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63] 다정함은 새로운 저항의 방식이다.
D-363. Sentence
다정함은 새로운 저항의 방식이다.
다정함은 새로운 저항의 방식이다. 가장 공감되면서도, 가장 어려운 말이다. 다정함은 단순히 착하고 친절한 태도가 아니다. 무례함과 냉소, 경쟁과 효율이 기본값이 되어버린 사회에서 타인에게 따뜻하게 반응하는 선택은 이미 비주류에 가깝다. 차가움이 규칙인 사회에서 다정함은 반항이라는 말. 그 반항은 세상의 폭력성과 냉담함을 해체하는 힘이고, 거칠음을 정면으로 맞서 이기는 방식이다.
그래서일까. 이 말이 아름답기보다는 먼저 아프게 다가온다. 다정함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잘 맞지 않는 옷처럼 느껴진다. 보기에는 좋은데, 막상 입으면 어색한 옷. 나와는 결이 다른 단어처럼 느껴진다. 여자이지만, 나는 꽤 남성에 가까운 건조함을 가지고 살아왔다. 차갑게 느껴진다는 말을 자주 들었고, 가르치는 사람으로 10년 가까이 살다 보니 누군가를 ‘이해하기 전에 설명하려 드는’ 직업병도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애교라는 감각은 태어날 때부터 옵션에 없었던 사람이다. 고등학교 시절 별명이 ‘일반군인’이었던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해야 할 말을 하기 전까지는 수없이 많은 생각으로 괴로워하면서도, 막상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늘 딱딱하고 건조하다. 특히 가족 앞에서는 더 그렇다. 세 남자와 살지 않고, 만약 딸이 있었다면 조금은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답은 없지만, 질문은 자꾸 남는다. 그래서 다정함을 온몸에 장착한 사람들을 볼 때마다, 뼛속 깊이 묻어나는 부러움을 느껴왔다. 저건 타고나는 걸까, 아니면 연습으로 만들어지는 걸까. 나는 끝내 가질 수 없는 종류의 매력은 아닐까.
그런데 요즘, 나에게 없는 그 다정함을 둘째에게서 본다. 어느 날 저녁을 차려주고 “10분만 쉬자”는 말과 함께 안방 바닥에 누워 있었다. 잠시 후, 조용히 문이 열리더니 둘째가 들어와 이불을 펴서 내 위에 살포시 덮어주고 아무 말 없이 나갔다. 첫째에게서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감각. 설명하기 어려운, 그러나 분명히 따뜻한 기분. 내가 그토록 부러워하던 다정함을 내 아들에게서 발견한다는 건 생각보다 큰 위로였다.
아들 둘을 키우는 엄마의 목소리는 점점 허스키해진다는 말이 상식처럼 느껴질 만큼, 마음과는 달리 나는 점점 거칠어지고, 딱딱해지고, 굳어가는 것 같아 서글플 때도 많다. 다정한 엄마를 꿈꾸다가도, 현실에서는 기숙사 학교를 보내고싶다는 열망을 가진 나를 발견한다.
첫째의 반항기와 둘째의 철부지를 고성과 호통이 아니라 다정함으로 제압하고 싶다는 마음. 그 열망이 얼마나 큰지 모른다. 사춘기 아들에게는 무관심이 답이라고들 하지만, 냉소보다는 따뜻한 언어를 선택하고 싶다. 아직 서툴지만,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다정함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나에게 낯설다. 하지만 남들이 말하는 부드럽고 온화한 다정함이 아니어도 괜찮지 않을까. 서툴고, 무뚝뚝하고, 표현은 부족하지만 결국은 챙기고 있는 마음. 어쩌면 나에게 가능한 다정함은 츤데레 같은 형태일지도 모르겠다.
내 안의 한 줄
다정함은 연습이 필요한 태도일지도 모른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