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함이 최선(最善)이다!
진정, 당당한 여인은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사람이고, 당당한 신사는 그 누구보다도 멋진 사람이다!
당당함은 주로 진실된 내공과 자신감에서 나온다. 자칫 아직 많이 부족한 사람이 억지로 당당함을 내세우면, 그것은 진정한 당당함이 아니라, 그저 당당함을 간절히 바라는 표정이나 몸짓에 불과하다.
만약 거짓되거나 인격이 많이 부족한 상태에서 억지로의 당당함은 그 지속 가능한 명분이 없어져 금방 거품처럼 사라져 갈 것이다.
지극한 당당함이란, 주로 겸손하면서도, 한편 인격이 넘쳐흐르고, 오래 지속 가능한 자신감일 것이다. 이렇게 당당함과 겸손은 함께 갈 수 있는 것이지, 서로 대립되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혹자는 너무 당당하면 겸손하지 못하다고 표현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생각은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인격이나 내공이 바탕이 된 당당함이 어찌 겸손하지 못 할 수 있단 말인가?
당당함은 예쁘거나 화려함을 충분히 넘어설 수 있다. 보통 예쁘거나 화려한 것은 그 생명력이 짧은 편이고, 당당함은 지속성을 가지는 것을 그 기본 속성으로 하기 때문이다.
당당한 사람은 아무리 못나도 매력적이고, 은근히 끌리게 마련이다. 당당함 그 자체가 매력이요, 아름다움으로 통할 수 있는 가치이니, 과연 그 누구가 당신에게 끌려오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누구도 당당하면 자신감이 넘쳐나고, 남자든 여자든 비록 일부 부족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매우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다.
어깨를 꼿꼿이 펴라
당당함 자체의 매력을 발산하여라
네 내면을 매일매일 갈고 연마하여 그 내공이 저절로 넘쳐 흘러나오게 하여라.
당당함이란 네 외면적인 요소보다는 내면적인 요소에 크게 좌우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내면적으로 잘 갖추어진 정신과 인격이 외부로 표출되어 당당함을 이루어야 제대로 된 당당함일 것이다.
여기서, 내면적 요소란 그 사람의 인품과 사람됨, 지혜 등의 총체적인 내면적 능력을 의미할 것이며, 이것이 뿜어져 나와 아름다운 인격의 향기를 내뿜는 것이 바로 당당함의 속성을 이루어야 한다.
보통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나 몸짓, 움츠리는 행동이나 걸음 등은 결코 당당하지 못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당당한 사람의 목소리에는, 결코 그 소리가 그리 크지 않아도, 그 무언가 위엄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 사람의 인간적 느낌과 은은한 감성, 향내 등이 말없이 그의 인격을 바쳐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의 낮은 목소리나 작은 주장이라고 하여도, 분명 작은 새가슴으로 조심조심하거나 소극적이고 움츠리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다.
연산군의 후궁 장녹수(숙용 장씨)는 그 성품을 차치하고라도, 얼굴도 별로 못생겼고, 나이도 많고, 애도 딸렸고, 제안대군의 가비(家婢)였으며, 그 출신도 매우 미천하였지만, 연산군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다. 과연 장녹수를 그렇게 만든 그 내공의 힘은 무엇이었을까?
아마 거기에는 나름 자신만의 뛰어난 춤과 노래, 말재주 등으로 단련된 당당함이 큰 몫을 차지하였을 것이다.
또한, 광해군의 상궁, 김개시 또한 천민의 딸이었지만 선조 때 광해군의 궁녀로 들어가, 광해군과 선조의 관계를 잘 중재하였고, 결국 선조가 세자를 광해군에서 영창대군으로 바꾸려고 하는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광해군을 잘 지지하고 옹립하여, 광해군을 왕으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 덕택에 그녀는 광해군 때 국정에 관여하며 권신 이이첨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큰 권력을 잡게 되었다. 그녀 역시 춤과 노래에 매우 능하고 판단력, 영리함 등으로 잘 무장된 당당함 때문에 크게 성공할 수 있었으리라.
물론 장녹수나 김개시 모두 그 인생의 끝은 좋지 못하였으나, 어쨌든 그녀들의 전성기에 그 당당함은 계급적 질서에 철저한 유교 사회에서 엄청난 권위를 지진 재상들이나 판서들마저도 감당해내기 어려웠던 것이다. 당시에는 만약 그녀들에게 밉보이면 매번 휘둘리기 일쑤였고, 오히려 죄를 물어 내쳐지기도 하였던 것이다.
고종의 엄귀비(순헌황귀비 엄씨) 또한, 가난한 평민 출신으로 겨우 8세에 입궐하여, 고종의 총애를 많이 받았으며, 명성황후 사후에는 사실상 고종의 황후 역할을 해내었고, 그의 아들, 영친왕을 순종의 태자의 반열로도 올려놓았었다.
그녀 또한 결코 미인도 아니었고, 특별히 가진 매력도 별로 없어 보이는데, 어떻게 그리 대단한 위치까지 올라갔을까?
아마 그녀의 당당한 여걸 기질이 큰 몫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때, 일본인들이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일본에 끌고 간 아들, 영친왕을 계속 귀국시키지 않고 있자, 이렇게 크게 호통을 쳤다고 한다.
“너희 일본 학교에는 방학도 없느냐? 북해도로 여행을 갔다는데, 그럴 시간이 있으면 그것보다 부모를 만나게 해주는 것이 인지상정이고, 도리가 아니겠느냐!”
그것도 당시 드세기로 유명한 데라우치 마사다케 조선 총독에게 말이다.
다른 예로, 화담 서경덕의 학식과 인품을 바탕으로 한 카리스마(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거의 독학으로 깨우치고, 예지력과 학문의 수준 등이 대단하여 현량과와 생원시에 수석으로 합격하였으나, 시대가 어수선하여 벼슬을 단념하고 독자 노선을 걸을 정도의 자신감과 당당함을 내비침)에 황진이는 감히 어쩔 줄을 몰라 하였고, 그를 꾐에 빠져들게 수차례 유혹해 보았느니 결국 실패하고, 오히려 그의 학문과 고고한 인품에 매료되어 사제 관계 정도로 만족했어야만 했었다.
이 또한, 서경덕의 내공이나 카리스마가 너무나도 대단하고 당당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경덕의 문집인 ‘화담집’은 조선 중기 및 후기 우리나라의 학문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해내었으며, 그의 사상은 위대한 대학자인 이황, 이이, 이준경, 조식 등에게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당시, 그가 은거 생활을 고집하고 있었던 것은 시대 상황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가 살았던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중엽은 사화, 옥사 등으로 사회가 심한 혼란기에 있었고, 정치적으로도 사림과 훈척 세력의 극심한 대립이 있었던 시기였다.
그는 이처럼 엄혹한 시기에 태어나, 권력, 돈, 애정 등, 그 모든 것에 대한 욕심을 접고, 속된 시류와의 타협을 거부하는 대신 학문 연구와 교육으로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자신만의 진정한 가치에 당당하게 정진한, 마치 도인(道人)과도 같은 인물이었던 것 같다.
과연 당당함이란 이런 것이다!
자신의 큰 성취가 있어도 오히려 항상 겸손해하고, 스스로 먼저 자신을 낮추고, 늘 상대를 진정으로 배려하고, 절대 남들과 비교하지 않아 속상해하지도 않고, 아무리 큰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어도 절대 기죽지도 않고, 고타마 싯타르타가 이야기한 ‘무소의 뿔’처럼 오로지 자신의 가치에 기개 있게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당당함이 최선(最善)이다!” - Pa sayin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