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눈앞의 이익만을 챙겨야 하는 인생은 얼마나 여유가 없는 것이며, 마음이 불안한 인생인 것인가?
오늘 번 것을 오늘 모두 탕진해야 속이 후련한 듯, 마구 쓰려고만 하고, 남에게 과시하는 데에 집착하는 사람은 얼마나 속이 얕고, 근시안적인가?
큰 사고나 대재앙 앞에서도 자기 손해는 조금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 또한 얼마나 이해타산적이다 못해 불쌍한가?
바로 직면해 있는 현재의 상황만을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해 버리는 사람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자신이 바라던 일이 즉시 실행되지 못한다고 하여, 화를 버럭버럭 내며, 잠시도 기다려 주지 못하는 사람은 얼마나 조급한 사람인가?
하나만 보고서 모든 것을 이해한 양, 거들먹거리는 사람 또한 얼마나 단편적 인간인가?
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말을 가로채어 황급히 자기 말을 마구 이어 나가는 사람은 얼마나 성급하고, 자기중심적인가?
자기보다 못한 처지의 사람을 보면, 마구 하대하고 갑질하려는 사람은 얼마나 저급한 인격의 소유자인가?
아무에게나 손가락질을 하고, 마치 지적을 즐겨하려는 듯한 사람 또한 얼마나 가볍고,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사람인가?
사소한 일에도 자기 자존심만 내세우는 사람은 얼마나 꼴불견인가?
남의 말에 꼬리 물기를 좋아하여, 사사건건 반문하는 사람은 얼마나 밴댕이 속인 것인가?
자기 잘못이 명백한데도 사과 한마디 없이 그냥 뭉개고 넘어가 버리는 사람 또한 얼마나 꼰대 같은 사람인가?
아무런 생각 없이, 늘 오늘 벌어 오늘 먹고사는 생(生)을 이어 나가려는 사람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오늘 하루가 힘들다고 하여, 아무런 돌파구 마련 없이, 그냥 굴복하려는 사람은 얼마나 의지가 약하고, 용기가 부족한가?
자기 부족한 내면은 생각하지 않고, 매사 가오만 잡으려는 사람 또한 얼마나 위선적인 사람인가?
위에서 쭉 예로써 제시한 ‘인간상’에는 모두 공통적인 요소가 하나 있다고 하겠다.
그것은, 바로 지극히 ‘근시안적 안목’을 가지고 있어서, 눈앞의 이익이나, 자신의 당면한 입지만을 챙기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누구라도 쉽게 어리석고, 단편적이고, 성급하고, 위선적인, 이른바 ‘꼴불견 인격’으로 빠져들 수 있다.
사람은 자고로, 제법 멀리 내다볼 줄 알아야 한다,
인간은 결국, 장기적으로는 희망을 먹고살기 때문에, 멀리 내다보기만 잘한다면, 오늘이 아무리 힘들고 고단해도 잘 참고 견딜 수 있게 되어있다.
또 이러한 희망적 선순환 고리의 과정에서, 점차 요령이 생겨나서 커지게 되고, 지혜도 점차 커질 수 있을 것이므로, 현실의 힘듦, 괴로움 같은 것들은 많이 완화되어 가거나, 자신과는 거리가 먼 얘기가 되어가기 쉽다.
바둑이나 장기에서도 몇 수 앞을 더 내다볼 수 있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판가름 나기 십상이듯, 우리 인생의 여러 굴곡의 모퉁이에서도 이렇게 앞을 잘 내다보는 단수(능력, 정도)에 의해서 앞으로의 성패가 갈려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미래를 정확히 잘 내다보려면, 우선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성찰을 위해서는 과거에 일어난 일 또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잘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
과거의 좋은 경험이나 뼈아픈 실패에서 지극한 공감 혹은 눈물겨운 반성 등을 얻을 수 있다면, 미래는 더욱 명약관화하게 보이게 될 것이며, 네 앞길에는 비로소 지혜의 샘, 희망의 샘만이 솟아오르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람은, 과거를 관통하여 미래를 꿰뚫어 내다 불 수 있는 비교적 긴 안목의 통찰력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또한, 이렇게 미래를 정확히 잘 내다보려면, 과거에 대한 통찰력뿐만 아니라, 자신의 다양한 주변에 대한 관찰, 살핌, 파악 등도 아울러야 하겠다. 이른바 횡적 시간에 대해서도 챙기라는 것이다.
즉, 자기 이웃을 잘 살펴보아, 그 속에서 공감과 지혜를 얻고, 친구의 실패한 경험담을 잘 살펴 듣고, 나의 자세와 방향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결국, 나도 똑같은 실패를 할 수 있다는 겸손함을 토대로 주변을 잘 살피고, 어루만져 줄 때에만, 내가 그토록 원하던 나의 미래상에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와 관련하여, 누구나 오류를 범하기 쉬운 사례를 몇 가지 들어보자.
첫째, 사람을 사귀거나 좋아할 때에도, 처음에는 비록 그 사람의 장점만이 내 눈에 많이 보여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지만, 시간이 다소 흘러 이러한 장점이 다소 흐릿해지고, 결국 단점이 많이 보이기 시작하는 단계를 맞닥뜨릴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상황, 즉 단점이 많이 보일 수도 있는 상황을 사전에 충분히 감안하면서 사귀어 나가는 것이 매우 좋다고 할 수 있겠다.
즉, 매우 희망적이고 기쁘더라도 그 기쁨을 너무 만끽하지만 말고, 어느 정도 그 감정을 남겨두고, 슬퍼도 너무 슬퍼하지만 말고, 어느 정도 그 감정 변화의 여지를 미루어 새기는 방식이 좋다.
이러한 다소 지긋한 마음의 자세, 한순간 흥분되지 않는 마음의 자세는 관계의 지속성, 관계의 진정성에 더욱 도움을 크게 줄 수 있겠다.
만약 상대에 대한 당장의 호감에 눈과 마음이 멀어서 너무 흥분하고, 지나치게 좋아하기만 하다가는, 얼마 가지 않아서, 바로 단점도 발견되고, 식상해지기도 할 것이니, 많은 실망을 하게 될 것이고, 관계의 단절을 염려하여야 할 상황마저 곧이어 맞닥뜨리게 될 수 있다.
둘째, 우리가 어떤 조직에 들어가거나, 회사에 취업하였을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처음에는 서로 구성원들 간에 장점들을 많이 보여 줄 것이므로, 관계가 원만하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장점이 실망으로 바뀌게 되고, 암울한 시기를 겪게 되기 쉽다.
이럴 경우, 우리는 흔히 아래와 같은 표현을 많이 쓴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초심을 잃어버려서 이런 문제가 생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일부 초심의 문제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오히려 ‘시간적 괴리’를 극복하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일 것이다.
즉, 처음 입사 초기의 시간의 개념과 한참 지낸 이후의 시간의 개념은 차이가 당연히 크다. 처음에서 서로 눈치 싸움 내지는 조심하는 모드로 접근할 것이므로 크게 문제 될 것이 없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점 더 현실의 복잡하고 세부적인 상황에서 격돌하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관계의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흔히 “디테일에 악마가 있다!”라는 표현을 많이 하듯이, 이렇게 세부적인 모드로 들어가게 되면, 서로 예민해지기 쉽고, 단점이나 허점도 많이 보일 것이니, 차라리 처음부터 이러한 변화(시간의 개념적 차이)를 어느 정도 예상하면서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가는 방식으로 조직 생활을 처음부터 임했다면, 처음의 흥분된 기대감은 다소 덜 했을지 몰라도, 장기적인 안목에서 조직 내에서의 생활은 보다 원만했을 가능성이 크고, 관계의 지속성도 보다 쉽게 확보할 수 있었지 않을까?
즉, 입사 초기에 해야 할 일과 마음가짐, 시간적 스테이지(단계)는 얼른 넘어서야 할 것이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다음의 단계에 걸맞은 행동과 자세를 보여주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하였다면, 당연히 경쟁자들로부터 역공을 받거나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셋째, 여러 대인관계에서, 간혹 분을 참지 못하고 화를 내거나, 다소 격앙되는 일이 많이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에도 시간의 개념만 꿰찰 수 있다면, 문제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사건의 초기 단계에서, 화를 충분해 낼 만한 일을 맞닥뜨리게 되면 누구라도 분노를 폭발시키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을 것이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 마음이 시키는 대로 그대로 분노를 터뜨리게 되면 하수(下手)인 것이고, 시간에 대한 조절 능력을 꿰차서 이 단계를 비껴감으로써, 잠시 후 좀 더 정제된 대응책을 내어놓을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면, 당신은 고수(高手)인 것이다.
즉, 이러한 난처한 상황에서는 잠시 촌각이라도 의도적으로 시간을 흘려보낸 후 네 마음의 냉정과 안정을 되찾은 후, 뭔가 다소 업글(upgrade)된 응수를 상대에게 날릴 수 있다면 당신은 비로소 고단수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위의 몇 가지 예에서도 보았듯이, 항상 매사에 당신의 사고를 시간상으로 좀 확장해서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즉, 인생을 살면서 가능한 한 긴 시간 혹은 긴 세월을 네 머릿속에 그리면서 사는 것이 좋겠다.
물론 여기서 시간에 대한 개념은 상황별로 모두 다를 수 있을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수초 간을 참지 못하여 분노를 터뜨리는 바람에 일을 망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또 어떤 경우에는 수년을 생각해서 결정한 사항인데도 불구하고, 조금 더 참고 기다리지 못하여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렇게 “시간을 꿰차라”라는 주문은 매일의 일상에 찌들어 사는 우리네 삶에 결코 넉넉지 않은 주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이 그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좀 더 멀리 내다보는 습관을 잘 익혀 나간다면, 이는 참으로 유익한 삶의 방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사안을 두고서, 겨우 몇 분, 몇 시간을 고려하여 판단하는 것과, 보다 긴 안목 혹은 긴 시간 후의 예상되는 결과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은 그 결과가 매우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당신의 긴 안목의 사고에 도움을 줄 만한 것들로는, 주로 여러 서적, 다양한 토론, 영화, 강연, 예술 등을 들 수 있다.
앞으로 당신에게 전개될 많은 변화와 관련된 흥미로운 예측이 가득 담겨진 이러한 다양한 작품이나 활동 등으로부터 당신은 매우 흥미로운 미래의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다양한 시나리오를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고, 이를 네 오늘의 행동이나 판단의 중요 기준으로 삼을 수 있겠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그림: .yes24.com/Product)
참고로,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이라는 소설에서 보면, 주인공 ‘이반 일리치’가 죽음에 이르러서야, 모두가 자기를 외면하는 낯선 상황에서, 그래도 자신을 진심으로, 아무런 조건 없이 도와주는 하인 ‘게라심’과 그를 쏘옥 빼닮은 아들의 눈물을 통해서, 인생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출세도, 명예도, 재물도 아니며, 오직 거짓 없는 진실된 삶, 이기심을 스스로 꺾은 삶만이 의미 있는 삶임을 발견하게 된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자기 몸의 심한 통증으로 인하여, 제대로 자리에서 일어날 수도 없는 그가 이러한 정신적 깨달음을 가지는 순간 육체적 괴로움과 죽음의 공포에서 해방되게 된다.
이 순간 무서운 어둠이었던 죽음은 그 존재를 감추고 대신 빛으로 변한다. 즉, 죽음 너머로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듯한 순간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물론 소설이라는 것이 작자의 고유한 생각이 많이 투영된 것이고, 어떤 논리적 근거가 명확히 있는 것은 아니기는 하지만, 거장답게 인생의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하나의 매우 중요한 단면과 깨달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우리는 이반 일리치가 돈과 명예와 출세만을 쫓다가 결국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 자신이 삶의 마지막을 어떠한 곳에서, 누구와 함께, 어떠한 모습으로, 얼마나 더 진실한 모습으로 보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는 것도 아주 유익하겠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은, 사실 젊어서부터 하는 것이 더 좋다.
가령, 자신도 아마 내일모레 곧 요양원, 요양병원 등 여러 요양시설 중 하나를 선택하여 가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면, 젊은 현재를 더욱 소중하고 값지게 보내려고 부단히 애쓸 것이 아니겠는가?
만약 당신이 나이가 다소 있는 사람이라면, 무엇보다 주변을 잘 정리하고, 자신 주변의 모든 것을 새털처럼 가볍게 해 두는 것이, 언제 무슨 일이 닥쳐도 절대 당황하거나, 방황하지 않을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해두는 자세일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늘 “당신이 내일 당장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해 보아라.”라고 강조하여 말하였다.
이런 말을 그가 자주 강조하여 일반인들에게 호소한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아마 그 의도는, 자신이 긴 시간을 꿰차보니, 다가올 미래를 직시할 수 있었고, 그래서 현재 자신에게는 정말로 중요한 일만을 머릿속에 남길 수 있었고, 오로지 여기에 집중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미, 또 그렇게 사는 것이 값진 인생이라는 자신만의 철학을 호소했던 것이리라.
삼성의 초대 회장인 이병철도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이 인류에게 진정 도움이 되는지를 항상 확인하라.”라고 늘 강조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돈보다 먼저 인재를 중시해야 하고, 자기 기업보다는 다른 기업들의 입장을 항상 먼저 생각해 주라고도 말하였다.
그의 이러한 기업가로서의 철학은 모두 삶의 마지막 자락의 궁극적 가치와 닿아있는 것 같다.
요즘의 개념으로 비유하자면, 이병철 회장은 ‘ESG’의 중요성, 사회적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중요성 등을 목 놓아 호소한 듯하다.
그렇다! 결국 누구도 자기 삶을 행복으로 완성해 나가려면, 톨스토이의 암시처럼, 오로지 거짓과 위선을 철저히 벗어던지고, 진정성에 바탕을 둔 의미 있는 삶을 살아낼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생(生)의 가치가 세월을 꿰차서 그 삶의 끝자락에 맞닿아도 결코 부끄럽지 않은, 그래서 스스로 확신하는 방향으로 일관되게 추구되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