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계절도, 결국 나를 꽃피운다.

[D-223] 인생의 사계절 중에 '꽃샘추위'

by Mooon


D-223. Sentence

인생의 사계절 중에 '꽃샘추위'

@골라듄다큐

꽃샘추위: 이른 봄, 꽃이 필 무렵의 추위

Spring Cold Snap: a Sudden Short Period of Cold Weather



느낌의 시작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청년이 자신의 지금을 ‘인생의 꽃샘추위’라고 표현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그 시절의 나를 떠올렸다. 40대 중반이 된 지금, 왜 그 시절이 그렇게 춥게만 느껴졌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그때의 나는 뜨거운 열정만으로 반짝이기만 한 사람이 아니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할까 두려워했고, 공허한 마음을 마주하는 게 무서워서, 졸업도 하기 전에 앞만 보고 달리기 바빴다. 조금이라도 빨리 안정을 찾고 싶다는 불안과, 나를 증명해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텼다.


졸업 전시를 준비하던 스물넷의 겨울이 아직도 선명하다. 내 손으로 처음 디자인한 ‘Hang a Book’이라는 철제 테이블을 컴퓨터 화면 속 이미지가 아닌 실제로 만들어야 했다. 학생의 작은 디자인을 맡아줄 제작소를 찾기 위해 종로와 을지로 골목을 몇 날 며칠 헤맸고, 발바닥이 아려올 때쯤 겨우 한 곳을 찾았다. 그곳에 비싼 돈을 주고 제작을 맡겼지만,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왔다. 낙담하면서도 포기하지 못해 밤새 고민했고, 결국 설계를 바꾸어 같은 돈을 들여 다시 만들었다. 그렇게 완성한 테이블과, 친구와 함께 만든 1인가구용 주방 시스템으로 졸업 전시를 마쳤고, 작품을 공모전에 제출해 입선 소식을 받았다. 비로소 누군가에게 인정받은 그 순간, 내 마음은 무너졌다가도 다시 일어섰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 상처와 눈물을 견뎌야 했다.


디자인을 공부하며 내 안에 디자이너로서의 재능은 부족하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 나는 대신 비주얼 머천다이저(VMD)라는 새로운 꿈을 품었다. 그 꿈을 안고 지원했던 E회사에 서류가 통과되었고, ‘자신의 감각을 표현할 수 있는 복장’이라는 면접 미션을 받았을 땐 설레었다. 그리고 면접장에서, 지금 생각하면 왜 면접관들이 웃었는지 이해가 되는 엉뚱한 자기소개를 했던 순간이 아직도 선명하다. “지금 보이는 제가 정말 저로 보이십니까?”라는 어설픈 한마디에 그들의 미소가 번졌고, 결국 나는 불합격했다. 방에 돌아와 하염없이 울었지만, 다시 일어나 졸업 전에 가구회사에 취업했다. 지도교수님 방에서 최종 합격 전화를 받았을 때, “우리 학과에서 첫 취업”이라며 축하해주신 그 미소와 어깨를 두드리던 손길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마음의 흐름


하지만 사회의 문턱은 생각보다 훨씬 차가웠다. 첫 회사 생활 동안, 까다롭고 무서운 팀장님 밑에서 야근에 시달리며 혹독하게 배워야 했다. “대학에서 대체 뭘 배웠냐”는 핀잔에 혼자 여자 화장실에서 30분 동안 울던 기억, 일정에 맞추기 위해 모델하우스에서 밤새 가구를 설치했던 기억, 그리고 그 와중에도 더 잘해보고 싶어 애썼던 마음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시절은 분명 파릇파릇했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정작 매일의 순간은 꽃샘추위처럼 차갑고 거칠기만 했다. 그땐 몰랐다. 그 계절이 그렇게 빨리 지나가 버릴 줄은. 언젠가 영원히 젊을 줄 알았고, 며칠 밤을 새워도 거뜬한 체력을 평생 가질 줄 알았다. 하지만 살아보니, 꽃샘추위는 20대에도, 30대에도, 40대에도 언제든 찾아온다. 마음이 서늘해지는 계절은 불쑥 찾아오지만, 그 끝에는 언제나 봄이 기다린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나는 지금 인생의 어느 계절쯤 서 있을까. 어떤 날은 한없이 뜨겁게 달리다가도 금세 지치고, 어떤 날은 영하의 바람 속을 외투도 없이 걷는 듯 춥고, 또 어떤 날은 선선한 바람과 높고 푸른 하늘을 만끽하며 잠시 행복하다. 지금의 이 계절이 훗날 내게 어떤 의미로 남을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결국 이 모든 날이 내게 가장 좋은 날이었다고 기억되기를 바란다.



내 안의 한 줄


어떤 계절도, 결국 나를 꽃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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