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결을 놓치지 않는 사람

[D-222] 대화에서는 말의 양보다 결이 중요하다.

by Mooon

D-222. Sentence

'대화에서는 말의 양보다 결이 중요하다.'

@yoon_seol


대화(對話): 마주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

결(結): 성품의 바탕이나 상태

대화의 결(結) → 마주 대하여 이야기하는 짜임새, 맥락 / 대화하는 사람의 태도나 성질이 드러나는 방향성




느낌의 시작


요즘 유난히 ‘결(結)’에 대해 생각한다. 어떤 행동을 하느냐보다, 그 행동을 대하는 태도와 방향성, 그리고 주변 상황과의 맥락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닫는다. 중학생이 된 아들과의 대화도 가뭄에 콩 나듯 드물어졌고, “네 엄마”라는 짧은 대답 속에서도 눈빛과 태도에서 그의 진짜 마음을 읽게 된다. 두 아들을 위해 매일 빠지지 않는 기도가 있다. ‘세월을 아끼는 자’가 되기를. 눈과 귀가 열려 결과가 아닌 ‘결’을 이해할 줄 아는 어른이 되기를.


아이러니하지만 나는 누구보다 결과 중심적인 사람이다. 졸업을 앞둔 학생들이 줄줄이 휴학을 할 때, 나는 늘말했다. “네가 보낸 시간을 증명할 수 있도록 채워라. 취업이 안 되니까, 졸업이 무서워서 휴학을 하는 게 아니라, 자격증이든 점수든 경험이든, 증명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내라.” 세월을 아끼고, 자신이 보낸 시간의 가치를 키워가는 어른으로 살길 바라는 선생의 마음이었다.



마음의 흐름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그리고 아이들을 키우며 사람을만나며 깨닫는다. 삶의 가치는 눈에 보이는 단편적인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의 ‘결’에 있다는 것을. 대화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마음이 지치고 공허할 때, 사방이 막힌 듯 막막할 때 생각나는 사람은 긴 말보다 결이 고운 사람이다. 짧은 몇 마디를 나눠도 딱딱하게 굳었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그런 사람.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만, 나는 아직 서툴다. 낯을 많이 가리고, 사람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흐르는 결을 만들어가는 것이 어렵다. 그래서인지 낯선 환경에서 얼어붙는 첫째의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어쩌면 내가 가장 뜯어고치고 싶은 부분을 고스란히 닮았기에 더 괴롭다.


말이 많은 사람은 가벼워 보인다. 그리고 그런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은 쉽지 않다. 요즘은 말이 많기보다는, 듣는 데 열려 있는 사람의 결이 더 아름답고 가치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런데 슬프게도, 내 두 아들은 정말 말이 많다. 사춘기가 되면 입을 닫는다고들 하는데, 첫째는 눈빛도 말투도 영락없는 사춘기인데 여전히 말이 많다. 둘째까지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쉬지 않고 떠드는 걸 보면, 자식은 결코 부모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을 절감한다.


오늘도 문득 생각한다. 오늘의 나는 양보다 질이 좋은 하루를 보냈는가. 독박육아인 오늘 하루, 새벽예배로 시작해 첫째의 수학과 영어 숙제를 시키고, 둘째의 방학 스케줄을 정리하고, 덥수룩한 두 아이의 머리를 자르고 점심을 먹이고, 정신없이 움직였지만 과연 질적으로 얼마나 꽉 찬 시간이었을까.


차 안에서 첫째와 나눈 짧은 대화가 떠오른다. TV 프로그램 속 명문고등학교에 갓 입학한 재혼가정 속 남자 고등학생이 말했다. “아버지는 공기 같은 존재”라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아버지 덕분이라고. 얼마나 이해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순간만큼은 대화다운 대화를 시도한 찰나였다고 기억하고 싶다. 욕심내지 말고, 찰나의 결을 노려보자. 순간순간이 쌓여 하루가 되고, 하루가 쌓여 1년이 되고, 그것이 결국 평생이 되니까.



내 안의 한 줄

“찰나의 결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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