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를 없이 집중된 삶이 되게 하여라!
“네 삶이 산란해질 겨를 없이 집중된 삶이 되게 하여라.
그래서 가지런한 삶이요, 가치 지향적 삶이 되게 하여라!”
먼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제목에서 “겨를 없다”라는 표현이 절대 조급하게 살라고 하거나, 여유와 쉼 없이 살라는 말이 아니다.
그 의미로는, 조용하고 고요한 가운데, 하고자 하는 일에 더욱 집중을 잘해 나갈 수 있어야 하고, 또 심리적 공간이 매우 커서 작은 것이나 사소한 것에 쉬이 예민해지거나 산만해질 겨를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즉 다시 말해, 이 말은 작은 것이나 사소한 외란에 신경 쓸 겨를 없이, 자기 소중한 가치에 보다 “집중하여 살라”라는 뜻으로 이 글에서는 의미한다.
참고로, 물리학에서는 이런 성질을 주로‘비열’ 혹은 ‘열용량’이라고 표현한다. 즉, 비열이나 열용량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웬만한 외란이나 소동에도 변화가 매우 적고, 그 대신 그만큼 많은 양의 에너지를 한꺼번에 저장할 수가 있어서, 필요시에 그 저장된 에너지를 집중적으로 많이 꺼내어 쓸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한편, 이렇게 겨를 없이 집중된 삶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다 보면, 스스로 취하려는 가치를 충분히 얻을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고, 이는 또 자기 인생의 큰 의미와 보람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로지 자신의 정신적·육체적 자세가 원하는 바에 제대로 집중되어 있어서, 바위도 뚫을 정도로 고도로 강해지도록, 보다 습관화해 보는 것이 좋겠다.
그렇다면, 이를 실천하기 위한 방법적 측면을 구체적으로 한번 생각해 보자.
첫째, 작은 것에는 가능한 한 신경을 쓰지 말아라. 특히 욕심에 기인한 행동은 극히 경계하여라.
항상 사소하고 작은 것에 민감해지는 것을 매우 경계해야 하고, 불필요한 혹은 부가가치가 매우 적은 일에 신경 쓰는 것 또한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해야 하며, 지극히 하찮은 일에 골몰하는 것은 최악의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저런 유혹에는 손도 대지 말고, 작은 계산은 아예 하지를 말고, 때에 따라서는 작은 이권도 서슴없이 포기할 마음을 가져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되겠다.
이렇게 하면, 스스로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것이며, 하고자 하는 곳에 제대로 집중할 수 있는 기본 준비가 되는 셈이다.
둘째, 심리적으로 산란해지지 말아라.
집중된 마음만이 큰일을 해낼 수 있고, 자기가 설정한 가치를 보다 잘 이룰 수 있음을 인정하고, 매사 당면한 일에 최대한도의 집중력을 한번 투사해 보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쉽게 예민해지는 것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만약 이러한 예민한 감정이 심해지면 마치 ‘틱 증상’이라도 있는 것처럼 이리저리 마음을 빼앗기게 되어 도무지 집중이 어렵기 때문이다.
고전에 많이 나오는 말로써, ‘정신일도 하사불성(精神一到 何事不成; 정신을 집중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가 자칫 산란해져 엉뚱한 곳으로 흩어지기 쉬운 마음을 다시금 한 곳으로 끌어모아야 비로소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고, 큰 성취를 얻어낼 수도 있다.
셋째, 지속성과 일관성이다.
무릇, 이것이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사람은 누구나 나태해지기 쉽고, 쉽게 지쳐버리기 쉽기 때문에, 한두 번은 집중을 잘 해낼 수 있다고 하여도, 그것이 쭉 이어져서, 지속적으로 추구되지 못한다면, 금방 도로아미타불이 되기 십상이다.
즉, 항상 산란해져 한눈팔기 쉬운 마음을 반복적으로 다시 끌어모아서, 제자리로 돌려놓으려는 부지런함을 챙겨야 할 것이다.
넷째, 가능한 한 처음의 순수한 마음을 끝까지 지켜내어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옛 속담에 “염불에는 마음이 없고, 잿밥에만 마음이 있다.”라는 말이 있듯이, 모름지기 무엇을 도모하더라도, 사람이 본래의 순수한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추구를 해나가야, 제대로 그 하고자 하는 뜻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주객이 전도되어, 엉뚱하고도 사사로운 곳에 한눈을 팔기 시작하면, 뜻하는바, 작은 것 하나도 이루어 내기 힘듦을 꼭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다섯째, 사유는 자유롭고, 마음은 간절해야 한다.
당신의 사유는 무한한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게 하는 것이 좋다. 단, 화두(원하거나, 알고자 하는바)가 정확해야 얻어낼 것도 많을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알고자 하는지, 그 자체가 흐릿하다면, 겨를 없이 집중을 할 심리적 명분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얻고자 하는 부분에 자기 마음이 간절해질 수 있어야, 그 추동력이 제대로 생기고, 도중에 여러 난관에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추구할 수 있겠다.
만약, 스스로를 객관적인 관점으로 평가해 볼 때, 당신의 머리가 굳어있거나, 마음이 꽉 막혀있거나, 간절함이 매우 부족한 상태라면, 그것은 최악의 상태에 가깝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여기서, 이해를 돕기 위해서, 관련된 예를 몇 개 들어보자.
아인슈타인은 실제로 잠은 많이 잤다고 하며, 그 대신 깨어있을 때나 잠들기 전후에, 자신이 알고자 하는 분야에 그만의 고요한 집중력을 최대한 발휘했다고 한다.
그의 유명한 ‘상대성 이론’도 침대에서 잠들기 전에 퍼뜩 스친 아이디어를 끝까지 간절한 마음으로 물고 늘어져, 끝내 그 생각을 아주 큰 이론으로 발전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즉, 아인슈타인의 놀라운 업적은 수면시간의 길고 짧음보다는 집중력과 간절함이 아주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에디슨은 훗날 자신의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것이 자신의 집중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하였을 정도로, 자신의 집중력을 항상 귀중하게 생각하고, 지속적으로 개발해 나갔다.
즉, “귀가 잘 들리지 않으니 산만해지지 않고, 잡음에 영향을 받지 않았으며, 집중력도 보다 크게 발휘할 수 있었다.”라고 회고하였을 정도이다.
이러한 그의 집중되고 낙천적인 성격은 그가 본격적으로 발명가로 나선 후에도,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으며, 숱한 실패와 좌절에도 끊임없이 자신이 그토록 해결하고자 하는 기술에 대한 연구와 발명에 몰두하면서 겨를 없이 산 것이다.
조선 후기의 김정희는 제주도 유배 기간 동안 놀라운 집중력과 간절함을 발휘하여, 유배 전에 윤택했고 다소 사치스럽다고 평가할 수 있었던 글씨체를 군더더기와 기름기를 모두 발라낸 듯한 원초적인 모습의 ‘추사체’로 완성할 수 있었다.
즉, 그의 겨를 없는 집중된 유배 생활이 세기적‘추사체의 완성’이라는 큰 결실로 이어지게 된 셈이다.
또, 당시 김정희는 많은 고난 끝에, 그래도 긍정적이고 집중하는 습관을 잘 체득한 덕택에, 인격적으로도 많이 성숙하여, 과거의 오만함과 거만함을 모두 버리게 되었고, 많은 곡절 끝에 신세를 크게 지게 된 고(故) 이광사 선생과 이삼만 선생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전했다고도 한다. 이는 참으로 추사의 인간적인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위의 몇 개의 예는 인생에서 집중되고 가지런한 삶이 얼마나 위대한 결과를 만들 수 있는지를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삶에 결코 휴식이나 취미, 오락 등이 없었던 것은 당연히 아니다. 일을 잘하려면 잘 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렇지만, 이들은 그런 휴식이나 취미 등을 통해 재충전을 하고, 삶의 여유를 찾은 뒤에는 항상 어김없이 자신들만의 집중된 삶의 선상으로 복귀하는 복원력 같은 것이 대단히 컸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자신들의 추구점과 가치점에 꾸준한 일관성을 보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위의 예에서 보듯이, 사람의 마음이 쉬이 흩어지지 않고 집중되어진 삶은, 결국 스스로가 원하는 큰 성취와 가치로운 결과로 당신에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니, 부디 가치가 적은 일이나 잡다한 온갖 인생사에 너무 오지랖을 발휘하지 말고, 당신이 설정한 고귀하고 가치 있는 곳에 ‘겨를 없는 집중’을 한번 보내보는 것이 어떨까?
그게 무엇이라도 좋다. 어떤 길이어도 좋다, 당신이 진정으로 선택하고 결정한 것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