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이라는 선물

[D-364] 기다림은 시간을 살아가는 힘인 것 같아요.

by Mooon

D-364. Sentence

기다림은 시간을 살아가는 힘인 것 같아요.

IMG_2508.heic @프릳츠 도화점

슈톨렌의 계절이 왔다. 만들기 참 복잡하고, 숙성과정이 필요한 까다로운 크리스마스 시즌 한정 전통빵. 그래서 가격도 만만치 않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그만큼의 가치를 체감하지 못해 선물한 적도, 직접 사본 적도 없다. 그럼에도 슈톨렌이 보이기 시작하면 연말이 왔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진다. 계절이 말을 걸어오는 방식 같달까.


오늘은 이번 학기 첫 종강을 마쳤다. 한숨 돌릴 겸 공덕으로 향했다. 이번 주 금요일, 넥스트로컬 성과공유회 발표 리허설이 있기 때문이다. 공덕에 올 때마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장소가 있다. 애정하는 프릳츠 도화점. 그곳에 간다는 생각만으로도 작지만 분명한 즐거움이 생긴다. 리허설 전, 프릳츠에 도착하자 슈톨렌 판매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아, 연말이구나. 그리고 그 옆에 붙어 있던 문장 하나. 기다림은 시간을 살아가는 힘인 것 같아요.


기다림은 설렘이기도 하고, 두려움이기도 하다. 조바심이 되었다가, 지루함으로 변하기도 한다. 문득 지금껏 내가 겪어온 기다림의 색깔은 무엇이었을지 돌아보게 된다. 며칠 전, 모 대학의 전임교수 초빙 공고를 보았다. 이상하게도 며칠 동안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내가 생각해왔던 학교도 아니었고, 몇 년 동안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전임 공고였다. 왜 이렇게 마음에 걸리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오래전 몇 번의 시도 이후, 학생들을 가르치는 지금의 자리에도 충분히 만족하자고 스스로를 다독여 왔던 것 같다. 제출 마감은 오늘 저녁 6시. 쓸까 말까 고민하다 우선순위에서 밀려났고, 그러다 결국 어젯밤에서야 지원서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학교 사이트에 접속하려는 순간, 또 하나의 난관. 맥북으로는 시스템 접근 자체가 불가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싶었다. 내일 PC방에 가야 하나, 이쯤에서 하지 말라는 신호인가 혼자 한참을 고민하다가, 문득 예전에 쓰던 오래된 윈도우 노트북이 떠올랐다.


맥북에 있던 자료들을 메일로 하나하나 옮기고, 익숙하지 않은 낡은 노트북으로 시스템에 맞춰 작성하려니 한자 이름 하나 입력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만할까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되뇌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오기가 발동했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는 근거 없는 오기.


교육 경력은 학기별로 분리해 작성해야 했다. 6년 동안 수업했던 학교 이력을 열두 번이나 반복 입력했다. 수업 시수와 부서가 명시된 강의경력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 다시 학교 시스템에 접속하고, 연구재단에 들어가 연구 수혜 증빙 서류를 발급받았다. 게재된 연구논문 전문을 업로드하려다 용량 초과로 또 한 번 막혔다.


이렇게 저렇게, 결국 제출 완료 버튼을 눌렀을 때는 새벽 3시가 다 되어 있었다. 프릳츠에 앉아 제출이 잘 접수되었다는 확인 전화를 끊고 나니, 또 하나의 기다림이 시작되었다는 게 실감났다. 나는 늘 고민 끝에 같은 선택을 한다. 안 하고 후회하기보다, 하고 후회하는 쪽. 안 하는 것이 더 편할 때도 많지만, 결국 시도해보는 일은 결과와 상관없이 늘 플러스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12월 말에 서류 전형 결과가 나온다고 한다. 지금 나의 기다림은 어떤 기다림일까. 무언가 새로운 내일이 열릴 수도 있다는 아주 작은 설렘. 기한 안에 제출했다는 안도감. 결국 행동한 선택이 맞았다는 뿌듯함. 기다림은, 행동한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선물처럼 느껴진다. 그 선물을 마주할지 말지는, 언제나 나의 선택이니까.



내 안의 한 줄

기다림은 행동 이후에만 남는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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