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에는 진실한 마음을 담고, 비판에는 겸손한 마음을 담아라!
칭찬에는 진실한 마음을 담아야 하고, 비판에는 자기가 오히려 틀릴 수도 있다는 겸손한 마음을 담아야 한다!
우리는 여러 상대와의 소통 과정에서, 상대의 마음을 거슬리게 하거나, 거부감을 느끼게 할 수 있는 부류의 비판(지적, 비난, 험담, 뒷담화 등 포함)의 말은 일단 생략하거나 미루어 두고서, 칭찬을 먼저 행하되, 항상 진심을 담아서 하는 것이 좋다. 아니,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이다.
누구나 여러 대인관계에서 상대의 말이나 행동을 나쁘게 평하고 싶은 경우도 많이 생길 것이다. 특히 제3자에 대한 뒷담화의 유혹에는 더더욱 쉽게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일단은 그러한 나쁜 말이나 표현을 생략하거나 미루어 두는 것이 좋다. 오히려 당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좋을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만약 당신의 입이 못내 간지럽거나 스트레스를 풀 길이 없다면, 역설적으로 그 대상을 크게 한번 칭찬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할 점은, 없는 칭찬, 어색한 칭찬, 칭찬을 위한 칭찬을 굳이 만들어서 하려 하지 말아라!
그러한 시도는 당신 스스로를 속이고, 상대도 속이는 행위일 수 있으니, 옳지도 못하고, 그 칭찬으로 인한 좋은 감정이 결코 오래지 못해 명분을 잃을 것이다.
그런데, 상대를 잘 관찰해보면 상대에게 내재된 좋은 칭찬거리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신은 어느 누구에게도 한 가지 이상의 훌륭한 장점이나 재주를 주었을 것이니 말이다.
그것을 잘 묘사하고, 잘 설명을 덧붙여 상대에게 혹은 주변 사람을 향해 자주 표현하고, 진심으로 칭찬을 하다 보면, 그것은 한 번의 좋은 칭찬을 넘어, 앞으로의 멋진 관계의 매개체 역할을 해줄 수 있다. 진심은 언젠가는 진심으로밖에 받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때, 굳이 상대를 향한 직접적인 칭찬에 너무 치중할 필요는 없다. 주변 사람이나 이웃에게 그런 칭찬을 하여도,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처럼, 당신의 그런 마음은 그 맞수(상대)에게도 텔레파시처럼 잘 전달되어질 가능성이 크다.
장기적인 안목에서는 이러한 간접적인 칭찬이 상대에게 더 큰 감동으로 다가설 수도 있겠다.
서로의 인간관계가 이러한 상승적인 방식으로 풀려나가게 되면, 처음의 비호감도가 점차 사라질 것이고, 대신 호감도나 친밀도가 점차 올라갈 것이며, “비 온 뒤에 땅이 더욱 굳는다”고 하듯, 둘도 없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올 수 있다.
우리에게 관포지교(管鮑之交)의 교훈으로 널리 날려진 ‘관중’과 ‘포숙아’의 관계에서도, 관중은 좀 잘난 사람이면서, 꾀도 많은 사람에 속하고, 포숙아는 크게 뛰어나지는 않아도 다소 신의가 있고 무던한 사람이다. 관중의 여러 튀는 행동, 자기 잇속 챙기기 등에도 포숙아는 그를 비판하기보다는 늘 마음을 담아 감싸주려 하였다.
이러한 포숙아의 너그러운 마음은 나중에 드디어 관중을 감동하게 하여, 아래와 같은 말은 하였다고 한다.
"나를 낳아주신 분은 부모님이지만, 나를 알아주는 사람은 오직 포숙아로구나!“
그리고 이들의 끈끈한 우정은 드디어 상승작용을 크게 일으켜, 제나라 ‘환공’을 도왔고, 그들의 주군인 ‘환공’을 춘추시대 첫 전국 패자(지배자)의 반열에 올려놓은 바 있다.
이런 고사를 통해 볼 때도, 포숙아의 칭찬은 그저 흔한 칭찬이 아니고, 칭찬을 하되 지극히 진심을 담았다는 것이 그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한 진심이 관중을 감동하게 했고, 보다 큰일을 도모할 수 있었으리라!
한편, 상대에 관한 ‘비판’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보자.
누구나 상대방 말의 잘못된 점에 대해 지적이나 비판을 하고 싶은 경우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이를 참고, 잠시 삭혀두는 것이 더 좋겠다.
나중에 시간이 다소 흘러, 당시에 지적하고 싶었던 내용을 다시 꺼내 살펴보면, 오히려 자신의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고, 자신의 오해가 일부 있었던 것으로 결론되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때 상대를 바로 지적하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이다!”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겠는가?
만약 그러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이제 시간이 다소 흘렀으니, 좀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거나 평가할 수 있는 성숙된 마음의 눈이 생겨났을 것이다.
이때 비로소 그 하고 싶었던 비판을 충분히 해도 된다. 그러나 사실 이때 하는 비판은 더 이상 비판의 수준이 아니고, 객관적인 평가 혹은 평론의 수준이 되어있을 것이다.
이때쯤의 상황이라면, 당신이 당시에는 잘못 생각했던 점이 있으면, 반성도 흔쾌히 하려 할 것이고, 마음으로 사과할 것이 있다면, 그것도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는 아량이 생겼을 것이고, 혹여 여러 번 다시 생각해 보아도 여전히 나쁘게 그를 비판해야 한다면, 충고 한마디를 해주는 것도 괜찮다.
그러나 이때 해주는 충고는 감정이 거의 섞여 있지 않을 것이므로, 상대도 흔쾌히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고, 상대에게 매우 도움이 되는 약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렇다! 말을 잘하려면,
첫째, 비판이나 험담은 일단 생략하고, 그냥 잠시라도 삭혀두기를 바란다. 당신이 틀렸거나 오해를 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겸손한 마음을 지니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비판이나 험담 같은 것은 처음에는 감정이 섞여 있을 수 있어서 지극히 객관적이지 못할 수도 있고, 때로는 나중에 당신으로부터 험담이나 비판을 들은 사람이 그 대상자에게 다시 확인해본 결과, 네 말이나 표현의 문제점이 조금이라도 발견되면 당신의 인격이 오히려 역공당할 수도 있다.
둘째, 마음의 진정성을 담지 않은 칭찬은 그저 의미 없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평소 “칭찬을 많이 하라.”라고 입버릇처럼 많이 이야기하지만, 칭찬도 그냥 일부러 혹은 형식적으로 하는 말의 수준에 머물게 되면 그 효과가 매우 적을 것이고, 때에 따라서는 ‘자기 기만’일 수도 있고, 상대를 기만하는 행동일 수도 있다.
특히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칭찬이나, 꾸며낸 듯한 칭찬, 앵무새 같은 반복적 칭찬을 반복한다면, 금방 진정성을 의심받게 될 것이며, 좀 길게 보면, 상대와의 인간관계에 오히려 지장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당신이 얄팍한 기회주의적 인격자로 치부될 수 있으니 말이다.
따라서 적어도 당신이 오래가는 친구관계, 인간관계를 원한다면, 위에서 언급한 ‘포숙아’처럼, 칭찬의 말에 반드시 진실된 마음을 실어라. 진정한 칭찬이 아닌, 그냥 의미 없는 말에 지나지 않는 칭찬은 가능한 한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또한, 지나치게 과장하여 칭찬하는 것, 격이 맞지 않는 칭찬, 상황에 맞지 않는 칭찬 등은 더욱 좋지 못하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담백한 칭찬의 표현이 제일 좋은 편이고, 여기에 감성이 살짝 더해지면 상대를 충분히 감동케 할 수 있을 것이다. 절대 내용의 지나친 가감이나, 무리한 감정 표현 등은 아니 함만 못할 수 있다.
셋째, 대화 시에 나쁜 말뿐만 아니라, 나쁜 표정도 짓지 말아라. 아직 팩트가 정확히 증명되지도 않은 사실, 혹은 그 진위가 다소 의심스러운 말이라도, 일단 상대방을 믿고, 고개를 끄덕여 주면 되는 것이지, 구태여 미리 인상을 쓸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무엇이든 한번 꺼내거나 표현을 해버리게 되면 다시 주워담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부정적인 몸짓, 바쁜 표정 혹은 그러한 부류의 말들은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 뻔한데, 구태여 그러한 부류의 말을, 사실의 확인 이전에, 속단하여 미리 입 밖으로 꺼내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그렇게 하여 대인관계에서 얻을 것이 별로 없을 것이니 말이다.
이와 관련된 예를 한번 들어보자.
한 대학 강의실에 어떤 학생이 실내복 혹은 다소 잠옷과 유사한 차림으로 왔다고 한번 가정해 보자. 보통 교수님 중 일부는 많은 학생들이 모인 강의실에서 바로 핀잔을 주거나, 크게 야단을 치거나, 냉혈 인간 같은 눈빛을 날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곧장 크게 야단을 치거나, 나쁜 눈빛을 날려 보아야 ‘꼰대’ 소리밖에 더 듣겠는가?
이럴 경우에는 일단, 주변 정황이 정확히 파악되어있지 않을 것이므로, 그 학생의 처지나 상황 파악을 먼저 하는 것이 좋다.
방법적인 측면에서는, 그 학생을 차분하게 복도로 불러내어 사정을 따로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아니면 차라리, 그 옷차림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수업을 진행하다가, 혹시라도 수업 도중 자세가 많이 흐트러지거나, 엉뚱한 행동을 하거나,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을 방해하거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제대로 못 하거나 하게 되면, 그러한 팩트를 가지고 야단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겠다. 그 학생도 당연히 수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니 말이다.
만약 그 교수님이 이런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고, 처음부터 크게 화를 내거나, 야단치기에 신경이 곤두섰었고, 그 학생에게도 큰 반발심을 가지게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학생에게 그럴만한 신체적 사정(아파서 몸이 부었다거나, 알레르기로 인한 의사의 권유 등) 혹은 환경적인 어떤 사정이 있어서 옷차림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판단이 된다면, 그때에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어버린 이후일 것이다.
여러 상황에서 우리가 살다 보면, 당시에는 정말 이해가 안 될 수 있는 일들도 많이 대하게 되고, 이해할 수 없는 특이한 유형의 사람도 간혹 만나게 된다.
이럴 경우 역시 정확한 상황이나 사정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고, 절대 당신이 먼저 인상부터 쓰거나, 화부터 내거나, 나쁜 말부터 꺼내는 것은 참으로 금하는 것이 좋겠다. 특히, 제3자에 대한 험담(뒷담화)은, 장기적 관점에서는 네 인격을 심각히 의심받을 수 있을 것이므로 더욱 금하는 것이 좋겠다.
결론적으로 볼 때, 인간관계 속에서 때로 많이 얽히고 꼬인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절대 남을 비판해야 하는 부류의 언사나 나쁜 표정 같은 것은 일단 뒤로 미루어 두고, 춘추시대 ‘포숙아’의 지혜처럼 상대에게 내재된 장점이나 좋은 칭찬거리를 찾아내어, 이를 진심으로 칭찬부터 해주는 것이 좋겠다.
이럴 때도, 그저 칭찬을 위한 칭찬이나, 가식적인 쇼맨십, 엉터리 칭찬, 지나치게 과장된 칭찬 같은 것은 더 이상 안 했으면 좋겠다. 솔직 담백한 칭찬이야말로 점차 관계의 상승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꼭 기억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