 양보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기꺼이 양보를 하여야 더 크게 얻을 수 있음을 깨쳐야 한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은, 늘 지금 가진 것이 없어질까 봐서 허덕이고, 더 못 챙겨서 안달하기가 쉽다.

  그러나, 자기 마음의 여유를 잘 챙겨 가진 자는 항상 먼저 양보를 하려 하고, 그 후에 자신이 노력하면, 얼마든지 더 많이, 그것도 더 좋은 것으로 다시 얻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려 한다.


  여기서, 또 하나의 중요한 관점이 있다.

  사람들은, 어쨌든 계산상 손해를 보게 되는 물질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그래도 어느 정도는 양보가 가능한 반면에, 비용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 자기 생각을 양보하는 데는 상당히 더 인색한 편이다.

  이러한 경우는 보통, 자기 생각에 깊이 심취한 사람, 사회적 다양한 계층 간 교류가 매우 적은 사람, 이유 모를 자기 우월감에 크게 빠진 사람, 너무 칭찬만 많이 들어온 사람, 너무 한 분야에 깊이 빠져 생활하는 사람일수록 그 정도가 더 심한 것으로 생각된다.

  즉, 자기 아집이나 고집 같은 것에 사로잡혀, 절대 자기 자신의 생각을 놓아주거나 개방하지 않으려 하며, 자기 생각과 다른 타인의 생각은 절대 인정하지 못하는 경우이겠다.     


  물론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사회 생활상 경험적으로 여러 마찰이나 논쟁에 부딪히다 보면, 현실적인 부분에서는 일부 양보를 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문제는 자기 마음으로부터의 양보가 잘 안 되기 때문에, 서로 간 타협은 있을 수 있어도, 정서적 소통이나 진정한 교류는 결코 있기 어려운 아주 이기적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는 부류라고 할 수 있겠다.

  제발, 자기 생각을 열린 창공으로 훨훨 날 수 있게, 자기 마음에 큰 날개를 좀 달아주었으면 좋겠다!     


  셋째, 일의 결과보다 상대의 의견이나 관점을 먼저 살펴라.   

  

  우리는 보통, 일의 결과에 너무 연연하기 때문에 늘 초조할 수 있고, 마음이 자유롭지 못할 수 있으며, 그 일의 최종 결과에도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차라리 결과는 별로 생각하지 말고, 과정을 중시하여 일을 해나가다 보면, 결과는 당연히 좋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편안하게 생각하는 편이 낫다.    

 

  즉,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이든 간에 거기에 초탈하려 마음먹고서, 일단 결과는 접어두려 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며, 오로지 당신의 생각을 과정에만 집중하여, 그냥 네 갈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 좋다.    

  또 그 과정에서, 여러 쟁점이나 사회적 마찰이 있을 시에는 당신의 이기적 마음을 철저히 접고서, 차라리 상대에게 존경받을 만한 인물로 자신을 변모시켜 보아라.    

 

  그런데, 존경받을 만한 인물이 되려면, 과연 어떻게 하여야 하겠는가?

  당신이 잘 났다고 하여, 지식이 많다고 하여, 돈이 많다고 하여 존경받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그래서, 여러모로 가진 게 많다고 하여, 절대 자기 아집이나 고집에 집착해서는 안 되며, 상대의 생각이나 상대의 관점을 먼저 마음으로 간파하고서, 또 존중하며 따라주는 것이 좋겠다.

  설령 좀 손해 볼 일이 발생할 수 있더라도, 가능하면 상대의 의견이나 관점을 먼저 챙겨주려 하여라. 그래야 ‘존중’뿐만 아니라, 더 큰 것을 더 크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옥죄임을 벗어나 자유영혼을 얻어라(그림;.houstonbehavioralhealth.com/node)


         

  넷째, 네 자유영혼을 찾아 은은한 생(生)을 누려라.   

  

  자기 몸과 마음을 아주 자유롭고 편하게 하되, 혹여 ‘부화방종’이 없도록 스스로의 내면을 자주 들여다보아야 하겠다.

  즉, 우리가 스스로를 정신적 혹은 육체적으로 옥죄임 없이,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아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것까지는 매우 훌륭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이러한 생활 태도가 자칫 자유방임을 넘어서서 부화방종으로 흘러가서는 절대 안 되겠다.     


  무책임해진 자유방임은 부화방종을 낳고, 부화방종은 다시 눈동자기 흐려진 허영과 탐닉의 세계 혹은 지극히 난잡한 세계로 빠져들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자기 몸과 마음이 아주 자유롭고 해방된 상태에서도, 오히려 안창호 선생이 그토록 강조하였던 신독(愼獨: 홀로 있어도 세상 도리에 어긋남이 없을 정도로 자기를 절제함)을 한번 진심으로 챙겨보는 것이 좋겠다.

  그러려면, 스스로의 영혼을 아주 자유롭게 가져 해방감을 마음껏 누리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자기 절제에 매우 빈틈이 없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다시 말해, 진정한 자유영혼으로 살아가되, 항상 신독과 같은 절제의 미덕을 동시에 챙겨야 하고, 그래서 무슨 일을 도모함에 있어서도, 옥죄임이 없어 마음이 아주 편안해지고, 절제를 알아 생(生)이 매우 은은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섯째, 생각을 다이어트하여라.    

 

  사람의 욕심은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을 것이니, 당연히 주기적으로 다이어트가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나 쉽게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욕심뿐만 아니라, 좋은 생각마저도, 그것이 너무 과다해지다 보면 결국 문제를 만들어내기 쉬우니, 주기적인 다이어트가 꼭 필요하다고 하겠다.

  우리가 아무리 맛있고 몸에 좋은 음식이라고 할지라도, 이를 너무 과식하게 되면, 속이 매우 더부룩해지고, 불쾌감과 후회감마저 몰려오듯, 아무리 좋은 생각도 과대해지면 부작용이 커질 수 있는 것이겠다.     


  따라서, 어떤 생각도 너무 과다하거나 심하게 가지다 보면, 결국은 제어가 제대로 안 되어, 큰 부작용 상태로 돌입할 수 있을 것이니, 늘 자기도 모르게 필요 이상으로 크게 확대되어 갈 수 있는 여러 생각들을 좀 심플하고 명료하게 다이어트할 수 있도록 주기적으로 혹은 실시간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그래야, 보다 반듯한 생각을 가진 사람, 자기 원하는 분야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렇게 자기 생각이 잘 다이어트가 된 상태라는 것은 마치, 음식 섭취 측면에서 보면 꼬르륵 소리가 나기 시작하는 상태, 물질적으로는 핵심적인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완전히 정리된 상태, 정신적으로는 가치 있는 알맹이 생각만 남기고서 나머지는 모두 몰아낸 상태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이렇게 잘 다이어트가 이루어진 상태에서는 당신이 무엇을 먹어도 제대로 맛이 있을 것이며, 아주 작은 것 하나를 얻어도 무한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며, 어떤 아주 작은 목표 하나를 달성하여도 매우 기뻐하여 감격할 수 있는 상태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다섯째, 작아도 좋으니, 세상에 좋은 카르마를 눈처럼 뿌려라. 

    

  어떤 것이든 보람된 일 혹은 가치 있는 일을 행함에 있어서는, 자기 마음에 결코 욕심이나 아집, 고집 같은 것들이 침투할 수 없을 것이므로, 스스로를 옥죄는 일도 없을 것이고, 항상 편안한 행복감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다. 

     

  거꾸로 자신의 마음속에서 욕심이나 아집, 고집 같은 것들을 잘 몰아낼 수 있다면, 마음이 지극히 편안해지고, 항상 타인의 입장이나 관점을 먼저 챙겨주려 할 것이며, 거기에서 자기 보람과 가치를 느끼려 할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자기 마음속에서 욕심이나 아집, 고집 같은 것들을 잘 몰아낸 상태, 즉, 옥죄임에서 완전히 벗어난 상태가 바로, 당신이 세상에 좋은 카르마를, 그것도 당신의 이름으로 마음껏 뿌려놓을 수 있는 바탕이 되어줄 것이다. 

    

  물론 이 말은, 당신의 이름을 세상에 내세워 선행을 하라는 뜻이 아니고, 당신의 이름을 내세우든, 안 내세우든 간에, “그 선행의 주인은 당신임이 확실하다”라는 의미이니, 오해가 없어야 하겠다.

  당신은 이러한 확실한 명제를 이미 챙겼으니, 좋은 카르마를 세상에 많이 뿌림에 있어서, 구태여 당신의 이름을 앞장세울 필요가 전혀 없다고 보는 것이 더 낫겠다.


  즉, 당신이 좋은 카르마를 행하였다면, 그 사실을 당신도 알고, 당신의 신도 알 것이니, 오히려 세상에 민폐가 되지 않게, 자기 이름이 세상에 오르내림을 경계하는 것이 더 마땅하다고 하겠다.

  당신은 그냥 당신 스스로의 고귀한 뜻을 잘 실천하는 데에만 집중하면 된다.    

 

  결론적으로,

  스스로의 모든 옥죄임을 떨쳐 버려라.

  생각을 옥죄어 가둠도, 행동을 옥죄어 재촉하고 옭아매는 일도 모조리 날려 버리고, 진정한 자유영혼을 찾아라.  

   

  생각을 다이어트하여 스트레스 없이 단출하게, 행동을 다이어트하여 지나침이 없이 깔끔하게 하여, 그 아무것에도 구속됨 없이 온전히 자유로워지도록 해보아라.

  혹여 옥죄인 마음 구석이 조금이라도 남아있거들랑, 거침없이 바로 훌훌 털어내고, 자신을 깃털처럼 가볍게 해 보아라.     


  당신이 과연 세상에 진정 자신감이 있는 사람이고, 그래서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러한 호연지기의 마음으로 초조함을 떨쳐내고, 참다운 자유영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며, 세상에 당신의 이름으로 좋은 카르마를, 마치 성탄 선물처럼 뿌려 보아라!, 온통 세상이 흰색의 선한 카르마로 뒤덮이도록.     


  당신이 정말 용기 있는 사람이라면, 진정 이 세상을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자기 마음보다 먼저 타인의 마음을 챙겨라.

  이 세상에 당신의 노력이 지극히 맞닿은 자, 당신의 보살핌이 가득 맞닿은 자, 당신 도움의 손끝이 끝까지 맞닿은 자, 당신의 은혜가 그윽이 맞닿은 자가 많다면, 이 얼마나, 당신이 세상에 와서 보람되고 영광된 일인가?

  세상에 이보다 더 가치로운 일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성탄이 이런 당신을 위한 축제가 되게 하여라,

          이런 모두를 위한 축제가 되게 하여라!”

이전 04화 그대로 두고 보아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