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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롬 Nov 19. 2023

유럽 비영어권 도시의 완벽한 이방인

해외로 도망친 철없는 신혼부부 시즌2_유럽 편

현재 우리는 폴란드, 바르샤바에 있다. 그리고 폴란드는 비영어권 국가이다. 여느 나라처럼 특히 도심에는, 영어 잘하는 젊은 분들이 꽤 많아 여행하기에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우리처럼 몇 년 간, 그것도 시티가 아닌 약간 외곽에서 살아야 할 때는 영어만 해서는 부족하다는 것을, 온 지 두 달이 조금 안 된 지금, 나는 온몸으로 느끼는 중이다. 무작정 해외로 도망친 21년 이후 비영어권 국가는 처음이라 입국 전에도 고민이 꽤 많았었고, 지금도 그렇다.



폴란드어는 어렵기로 소문난 언어이다. 한국에서는 특수언어로 분류될 정도로 그 수요도 적어 들을 만한 강의도 거의 없다. 폴란드행이 확정되고 나는 한국에서 폴어 공부를 시작했다. 물론, 바르샤바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폴란드어를 해야 한다는 간절함이 없어서 하는 둥 마는 둥 했지만 말이다. 공부에 성실하지 않았던 과거의 나로 인해, 바르샤바 쇼팽 공항에 도착했을 때 내가 아는 폴어는 Dzien dobry(안녕하세요)와 Dziękuję(감사합니다) 뿐이었다.



입국 심사에서 봤던 출입국 심사관 폴란드 언니. 나보다 어리신 것 같긴 했지만 예쁘면 일단 언니라고 하자. 폴어를 못하지만 인사정도는 하고 싶어서 웃으며 Dzien dobry라고 했다. 그랬더니 눈부신 미모의 심사관님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나보고 폴란드어를 할 줄 아냐고 물으셨고 난 바로 못한다고 했다. 그리고 짧고 간단한 입국심사는 영어로 진행되었다.


아쉽다. 참 아쉬웠다. 내가 폴란드어를 할 줄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폴란드 국립미술관





일단, 여기는 영어 사용률이 한국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여행객이 영어로 무언가를 물어보면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은 익숙하게 대답하거나 짧게라도 소통이 되고, 조금 나이가 있으신 분들은 거의 영어를 안 하신다. 이렇듯 폴란드처럼 한국과 비슷하게 실제 영어 사용률이 높지 않은 나라에서는 현지어를 모른다면 아쉬운 점이 꽤  많이 생긴다.



바르샤바에서 자주 가는 곳 중 하나인 카페와 레스토랑, 편의점. 그곳의 직원들은 대부분 영어를 잘하는 젊은 분들이라 그나마 괜찮지만, 편의점이나 마트, 아파트 관리인 분처럼 어느 정도 나이가 있으신 분들은, 내가 영어를 쓰더라도 폴란드어로 답하신다. 딱 봐도 폴어를 못할 것 같은 외국인인 나를 보고 1차적으로 곤란해하는 얼굴에 괜히 죄송스럽다. 내가 자신 있게 폴란드어를 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아는 것이라고는 온갖 버전의 안녕하세요와 감사합니다 뿐. 커피 주문하는 것조차 발음이 어려워서 아직 시도해보지 못했다. 애매한 폴란드어로 주문하면 더 곤란해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바르샤바 우리집 근처 카페 NERO



한 번은 아파트 정기점검 때문에 관리인이 오셨다. 벨이 눌리고 문을 열고 나를 보자마자 그분은 주춤하시더니 '얘 폴란드어 할 줄 아나?' 하는 표정으로 "Dzien dobry..?"라고 하셨다. 그 순간 내가 Dzien dobry라고 받았다간 폴어를 할 줄 안다고 오해하실 것 같아 영어로 답했는데, 그것 또한 참 아쉬웠다.


한 번은 어떤 아저씨가 나가는 문을 잡아주셔서 Dziękuję bardzo(정말 감사합니다)라고 했는데, 호쾌한 표정으로 어떤 답을 하셨다. 우슈! 비슷한 발음의 어떤 단어. 문맥의 흐름 상 분명 천만에요 같은 뜻일 텐데 후에 찾아본 천만에요의 폴란드어는 단어가 꽤 길어서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그래도 인사말 정도는 최대한 쓰려고 노력 중이다. Dzien dobry와 Dziękuję, Do zobaczenia, Tak, Nie... 우리도 왜 한국에서 외국인이 어설프게나마 안녕하세요나 감사합니다를 말씀하시면 괜히 기분이 좋지 않나. 나보다 폴란드어를 더 자주 헷갈리는 남편은 피자 주문을 하고 난 뒤 받을 때 갑자기 Dzien dobry(안녕하세요)를 써서 당황하기도 했지만, 모두가 귀엽게 봐주신다.






이전에 있었던 아일랜드, 호주, 말레이시아는 모두 영어권이었어서 소통에 어려움은 없었다. 카페 옆 테이블의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들렸고, 일을 할 때도 영어를 쓰며 현지인과 대화를 했기에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녹아든다는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폴란드는 아니다. 내가 영어로 무언가를 물어보지 않는 한 영어는 들리지 않고, 빠르게 지나가는 폴란드어는 도저히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그야말로 완벽한 이방인이다.


나야, 사실 어느 곳에 뚝 떨어진 외계인 같은 기분으로 사는 것을 좋아하기에 이렇게 바르샤바의 완벽한 이방인이 되는 것은 나쁘지 않다. 그래도 꼭 폴란드어를 배우고 싶은 것은, 친절한 폴란드 사람들 때문이다. 두 달 즈음이 되었는데도 나쁜 기억 하나 없는 이 폴란드에서, 이방인에게 특히 친절한 폴란드 사람들과 당당히 그들의 언어로 대화를 하고 싶다. 폴란드어를 익혀 폴란드를 잔뜩 사랑하고 싶다.





지금은 폴란드 바르샤바의 완벽한 이방인인 우리. 잠깐씩 있었던 앞의 나라들과는 달리 최소 몇 년은 살 예정이기도 하고, 고작 두 달 있었는데도 평생 연이 닿고 싶은 곳이라는 느낌이 드는 폴란드. 하필 특수언어로 분류될 정도로 배우기가 쉽지 않은 언어의 나라이지만, 뭐 어쩌겠나. 이렇게 멋진 나라이니 머리 터지도록 공부하는 수밖에. 2025년 즈음에는 폴란드에서 아무 연극을 보러 가도 다 알아듣는 수준이 되어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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