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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롬 Dec 17. 2023

계산 없는 사랑

난 소설을 읽지 않는다. 몰입을 하려다가도 어쨌든 지어낸 이야기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이다. 그래서 평생 읽은 것이라고는 중학생 때 분위기에 휩쓸려 읽었던 인터넷 소설 정도가 있겠다. 해리포터도 활자로는 본 적이 없다. 친한 친구의 친구분이 꽤 유명한 소설가 셔서 책을 선물로 받았었는데, 비밀이지만 그것도 아직 읽지 않았다. 읽은 척만 했을 뿐. 그렇게 얼마 전에도 좋아하는 에세이와 자기 계발서를 찾으러 밀리의 서재를 구경하던 중 본 어떤 책의 후기가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게 했다.



'백 마디 사랑한다 말하는 보여주기식 화려한 사랑들이 촌스럽게 느껴졌다.'



구의 증명. 소설에 전혀 관심 없는 나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제목이다. 얼마나 인기가 많으면 유튜브에 '구의 증명 플레이리스트'가 그렇게나 많을까. 궁금해 몇 번 틀어봤더니 센치함이 필요할 때 특히 좋더라. 그래서 몇 번 듣기는 했었다. 물론 책 없이. 그런데 그 후기를 보고는 어쩐지 읽고 싶어졌다. 회색빛의 이야기인 듯한데 못내 종이책으로 읽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해외에 있는데 전자책으로라도 볼 수 있는 것이 어디랴. 남편도 출장 갔겠다, 냉장고에 시원한 폴란드 맥주도 있겠다, 혼자만의 시간에 읽는 첫 소설. 다소 들뜬상태로 자리를 잡고, 읽기 시작했다.



5페이지 정도를 읽자마자 눈물이 질끈 나왔다. 슬픔 같은 것이 일렁일렁하다 목까지 꽉 막혔다. 딱히 그 상황에 공감하지도, 구나 담에 누군가를 투영하지도 않았는데 그냥. 뜻 모를 울컥함이 올라왔다. 아, 이게 베스트셀러 소설의 위력인가. 아님, 소설은 원래 다 이런가. 뭐 다른 걸 읽어본 적이 없으니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계속 읽다 보니 확 올라왔던 울컥함은 잠잠해졌다. 누가 여자고 누가 남자지? 동성인가. 빈 동그라미와 채운 동그라미는 무슨 뜻이지. 뒤로 가서야만 하나씩 정체를 드러내는 디테일이 흥미로워 도저히 멈춰지지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저절로 그 장면이 떠오를 만큼 담이 구를, 구가 담을 낱낱이 묘사하고 그에 대한 감정을 하릴 숨김없이 내비치는 장면들을 떠올리며 문득 깨달았다. 과연 시람이 사람을 어떤 감정으로 봐야 저렇게 될까. 애정과 동경과 그리움과 시기와 안쓰러움 등이 잔뜩 뒤섞여 단순히 사랑이라고만 정의할 수는 없을 것 같은 그런 사이. 그에 대한 물음으로 첫 페이지부터 나는 내내 먹먹해있었다는 것을.



어쨌든 죽음이라는 것이 이 소설 전반에 깔려 있기에 너무 생생하게 장면이 그려질 때는 무서워졌다. 그럴 때면 루마니아 출장 중이던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구의 증명이라는 소설을 읽는데 눈물이 나. 나도 참 약해졌나 봐. 내가 너를 너무 좋아하게 됐나 봐. 남편은 답했다. 아이구 왜 울어. 근데 나도 그래. 언제나 너 생각하면 마음이 물컹거리는 걸.





2023.12. 헝가리 부다페스트



내가 '구'라면 남편은 나의 '담'이다. 죽음과 지독하게 얽힌 회색빛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가지는 그 모든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상대가 남편이라는 말이다. 10년에 가까운 시간을 매일 같이 붙어있었다. 친구들은 해외에 살고 있는 내 안부를 물으면서 당연히 남편의 안부도 묻는다. 이제는 옆에 서로가 없으면 이상할 정도. 우리는 대부분이 즐겁고, 이따금씩 문제가 찾아오면 손을 맞잡고 해결하는 보통의 부부라 구의 증명에 딱히 공감할 부분이 많지는 않았지만, 사랑하는 이가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보는 눈. 서로를 대하는 그 수많은 감정. 상대가 명을 다해도 절대 그냥은 보낼 수 없을 것 같다는 그 마음. 네가 죽을 바에야 차라리 내가 죽는 것이 훨씬 더 낫겠다는 상상. 나에게도 나의 담이가 있고, 나를 자신의 구로 여기는 남자도 있다. 피로 이어진 천륜도 아니고, 서로 이득이 되는 공생관계도 아닌데 그냥 서로를 애정하고 아끼고 그리워하고 안쓰러워하는 관계. 아무것도 몰랐던 20대 초반에 어쩌다 만나서는 그저 계산 없는 사랑을 주고받고 주고받고 또 주고받게 된 그런 사이.



저마다의 인생엔 터닝포인트가 있다. 바락바락 나만 생각하며 욕심만 그득했던 나의 터닝포인트는 남편이었다. 그리 예쁘지도, 돈이 많지도, 능력이 좋지도, 그렇다고 착하지도 않은 나를 왜 이렇게 좋아해. 그의 헌신적인 사랑이 이해되지 않을 때도 많았다. 내가 면도기에 손가락 조금 벴다고 왜 그렇게 세상 무너지는 표정을 하고, 본인 출근 준비하느라 정신없는 중에도 왜 나 굶지 말라며 밥을 안치는지. 살이 좀 붙었다 싶을 때 거울을 보며 '난 이제 뚱뚱한 아줌마인가'라고 중얼거리니 재빨리 '섹시하고 귀여운 아가씨지'라고 답하고 왜 내 이마에 그렇게 뭉근하게 뽀뽀를 하는지.


대체 어떻게 3박 4일 내내 온종일 걸었던 헝가리 여행을 끝내고 폴란드로 돌아온 날, 오자마자 맛있는 저녁을 해주겠다며 피곤해하는 나 없이 혼자 장을 보고 또 바로 와서 요리를 하는지. 그래서 따끈한 된장찌개와 밥과 고기를 잔뜩 먹이고 “여행하느라 고생많았어. 이제 이거 먹고 푹 쉬자.” 라는 말을 할 수 있는지.



60억 지구에서  만난 건 7 럭키야!

라떼의 초등학생 시절 유행이었던 숫자송처럼 럭키다. 아니, 그냥 단순한 럭키 정도가 아니라 나를 통째로 뒤집어엎은 일생일대의 천운이다. 내 인생의 로또 그 자체다. 그 어떤 대단한 일도, 세계 각지의 산해진미도 결국 얘가 없으면 다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을 하게 되는 그런. 과거의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마음들.



나는 이제 여차하면 젊.꼰(젊은 꼰대)가 되기 딱 좋은 30대이니 20대 어린 친구들에게 절대 어떤 오지랖 따위 부리고 싶지 않다. 나보단 그들이 훨씬 똑똑하고 현명할 테니. 그럼에도 말하고 싶어 근질근질한 딱 한 가지가 있다. 나에게 이득이 되지 않으니, 가성비가 좋지 않으니 '연애'를 안 한다는 요즘 친구들의 귀에다 바짝 대고 소곤소곤 말하고 싶은 그것.



돈이 없어 김밥천국에서 데이트를 하든, 시간이 없어 쉬는 시간에만 짧게 만나든 뭐 어떤 형식으로 서로를 대하든 간에. 내가 아닌 누군가를 계산 없이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 그것 만큼은 부디 절대 놓치지 않았으면.



사랑과 연애 따위에 매달리는 것은 요즘 트렌드가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흐리고 눈 오는 겨울의 한복판에서도 따뜻한 햇볕을 가득 쬐고 있다 느끼는 그런 충만함을 포기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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