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로그 #10] 부끄럽지만 진짜 시작이었다.
발표의 순간
9월 7일, 드디어 리미(Re:me)를 사람들 앞에 내놓았다. 준비는 늘 그렇듯 부족했고, 시간은 말도 안 되게 빠듯했다. 2시간짜리 워크샵을 40분으로 압축해 보여주려니, 마치 네 컵 분량의 라떼를 한 샷 에스프레소 잔에 우겨 넣는 기분이었다. 쓴맛은 강했지만 향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앞부분에서는 “엄마”라는 공감의 단어에 몇몇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깊이를 담기엔 시간이 턱없이 짧았다. 뒷부분 서비스 설명에서는 “목적이 모호하다”는 냉정한 피드백이 이어졌다. 솔직히 말하면, 참패였다. 그러나 그 참패 속에서 묘하게 안도도 느꼈다. 드디어 현실과 맞닿았다는 증거였으니까.
발표 이후
발표를 마치고 우리는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커피잔 위로 피어오르는 김보다 더 뜨거운 건 각자의 심정이었다. 허술했던 순간들이 눈앞에 계속 재생되면서 웃음 반, 탄식 반이 섞여 나왔다. 준비하는 동안 매일 밤 시간을 쪼개며 달려왔는데, 결과는 한마디로 “냉정한 현실”이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도 대화는 그 어느 때보다 진솔했다. “이건 아니었다”라는 말도 서슴없이 나왔고, “그래도 여기까지 왔네”라는 위로도 곁들여졌다. 발표를 들었던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적나라한 피드백을 받는 순간, 가슴 한쪽은 아렸지만, 동시에 감사했다. 우리가 스스로 놓치고 있던 지점을 콕 찔러준 말들이었으니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 ‘부끄럽지만 진짜 시작은 오늘이었다’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잘 된 건 거의 없었지만, 잊지 못할 건 확실했다. 실패의 무게만큼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선명해졌으니까.
그날의 피드백
| 강점
1) 엄마라는 정체성
-“엄마”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공감의 언어였다.
-누구든 엄마를 떠올리면 겹쳐지는 보편적 경험이 있고, 그만큼 진입 장벽이 낮았다.
-육아·가정·일상은 곧 브랜드 스토리의 원천 자산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2) 실천성
-단순한 강의가 아니라, 그림 그리기·인형 만들기·글쓰기처럼 몸을 쓰는 활동이 곁들여져서 ‘듣는 프로그램’이 아닌 ‘참여하는 프로그램’으로 기억된다.
-짧은 시간에도 결과물이 손에 남으니, 성취감과 자기발견이 동시에 일어난다는 긍정적인 평가.
3) 정체성 발굴의 가치
-“엄마로서의 시간은 있는데, 나만의 시간은 없다.”
-바로 이 지점이 사람들의 가슴을 때렸다.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경험 자체가 차별화된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걸 다시 확인했다.
4) 확장 가능성
-단순 ‘힐링 워크샵’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개인 브랜드 구축 → 가족·지역·커뮤니티 자산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즉, 작은 모임에서 시작했지만 사회적 의미까지 연결될 수 있는 씨앗이 보였다.
| 개선 및 방향
1) 체계화된 단계 제시
-지금은 맛보기 수준이라 “그리고 나서 뭘 더 할 수 있죠?”라는 질문이 남는다.
-4주·12주 심화 프로그램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반드시 필요하다.
2) 콘텐츠 세분화
-모든 엄마가 똑같지 않다.
-30대 초반: 커리어·결혼 전환기에서 정체성을 찾는 니즈
-30~40대: 육아·일상 속 자기찾기
-40~50대: 제2의 인생 설계
-상황과 연령에 따라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3) 성공 사례 활용
-지금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근거가 약하다.
-엄마로서 자기 브랜드를 만든 사례를 보여주면,
참여자가 구체적인 롤모델을 발견가능
-단순 감상이 아니라, “이런 식이라면 나도 가능하겠다”라는 연결고리가 필요하다.
4) 확장 전략: B2C → B2B
-지금은 엄마 개인 대상에 머물러 있지만, 기업·
기관으로 확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피드백
-예: 여성 인재 유지, 워킹맘 리더십 강화 프로그램과
연결 가능
-즉, 개인의 브랜딩을 조직의 성장과 연계시키는
설계가 필요하다.
5) 스토리텔링 강화
-지금은 경험담이 많지만 구조가 약하다.
-“개인 썰 풀기”가 아니라, 메시지 → 활동 → 가치로
이어지는 구조화된 스토리라인이 필요하다.
-엄마들의 이야기가 힘을 가지려면, 더 선명한 서사의
뼈대를 세워야 한다.
| 우리가 얻은 통찰
-“참패”는 좌절이 아니라, 서비스의 모양새를 바로잡아주는 거울이었다.
-발표가 끝난 카페 대화와 전화를 통한 피드백이야말로 우리가 진짜 듣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리미는 아직 허술하지만, 엄마의 경험을 브랜드로 전환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확인했다.
-우리의 진짜 경쟁력: ‘완벽한 워크샵’이 아니라, 허술함 속에서 진짜 이야기가 나오게 하는 힘일지도 모른다.
| 다음을 위한 질문
-워크샵에서 “맛보기” 이후 참여자가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어떤 넥스트 스텝을 설계할 것인가?
-B2B 확장 가능성을 현실화하기 위해, 어떤 기관과 협력 구조를 먼저 구축할까?
-우리의 진짜 스토리를 어떻게 구조화해 더 많은 공감과 설득력을 만들 수 있을까?
오늘의 기록: 아픈 만큼 더 선명해진, 우리 프로젝트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