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69] 딱 한발의 뒷걸음
D-269. Sentence
딱 한발의 뒷걸음
느낌의 시작
딱 한 발의 뒷걸음.
늘 고민하게 되는 것은 ‘적정선’이다. ‘적절하게, 알맞게, 보통, 적당히’라는 형용사들이 주는 뉘앙스는 분명하지만, 실제 그 정도는 너무나 주관적이다. 나에게 맞는 적정선은 결국 나만 알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마음의 흐름
너무 마음을 쏟으면 온몸이 뻐근해지고, 조금만 힘을 빼자고 하면 금세 마음이 흩어져버린다. 균형을 맞추는 일, 바로 그 한 발의 뒷걸음을 어디에서 멈출지 아는 일이 늘 숙제다.
내일은 인문학 전공 언니와 예술 전공 친구와 함께하는 엄마브랜딩 플랫폼 첫 미팅이다. 이번 주 월요일, 이번 주 금요일 오전 11시에 그림책박물관 대표님과 미팅이 잡혔다는 말을 듣자마자 마음은 급해졌다. 원래는 9월 첫째 주에 선보일 자료를 준비하던 중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이번 주 금요일이라니. 월요일은 브랜드 컨설팅 일정, 수요일 오전은 자문회의, 저녁에는 첫째와 공연까지 예정되어 있어 숨 쉴 틈이 없었다. 짬짬이 제안서를 채워가면서도, 도무지 빈칸이 채워지지 않아 불안이 더해졌다.
정렬을 원형으로 할지 직사각형으로 할지, 색상을 회색으로 할지 그린으로 할지, 볼드값을 0.5씩 바꿔가며 수정하는데 시간은 흘렀다.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형식에 집착하는 내 모습이 오히려 나를 더 무겁게 만들었다. 결국 목표했던 분량을 채우지 못한 채, 늦은 밤 친구의 학원에 모였다. 나는 제안서를, 친구는 홍천 교육지원청에 보낼 포스터를, 언니는 강의계획서를 붙들고 있었다. 자정을 넘기면서 서로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를 만큼 비몽사몽이었지만, 끝내 제안서를 다 채운 후에서야 헤어졌다.
불과 두 달도 안 된 시간에 아이디어가 방향성을 갖추고, 구체적인 제안서로 정리되어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내일의 미팅을 떠올리자, 오히려 지금 필요한 것은 ‘딱 한 발의 뒷걸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힘주지 않고, 큰 기대도 하지 않고, 과도한 상상도 내려놓고. 설레임과 긴장 속에서 한 발만 뒤로 물러서면, 오히려 더 멀리 보고, 더 깊이 생각하고, 더 넓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새벽이다. 아까 쓰다 멈췄던 이 글을 지금 다시 마무리하며 시간은 또 훌쩍 지나갔다. 내일도 어김없이 휘리릭 지나가겠지만, 잠시 워워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난 마음으로 즐길 수 있기를. 오늘은 이쯤에서 놓고, 편안히 자야겠다.
내 안의 한 줄
진짜 적정선은 잠시 멈춰 한 발 물러설 때 보인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