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24] 미완성의 세계가 갖는 '과정적 가능성'
D-224. Sentence
미완성의 세계가 갖는 '과정적 가능성'
아산이라는 도시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누군가의 강연을 듣기 위해 왕복 네 시간을 들여 낯선 곳을 찾아가는 것도 내겐 처음이었다. ‘예술가의 지원사업, 건강하게 활용하기 그리고 졸업하기.’ 주제만 봐도 왠지 나는 아닌 것 같고, 다른 세계 사람들의 이야기 같았다.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문화예술’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친하지 않은 이웃 같은 존재였다. 관심이 없진 않지만, 막상 그 안에 서본 적은 없고, 닿아 있을 법하면서도 들여다보면 교집합이 거의 없는 듯한 거리감.
그런데 오늘 강연은, 생각보다 오래 내 마음을 흔들었다. 문화예술기획자 최선영 대표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잊고 있던 것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생계를 위해 지원사업에 몰두하다 보면 결국 잃어버리게 되는 ‘자신만의 예술적 정체성.’ 지원금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결과가 아니라, 무언가를 지속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들기 위한 시작이어야 한다는 말. 고전적인 ‘예술가’라는 정체성에서 벗어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다른 영역과 연결지을 수 있도록 시야를 확장해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 결과 중심이 아닌 과정 속에서 가치를 찾고, 그 과정을 타인과 공유함으로써 ‘과정적 가능성’에 귀 기울이라는 말. 그 과정이 즐거워야 한다는 말에,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왕복 네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사실 나는 요즘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었다. 2~30대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또렷하게 보이고, 무엇을 하면 좋을지, 어디로 가야 할지도 예전보다 잘 알겠는데, 내 현실은 그만큼 더 단단한 벽으로 다가왔다. 두 아들을 돌봐야 하고, 가정을 지켜야 하고, 체력은 예전 같지 않고, 밤을 새워도 거뜬하던 그때와는 달랐다.
완벽주의자였던 나는 늘 준비되지 않으면 남들과 나누지 못했고, 정리되지 않으면 실행조차 두려워했다. 이제는 그 습관을 버리고 뭐라도 해보자, 일단 시도하자고 다짐했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 곧 방학을 앞둔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올해 중학생이 된 첫째는 이번 방학에 처음으로 공부에 집중하겠다고 자습 시간을 2시간으로 할지, 4시간으로 할지를 놓고 실랑이를 벌인다. 서점에 함께 가서 문제집을 고르고 일정을 나누며, 아이의 기대와 내 계획 사이를 조율한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둘째는 처음으로 한 달 넘게 집에서 보내야 하는 방학을 맞는다. 아무리 머리를 짜봐도, 아직은 손이 더 필요한 둘째를 돌보며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할 수 있을지 도무지 계산이 서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읽어야 할 책도, 새롭게 함께하기로 한 사람들도 많은데, 그 모든 것들이 현실이라는 벽 앞에 갇힌 것만 같았다. 내 상황이 나를 앞으로 치고 나가지 못하게 막는 장애물처럼만 느껴졌다. 그래서 더 무거웠다. 그런데 오늘, 강연 속 한 문장이 내 마음을 비집고 들어왔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가지고 놀아라.”
지금까지 나는 내 환경과 내 어려움이 나를 막고 있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생각하기 나름이었다. 장애물처럼만 보이던 것들이, 생각하기에 따라 나를 키워주고 지탱하는 자원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 어차피 피할 수 없다면, 기왕이면 즐기며 버텨보라는 뜻처럼 들렸다. 내가 즐길 때, 그 과정을 즐겁게 만들 때, 그 안에서 나만의 콘텐츠가 자라고 확장된다고 했다. 다른 어떤 거창한 주제나 컨셉이 아니라, 내 일상과 관심사가 콘텐츠가 되어 그것을 언어화하고, 시각화하고, 데이터화하면서 내 영역을 더 또렷이, 더 명확히 넓혀가라는 말. 내 환경도, 내 어려움도, 내가 한계라 생각한 것들도 사실은 나만의 자원이라는 걸 다시 깨달았다. 그렇게 생각을 바꾸면 비로소 재미있게 놀아볼 수 있다는 걸. 내가 나를 기대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기대할까. 어떤 것이든 실제로 해봐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내가 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시도해야 한다. 익숙한 것을 해체하고 낯선 것을 붙잡는 일은 어렵지만, 너무 쉬운 것만 하면 재미없다. 그렇다면 재미있게 놀아보자. 내 현실을, 내 한계를, 내 상황을 가지고 놀아보자. 그 안에서 즐겁고 싶은 나 자신을 상상하며.
내 현실을 놀이터로 삼아 보기로 했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