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다가 싸-한 직감이 들 때

세상이 주는 계시

by 다롬

얼마 전, 소설 공모전에 원고를 제출하고자 우체국에 방문했다. 무거운 원고 뭉치를 품에 안고 1km에 가까운 거리를 걸어 가장 가까운 우체국에 도착해서는 바로 상자를 구입해 원고 뭉치를 넣고 포장했다(원고 편수가 많아서 상자가 필요했다.).


"등기로 부탁드립니다."


우체국은 한가했고, 박스를 포장하자마자 접수를 할 수 있었다. 마침 '등기'로 가능한 최대 무게에 간신히 걸쳐서 안전하게 등기로 보낼 수 있었다. 공모전에 우편으로 접수하는 경우, 보통은 등기로 보낸다. 그렇게 보내라고 응모 요강에 기재되어 있기도 하거니와, 이게 그냥 물품이 아니라 나름 '원고 작품'이기 때문에 나 스스로도 수령인이 직접 수령했다는 확인 메시지가 오지 않으면 약간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며 여태 나는 신춘문예 포함 벌써 몇 차례나 이 '등기'를 이용하고, 우체국의 '배송 완료' 메시지를 받았다. 고로, 등기에 대해서는 잘 안다는 말이다.


"등기, 받으시는 분이 서명하시는 것 맞죠? 그럼 저한테 연락도 오죠?"


하지만 어쩐지 나는 직원분께 몇 번이나 확인했다. 난 원래 어디에서도 이렇게 질척(?) 거리지 않는다. 딱 깔끔하게! 일 끝냈으면 '넵!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하고 바로 튀어나온다. 하지만 그날은 아니었다. 정말 이상하게, 어딘가 싸-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네. 맞아요-"


직원분은 얇게 접은 눈으로 주소를 입력하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답은 들었으나 여전히 나를 휘감은 싸한 감각은 거두어질 줄을 몰랐다. 하지만 어쩌겠나. 맞다고 하시는데, 더 물어보기도 뭣해 나는 결제까지 마친 후 인사를 꾸벅하고 우체국을 나왔다. 그리고 문을 나서자마자 어떤 깨달음이 번뜩 스쳤다.


"어? 내 번호 안 물어보셨는데."


번호가 들어가지 않았는데 어떻게 나에게 연락이 오겠나? 나는 헐레벌떡 다시 들어가 직원분께 말씀드렸다.


"아아. 번호. 네네. 번호 불러주세요. 넣어드릴게요-"


핸드크림을 바르시던 직원분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 앉으셨다. 흐음. 역시 싸-했다. 번호를 불러드렸고, 직원분은 독수리 타자법으로 입력을 하시더니 '네-이따 넣어드릴게요-'라고 하셨다. 왜 지금 넣어주시지 않는 거지? 비뚜름한 의문이 샘솟았으나 뭐 넣어주시겠다니까. 설마 안 넣어지겠어. 애써 묘한 기분을 달래며 돌아섰다.

다음 날, 출판사 미팅 건으로 인해 지하철을 오래 타야 했다. 1시간가량 지하철에 앉아서 나는 계속 카톡을 확인했다.


보통 평일에 등기를 보내면, 다음 날 오전 즈음에는 '배달 완료' 메시지가 온다. 그런데 그때는 이미 오후 1시가 넘어간 시각. 감감무소식이었다. 역시 이상해. 나는 바로 우체국에 전화를 걸었다. 상황을 설명하고, 확인을 부탁드렸다. 그러자 늦지 않게 직원분의 대답이 들어왔다.


"아. 저기,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가 번호를 안 넣은 것 같아요."


아아.

역시, 내 직감이 맞았어.


후, 상대편에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한숨을 꺼트리고, 확인을 부탁드렸다. 직원분께서 결국 대여섯 개나 되는 등기를 일일이 확인해 주셨다. 이렇듯 살다 보면 싸-한 직감이 들 때가 있다. 그것은 대부분 들어맞는다. 어쩌면 인간의 생존 초능력의 일종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이는 비단 단순한 일상생활에서 그치지 않는다.


글을 쓸 때도 그렇다. 싸-한 직감이 고개를 들 때가 있다.





'뭐지, 이 문장은?'


분명 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문장 혹은 장면이 불현듯 스칠 때가 있다. 결코 아는 장면도 아니요, 들어본 문장도 아니다. 그냥 모르는 활자와 이미지의 모음이다. 그러면 나는 잠깐 입으로 곱씹고 중얼거리다 이내 흘려보내려 한다. 왜냐하면 보통 그럴 때는, 노트북 앞에서 원고와 한창 씨름할 때가 아닌 길을 걸을 때, 밥 먹을 때, 양치할 때, 남편과 산책할 때, 잠들기 직전 등등이기 때문이다. 참 얄궂은 타이밍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싸-하다.


그냥 보내기엔 찝찝하고, 어딘가 불안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별 수 없이 나는 백기를 들고 휴대폰 메모장을 켜 후다닥 메모를 한다. 남편과 산책할 때도 이런 적이 비단 한두 번은 아니어서, 남편도 갑자기 우뚝 멈춰서 "잠깐. 잠깐만? 나 메모 좀 할게."라며 급히 손가락을 허둥거리는 와이프에게 이미 익숙해졌을 것이다.


그리하야 내 휴대폰 기본 '메모장' 앱 혹은 카톡의 '나와의 채팅'은 이런 '갑자기 찾아온 장면 요정이 준 글감'들로 꽉 차있다. 이런 '장면 요정', '소재 요정'님은 정신이 깨어있을 때뿐만 아니라, 잠들었을 때도 찾아와 주신다.


한 달 전쯤인가, 꿈에서 이런 장면이 나왔다.


어떤 여자와 마주 앉아 있다.
장소는 모르고,
그냥 무언가 들고 있다.

이윽고 여자는 말했다.

"얼굴이 안 보여요."

네?
'나'로 추정되는 누군가가 답했다.

그러자 여자는 말을 이었다.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이게 이러면 안 되거든요? 보여야 해요. 얼굴이."


여기서 꿈은 끝났는데, 일어나니 새벽 4시 반인가 그랬다. 얼른 '나와의 카톡' 창에 들어가 메모했다. 안구 건조증이 심해 눈을 거의 실만큼만 아주 가늘게 뜬 채로 양 엄지만 열심히 놀렸다.


'얼굴! 이 안 보여요... 안 되거든요 이러면. 얼굴이 보여야 해요. 얼굴이. 여자, 가면, 미간 찌풀...'


중요한 대사는 풀로, 나머지는 대충 키워드 중심으로. 이렇게 해 놨다가 후에 노트북 '글감 메모'에 싹 깔끔하게 정리를 한다. 그리고 이 장면은 이번에 완성한 영화 시나리오에 들어갔다. 꿈에서 나온 '얼굴'이 뭔지도, 얼굴이 안 보인다는 게 뭔 뜻인지도 꿈의 여자는 알려주지 않았지만 상관없다. 그것의 해석은 내가 할 일이니까. 알아서 해석하여 알아서 집어넣었다.


나는 이런 게 다 계시라고 생각한다.



너! 이걸 써라!


세상이 내게 밀어주는 지시, 명령 혹은 응원 같은 것이랄까. 그래서 나는 약간 귀찮긴 해도 이런 싸-한 감각이 밀려올 때면 하나도 빠짐없이 메모하고, 작품에 포함시킨다. 그러면 정말이지, 멋진 장면이 탄생한다. 아아. 그럴 때마다 몹시 큰 희열의 전율이 흐른다.


이건 계시다. 특히 창작자에게는 더없이 소중하고 귀중한 보물과도 같은 소재들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 싸-함으로 얼마나 많은 문장과 문단과 장면들을 만들어냈는지 모른다. 그러니 만약 무언가 당신의 머리를 때린다면, 그것을 무시하지 말자. 메모하자. 쓰자. 활용하자. 이런 것이야말로 세상이 내게 내려주는 선물이니까.


뭐, 그렇다. 하하!


그래서 저 '얼굴' 에피소드가 들어간 나의 이번 시나리오는 정말 재밌다는 얘기. 끌끌. 남편이 "이야. 이건 진짜 재밌는데? 다희 많이 늘었어. 아주 많이."라는 피드백을 줬으니 아마, 재밌지 않을까? 재밌을... 걸? 그럴걸... 크흡. 공모전에 제출했으니, 재밌으면 될 것이고 이 역시 나의 뻔한 착각이었다면 떨어질 지어니. 모든 것은 운명에 맡긴다. 내가 할 일은 그저 열심히 쓰고 또 쓰는 것.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계속 쓴다. 될 때까지.



+마무리로, 여담이지만 글쓰기는 정말이지 재밌는 작업이 아닐 수 없다. 한계가 없는 세계다. 이게 얼마나 재밌는지 아는가. 나는 이 일을 만나 비로소 완전한 자유를 찾았다. 글쓰기는 나의 세계, 나의 구원. 모두모두 글을 써보십시다! 끼야읏!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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