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강연이 준 위로와 용기

할 수 있다. 소설! 낼 수 있다.

by 다롬

지난 토요일, 생애 첫 강연을 했다.



첫 책인 <해외로 도망친 철없는 신혼부부>로 북토크를 몇 번 하기도 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북'토크이고, 진짜 강연 다운 강연은 이번이 처음이었으니 나는 몹시 긴장했다. 코엑스와 벡스코, 강연은 총 2번이고, 일단 첫 번째 강연을 끝냈다. 코엑스에 마지막 방문을 한 게 몇 년 전인데, 그게 언제인지도, 동행인이 누구인지도 기억이 안 날만큼 코엑스 같은 곳과는 별 인연이 없는 인생이었다. 그런데 코엑스에서 열린 '유학이민박람회'에 연사로! 내 강연을 하러! 가게 되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박람회에서 강연이라니?



어떤 느낌일지 감이 잡히질 않았고, 또 내 앞앞 타임에 좋아하는 작가님께서 강연을 하셨기에 조금 일찍 도착해서 분위기를 살폈다.



KakaoTalk_20260331_210727439.jpg 박람회 프리패스 입장권..! 뿌듯쓰



박람회 자체는 시끌시끌했으나, 다행히 강연 부스는 구석에 위치해 있어 크게 복잡하지는 않은 느낌이었다. 다른 연사님들의 멋진 강연을 멀찍이서 바라보며 잠깐 착잡함이 일었으나, '나는 나다. 나는 나만의 장기가 있다!' 하며 애써 긴장감을 눌러 내렸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하필, 내 앞 타임 연사님께서는 무려 대학 교수님이셨다! 아니, 내가 왜 교수님 뒤에...? 착잡했다. 안정이 되려던 찰나 또다시 위축된 마음이 온몸을 비집고 들어왔다. 하지만 역시, '교수님은 교수님이고, 나는 나다!' 분명 나만이 전할 수 있는 경험과 노하우가 있으니, 또 나는 그걸 아주 열심히 준비해 왔으니 괜찮다. 할 수 있어. 긴장하지 마! 넌 할 수 있다. 마음을 다잡았다.



마지막 타임이고, 박람회도 끝날 시간이라 청중이 많아야 다섯 분 정도 되실까 했는데 아니었다. (내 기준) 엄청 많으셨다. 그런데 의외로 앞에 서니 긴장은 되지 않았다. 긴장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준비한 내용 다 말할 수 있을까? 50분은 아무래도 너무 짧은데.



주어진 시간이 50분이면 50분에 맞추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아 도저히 줄여지지 않았다. 줄이고, 줄이고 또 줄여서 이제는 더 이상 '이 내용은 눈물을 머금고 빼도 되겠어!' 하는 부분이 단 1도 없어졌기에 드디어 '이게진짜최최최최최종'이라고 PPT도 마무리했는데. 그럼에도 그게 50분에서 최소 5분, 8분 정도는 넘겼더랬다.



나는 정말, 해외로 가실 분들께 내가 아는 모든 것을, 경험을! 최대한 많이 나눠드리고 싶었다. 그분들의 해외 생활에 한 자락의 도움이라도 될 수 있게. 그래서 내용을 더 빼는 대신 말을 엄청 빨리 하기로 결심했는데, 몸과 입은 힘들었으나 나름대로 만족했다. 그럼에도 결국 시간을 훌쩍 넘겨버렸다. 내 뒤에 다른 연사님의 강연이 없었다는 점이 몹시 다행이었다.



사실 그럴 줄 알고, 강연 시작 전에 직원분께 미리 허락도 맡았다. 저 죄송한데, 혹시 시간 5분? 10분? 정도 초과해도 되나요? 그러자 직원분께서 호쾌하게 '네, 괜찮습니다.'라는 대답을 주셔서 말을 조금 더 했다.



[영알못 내향인의 아일랜드&호주 살아남기]라는 다소 요상한 주제로 진행된 나의 이야기, 50분이었던 기존 타임을 훌쩍 뛰어넘어버린 그것의 메시지는 간단했다.



나는 천재다.

나는 능히 할 수 있다.

두렵지 않고 겁먹지 않는다.

영알못 내향인도 태도를 굳게 먹으면,

다 할 수 있다. 영어권 살아남기 쌉(?)가능!



나는 곧 해외로 나가실 용감한 분들께 위로와 용기를 전하고 싶었다. 겁먹지 마시라고. 다 할 수 있다고. 해외에서는 뭐든 다 해보시고, 어깨를 당당하게 피시라고. 우린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그런데 강연을 준비하는 동안, 그리고 실제로 박람회장에서 '할 수 있어요. 해봅시다, 우리.'라는 말을 하는 순간 그 메시지를 뭉근하게 곱씹은 건 외려 나였다.



할 수 있어.

다 할 수 있다.

그럼, 다 할 수 있지.

나는 뭐든 다 할 수 있어.



2024년 8월부터 시작된 <글로 먹고살기로 결심 2년 프로젝트> 기간이 반년 정도 남은 현재. 나는 요즘 또다시 마음에 그늘이 드리우는 중이었다. 사실 그간 표면적인 성과는 사실 제법 나온 편이었다. 공식적인 공모전 최종심 선정 1건, 얼마 전 비공식적으로 입수한 또 다른 최종심 선정 소식 1건, 에세이 기획출판 계약 1건, 웹소설 대형출 컨택 계약 및 출간과 얼마 전 받은 첫 정산금으로 인해 진실로 '돈을 버는 작가' 길 위에 오른 뿌듯한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만족할 만한 작품을 꽤 많이 모았다는 것 등등.



하지만 요즘 들어 체력이 많이 빠지고, 글 쓰는 속도도 예전 같지 않아 졌다. 짐작건대, 그건 아마 24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해 벌써 수십 번은 더 도전한 문학 공모전에서 어떤 유의미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는 뼈아픈 사실 때문이겠다. 공모전은 '최종심'이라는 뜻깊은 성과를 안겨주긴 했으나, 최종심은 최종심으로만 그쳤다.



에세이, 소설, 드라마, 영화, 숏폼 등등 독학으로 공부해 많은 종류의 글에 도전하고 있으나 그중에서도 나의 노력과 시간이 가장 크게 들어가는 곳은 역시 '소설'인데, 내 노트북에 잠들어 있는 많은 단편들, 중편들, 장편들은 아직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여태는 그게 당연하다 여겼다. 내가 뭐 글을 엄청 오래 쓴 것도 아니고, 제대로 배운 것도 아닌데. 공모전에 덥석 당선되어 상금도 받고 당당히 세상으로 꺼내 보인다는 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 여겼다. 당연히.



하지만 최근에는 뭔가 이것저것 일도 많아지고, 나를 돌볼 시간도 없어지고, 그래서 체력도 빠져서 심신이 약해졌는지 종종 이런 생각이 들었다.



소설을 낼 수 있을까? 결국은 내지 못하고,

내 원고들, 계속 노트북에만 있는 거 아니야?



끝내 안 되지 않을까. 나는 계속 이렇게 나 혼자 방구석에서 소설을 쓰고 공모전에 제출만 실컷 하다가 끝날까. 사고의 흐름이 이런 부정적인 방향으로 문득문득 틀어지곤 했었다. 그런데 강연을 준비하면서 그 마음이 조금씩 풀렸고, 지난주 토요일에는 초롱초롱 반짝반짝한 눈빛을 보내주시는 청중분들과 실컷 아이컨택을 하며 완전히 풀렸다.



그래. 여러분들도 다 하실 수 있고,

저도 할 수 있습니다. 해봅시다, 우리.



소심하고 영어도 잘 못했던 내가 결국 아일랜드와 호주에서 영어를 쓰며 현지인 분들을 상대로 일을 하고 주급을 받으며 잘 살았다! 그런데 내가 뭘 못하겠어. 나는 다 할 수 있지. 암, 그렇고 말고. 지금은 희망이 아예 안 보여도, 언젠가는 소설을 낼 수 있을 거야. 아니면 드라마나 영화나 숏폼, 대본들이라도 세상에 당당히 빛을 볼 수 있을 거다. 왜냐하면, 나는 다 할 수 있으니까. 내 글도 초반에는 진짜 아니었지만 지금은 제법 많이 늘었으니까!



5월에 출간할 에세이도 이 글을 쓰는 과정을 담은 글쓰기 분야 책이기 때문에, 그전에 뭐 하나는 당선되면 좋겠다. 나를 믿어주신 출판사를 위해, 그리고 나의 두 번째 에세이를 위해, 나를 위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할 수 있다. 나는 천재다. 능히 할 수 있다.



자신감.jpg 실제로 강연 PPT에 쓴 사진(ㅎ)



그래서 결국, 준비는 힘들었지만 재밌었던 강연이 내게 아주 큰 힘과 위로를 줬다는 이야기.






덧, 강연이 끝나고 따로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그중 어떤 여성분과의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수줍게 다가오신 그분은 이렇게 말문을 트셨다.



"저기, 아, 근데 해외 이거 강연 관련 질문은 아닌데요..."



나는 활짝 미소 지으며 그분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어쩐지 이 순간 직감했던 것 같다. 그분이 무슨 질문을 하실지. 꿀-꺽, 침을 삼켰다.



"네! 괜찮습니다. 뭐든 물으셔도 됩니다."

"그 혹시, 쓰시는 웹소설..."



앗. 예상이 적중했다. 이걸 어떻게 예상을 했냐면, 강연에 앞서 짧은 자기소개를 할 때 맨 밑에 '기타 특이점' 항목에 '19금 웹소설 작가'를 넣었기 때문에.



"앗. 웹소설 제목, 이요?!"

"네. 제가 웹소설 많이 봐서."

"앗. 웹소설 헤비 독자시군요..!"



나는 연신 '앗'거리며 안절부절못했다. 뭐든 다 알려드리고 싶은데..! 하필, 하필!



"앗, 그런데 어쩌죠. 안 돼..! 제목! 제목,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흑흑!"



이게 막 피폐, 하드 막 이래 가지고. 보시는 아늑한 로판, 현로 이런 친구들과는 많이 다릅니다! 만약 알게 되신다면 저를 미친 사람(?)으로 보실 거예요. 저희 엄마도 모르세요. 오직 남편만 알고 있습니다. 죄송해요, 흑흑. 어이고.



나는 구질구질하게 변명을 늘어놓으며 정중히 대답을 피했다. 감사하게도 그분은 더 묻지 않으셨다. 알려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언젠가는, 정말 언젠가 오픈할 수 있게 된다면(그런데 사실 영원히 안 될 것 같긴 합니다만..!) 좋겠는데요. 확실히 지금은 자신이 없습니다, haha!



어쨌든, 이런저런 일로 첫 강연이 참 재밌었다는 이야기.






다음 주 벡스코에서도 강연합니다!

(4/5, 15시-15시 50분)




혹시 강연 자세한 후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제 블로그 기록을 구경해 주세요 :)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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