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울수록, 나는 더 살아있다.

[D-220] 여름은 동사의 계절

by Mooon

D-220. Sentence


'여름은 동사의 계절:

뻗고, 자라고, 흐르고, 번지고, 솟는다.'

- 이재무 시인의 ‘나는 여름이 좋다.'

@small_days (종로 교보문고)



느낌의 시작


‘동사의 계절’이라는 말이 참 좋다.
동사. 움직임을 뜻하는 말, 살아있음을 나타내는 품사.
7월은 온통 장마라더니, 이번 주 내내 비 예보가 떴다더니, 오늘 창밖을 열고 나서니 세상일은 정말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이 맞았다. 장마는커녕, 쏟아질 듯이 뜨겁고 강렬한 햇빛이 온 대지를 덮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몽글몽글 맺히고 옷이 달라붙는, 꼼짝할 수 없을 것 같은 계절. 나는 여름을 그렇게만 기억했다.
그런데 문득 ‘동사의 계절’이라는 말을 떠올리니, 역시 사람은 생각하기 나름이고 행동하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계절이든, 어떤 날씨든, 움직이고 선택하는 것은 결국 내 몫이니까.



마음의 흐름


나는 매일아침 첫째와 전쟁을 치른다. 버둥대며 일어나 학교에 가는 첫째를 내보내고, 둘째를 등원시키고 나면 비로소 내 차례다. 둘째와 인사를 나누고 뒤돌아서면 무릎 보호대를 착용하고, 안경을 벗어 케이스에 넣고, 마스크를 단단히 쓰고, 나이키 러닝앱을 켠다. 그리고 불광천을 향해 걷다 달리기 시작한다.
엄마는 나를 볼 때마다 혀를 차신다. “이 더위에 그걸 왜 하니, 걸어도 휘청대겠다.” 그 말이 틀린 건 아니다. 숨이 차오르고 몸이 후끈 달아오르는 걸 느끼면서도 나는 달린다. 천천히, 하지만 멈추지 않고.
이 계절의 뜨거움이 얼마나 대단한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멈추지 않고 달릴 때마다 내 안에서 무엇인가 터져 나온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엄마는 나를 보며 찡그린다. “물부터 마셔, 씻어!” 하지만 나는 그 찡그림이 오히려 사랑스럽다. 엄마가 대신 뛰어준 것처럼 지쳐보이는 얼굴에, 나는 웃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러닝을 마치고 온몸이 땀으로 범벅된 그 상태가 하루를 버티게 하고, 하루를 달리게 하는 힘이 된다. 숨을 헐떡이며 서 있을 때, 나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더 나아갈 수 있다고, 오늘 하루가 결코 제자리걸음이 아니라고 내 안의 목소리가 화이팅을 외친다.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리고 움직이는 순간, 멈춰있던 시간과 마음이 조금씩 흐르기 시작한다. 나를 조금 더 자라게 하고, 뻗어가게 하고, 앞으로 향하게 만든다.

오늘은 예약해둔 병원 진료가 있어서 뛰지 못했다. 대신 집에 돌아와 아이를 기다리며,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서비스 아이디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문서로 옮겨 적고, 챗GPT에게 묻던 생각을 실제 자료로 만들어보니 ‘아, 이제야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엔 완벽하지 않으면 보여주지 못하겠다고, 혼자 끙끙대며 완성되기만을 기다리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완벽함은 불가능하다는 걸. 세상을 향해 ‘짜잔’ 하고 내미는 건 별로 의미가 없다는 걸. 그냥 있는 그대로, 지금 가진 걸로 부딪히는 게 더 가치 있다는 걸. 그렇게 조금씩 몸부림치는 지금의 내가 더 생생하게 살아있다.

여름은 아이러니한 계절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할 만큼 뜨거운 날씨를 주면서도, 그 더위를 뚫고 움직이는 이에게만 세상에 없는 활력과 생명력을 준다. 그래서 내일은 꼭 다시 달려야지. 오늘 못 달렸으니, 내일 아침엔 다시 온몸으로 내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다.



내 안의 한 줄


“숨막히게 뜨거워도, 움직일수록 살아있다.”


**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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