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구에서 나를 꺼낼 수 있는 건 결국 나 자신이다.

[D-221] 그 하수구에서 나올 수 있는 방법은 '나'밖에 없어요

by Mooon

D-221. Sentence


'굉장히 더럽고, 비참한데

그 하수구에서 나올 수 있는 방법은 '나'밖에 없어요.'


@유퀴즈_서현진편

느낌의 시작


“굉장히 더럽고, 비참한데…

그 하수구에서 나올 수 있는 방법은 ‘나’밖에 없어요.”


서현진 배우가 한 이 말이 오늘따라 유난히 마음을 울렸다. 오늘 하루는 시작부터 유난히 무겁고 잔잔한 불안이 가라앉아 있었다. 지원했던 어린이문화공간조성 전문직의 1차 서류 전형 발표가 있는 날. 아침부터 진흥원 사이트에 접속해 공지사항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며,내심 기대를 품고 한편으로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혹시나 통과하면 연락이 오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은 이미오래전에 버렸다.


몇 년 전 A대학교 정교수 채용에 지원했을 때, 그 치명적인 안일함이 내게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게 했는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날의 나는 당연히 1차 합격자에게는 개별 연락이 오리라 믿었다. 발표일조차 달력에 표시하지 않은 채, 카페에서 수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걸려온 낯선 번호. “면접 들어가셔야 할 시간인데 어디쯤이신가요?” 당황한 나는 얼어붙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제가… 통과한 건가요?” 돌아온 답은 무심하고 차가웠다. “1차 합격자 명단은 홈페이지에 공지되었습니다. 확인해보시죠.” 하필 면접이 잡힌 곳은 용인, 나는 고양시에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엄마 앞에서 주저앉아 눈물을 쏟던 나를, 아직도 기억한다. 분하고, 미안하고, 견딜 수 없이 나 자신이 싫었던 그날.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어떻게 준비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놓쳐야 하는지… 그 이후로 나는 달라졌다. 발표가 나는 날이면 반드시 내 손으로 결과를 확인했다. 기대는 줄이고, 그 대신 확인은 철저하게. 그때의 실패가 내게 남긴 건, 적어도 그거 하나였다.



마음의 흐름


오늘 오후, 핸드폰에 띄워진 1차 결과를 사이트에 공지했다는 문자를 받고 결과를 확인하러 사이트로 들어갔다. “1차 서류 전형 불합격” 다짐했던 것처럼 무너지지 않겠다고 스스로를 단단히 잡았지만, 막상 그 글자를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문자가 도착했다. 이번엔 H대학교였다. “본 대학에서 겸임 또는 초빙교수로 3년 이상 재직한 경우 이번 공고에 지원하실 수 없습니다.”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이제야 알았다. 올해 재임용에서 떨어진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구나. 며칠 전, 오랜만에 용기를 내어 이틀을 꼬박 몰두해 지원서를 준비했던 일이 허탈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중요한 조건이라면 공고에 명확하게 적어두었어야 하지 않나. 괜히 내 시간과 마음만 낭비한 것 같아 씁쓸했다.


연이어 두 통의 문자를 받아든 오늘, 세상이 조금 얄궂게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그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었다. 둘째와 함께 교보문고에 들러 방학 동안 풀 수학문제집을 고르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차려주고, 첫째의 도시락을 준비했다. 세탁기를 돌리고 널어둔 빨래를 걷고, 또 한 바퀴 삶을 굴렸다. 쉴 틈 없이 몸을 움직이며, 내 안의 무너진 마음을 달래고 또 다잡았다. 가만히 있으면 가라앉아 버릴 것 같아, 그렇게라도 버텼다. 몸부림치듯 제자리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하지만 마치 자석처럼 나를 끌어당기는 감정의 무게가 여전히 느껴졌다. 무겁고, 침체되고, 나약한 기분. 이 하수구 같은 감정에서 벗어나려면, 결국 내 힘으로 일어서야 한다는 것을, 이미 나는 알고 있었다.


서현진 배우의 말처럼,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오직 나 자신만이 나를 꺼낼 수 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나는 오늘, 실패에만 사로잡혀 오늘의 시작을 잊고 있었다는 걸. 오늘은 또 다른 의미 있는 날이기도 했다.
‘퍼스널 브랜드’를 주제로 서비스 모델을 만들어보기 위해 대학에서 인문학을 가르치는 언니, 문화예술 분야의 친구와 함께 첫 미팅을 가진 날. 우리는 웃고, 고민하고, 아이디어를 나누며 빛나지는 않지만 분명 어둠 속에서 빠져나올 작은 실마리를 하나 찾았다. 때론 비참하고, 더럽게 느껴지는 과정이 있어야 언젠가 마주할 빛의 가치를 더 깊이 감사할 수 있을 테니까. 오늘의 나는 허우적거렸고, 휘청였지만, 이 감정을 잊지 않기로 했다.


오늘의 이 쓰라림과 허탈함을 마음에 묻어두기로 했다.먼 훗날, 빛나는 순간을 온전히 만끽할 수 있도록. 오늘 같은 날이 있어야, 오늘과는 다른 날도 반드시 찾아오는 법이니까. 그러니 오늘까지만 허우적대자. 그리고 내일부터는, 또 한 번, 스스로를 일으키자.



내 안의 한 줄


“하수구에서 나를 꺼낼 수 있는 건 결국 나 자신이다.”


**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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