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 도망친 철없는 신혼부부 시즌2_폴란드 바르샤바
폴란드에 취업한 남편을 따라 바르샤바에 온 지 한 달 하고도 보름이 되었다. 해외로 도망친 21년부터 아일랜드 더블린, 호주 멜버른, 말레이시아 페낭을 지나 지금 여기, 폴란드 바르샤바는 우리 부부에게 벌써 4번째 해외살이 도시이다. 첫 입국부터 초기정착까지 모두 함께 했던 이전 도시들과는 달리, 나보다 3개월 먼저 바르샤바에 와서 자리를 잡아놓은 남편 덕에 이번에 나는 정말 그냥 몸만 들어올 수 있었다.
이전까지는 어학연수든 워킹홀리데이이든 둘 다 같은 비자를 받아 현지에서 각자 일하며 공부하고 지냈다. 그리고 그 2년의 기록을 모아 나의 애정하는 첫 책 [해외로 도망친 철없는 신혼부부]도 출간할 수 있었다. 책 출간과 거의 동시에 남편의 폴란드 취업과 최소 몇 년의 유럽살이가 확정되었는데,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이건 아일랜드, 호주, 말레이시아를 지난 해외살이 시즌1의 종료와 동시에 유럽 폴란드에서의 해외살이 시즌2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첫 바르샤바의 한 달 반은 바르샤바 우리 집의 동네 적응과 주말마다 떠나는 유럽 여행으로 빠르게 지나갔다. 해외 아르바이트생 신분을 벗어나 이제는 번듯한 유럽 직장인이 된 남편은 평일엔 나인투식스 근무를 하고, 주말에는 나를 데리고 바르샤바 나들이를 가거나 타도시 여행을 간다. 한편 나는 폴란드 취업 비자를 받은 남편 덕에 플러스 원으로 배우자 비자를 받아 이곳에 머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평일에는 집이나 동네 카페를 슬슬 다니며 할 일을 하고, 주말에는 신나게 여행을 즐긴다.
젊은 날 유럽에 몇 년 동안 살 수 있는 기회를 준 남편에게 무한히 감사하면서도, 늘 미안함과 어떤 죄책감이 있다. 남편보다 덜 일하고 덜 벌고 있다는 그런 마음. 물론 돈을 버는 행위는 한다. 연재와 출간 등의 감사한 기회로 그래도 '작가'라는 든든한 타이틀을 얻어 글을 쓰고 있는데, 꽤 오래 해왔던 유료 연재를 하며 정기적인 수입을 얻고 있다. 문제는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버는 그 액수가 직장인인 남편에 비해 훨씬 적다는 것.
사실 나름의 핑계를 댈 수 있을 만한 환경이긴 하다. 폴란드에서 배우자 비자로는 현지 취업이 불가능하다는 것. 만약 가능하더라도 어렵기로 소문난 폴란드어를 할 줄 알아야 카페든 어디든 이력서라도 내 볼 수 있다는 것. 만약 취업이 가능하고 폴란드어를 할 줄 알았어도 시급이 무척 낮은 탓에 차라리 한국과 연계된 프리랜서 일을 더 늘리는 것이 낫다는 것.
무엇보다 내가 이런 미안함을 내비칠 때면 남편은 늘 이렇게 말한다.
"대체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한국이나 다른 곳에서 할 수 있었던 그 수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나를 따라와 준 건데, 그런 말이 어딨어. 오히려 같이 와줘서 내가 너무 고맙지."
나는 사실 남편이 말하는 저런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은 없다. 나에게 이런 황홀한 기회를 준 것은 남편인데, 같이 와줘서 고맙다니. 난 언젠가 영어권이 아닌 유럽 어딘가에서 꼭 살아보고 싶었다. 폴란드행이 확정되기 전에 하려고 했던 것이 오스트리아 혹은 체코 워킹홀리데이였으니까. 물론 체코어도 할 줄 모르기에 갔더라도 겨우 청소 비슷한 일을 구하거나 아님 모았던 돈을 쓰며 살았을 것이다. 그래서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비영어권 유럽 도시에서 살아보기'를 현실로 만들어준 남편에게 그저 고마운 마음뿐이다.
영어가 주언어가 아닌 곳에서 워크 퍼밋도 없이 일정 이상 돈을 버는 것은 쉽지 않다. 요즘은 다들 어디 소속되지 않고 노트북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돈을 번다고 하지만, 과연 나도 그중의 하나가 될 수 있을까. 오로지 내 노력과 의지에 달렸다. 영어만 할 수 있어도 마땅히 먹고살 수 있었던 이전 도시들과는 다르기에 난 앞으로 내 나름대로 여기서 살아갈 방도를 구할 것이다. 기간은 2년, 최소한 남편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게끔은 해야 한다는 어떤 목표를 세웠다.
그래서 이제 브런치에 연재를 시작할 [해외로 도망친 철없는 신혼부부 시즌2_유럽 편]은 처음의 세 도시에서의 삶과는 조금 다른 결의 글이 모일 것 같다. 여전히 무작정 해외에서 살고 있는, 만 나이로도 이제는 진짜 30대 부부가 된 우리의 고민, 비영어권 도시에서 사는 즐거움과 힘듦에 대해, 절대 질리지 않을 유럽 여행에 관한 것 또한. 그리고 아마 가장 많이 쓰게 될 것은 나의 이야기일 것이다. 유럽 직장인이 된 남편을 무작정 따라와, 생경한 비영어권 도시에서 1인분의 몫을 해내기까지 고군분투하는 나의 성장, 아마도 성장하게 될, 부디 성장했으면 하는 그런 스토리.
늘 계획보다 일찍 도시를 옮겼던 우리이기에 앞으로 몇 년을 더 유럽에, 여기 폴란드에 살게 될지는 우리조차 가늠할 수 없지만 지금 느낌으로 보자면 꽤 오래 머물 것 같다. 아니, 그러고 싶다. 고작 두 달 조금 안 되게 머물렀을 뿐인데도, 바르샤바는 살았던 도시들 중 가장 우리와 잘 맞다고 느껴지기 때문에. 이렇게 또 둘이서 유럽에서 얼마간 살 기회가 주어졌다. 그동안 우리는 폴란드를 아주 열심히 사랑하고, 유럽을 아주 열심히 여행하며 서로를 보듬어주면서 또 다른 책 한 권의 분량은 거뜬히 넘길만한 추억을 만들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