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90] 미니멀은 덜 사는 게 아니라, 멈출 줄 아는 선택입니다.
D-390. Sentence
미니멀은 덜 사는 게 아니라, 멈출 줄 아는 선택입니다.
미니멀은 덜 사는 게 아니라, 멈출 줄 아는 선택이다. 나는 미니멀을 애정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누군가는 눈에 보이지 않으면 찾을 수 없고 기억나지 않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곳에 물건들이 가지런히, 아니, 사실은 빽빽하게 나열되어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고 말한다. 반면 나는 우리 집 세 남자가 집안 곳곳에 쓰고는 ‘잠시’ 얹어둔 물건 덩어리들을 볼 때, 속에서 뭔가가 스르륵 끓어오른다. 분노라기보다는, 정리 욕구가 끓는 소리 같은 것.
지인 중에 2월에 결혼하는 커플이 있다. 아무것도 없는 빈 집을 하나부터 열까지 채워야 하는 신혼부부는 도대체 무엇을 사야 하는지 막막해했다. 조언을 구하는 예비 신랑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집은 아무것도 없을 때 가장 아름다워.” 살면 살수록 짐은 늘어나기 마련이니까.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온 지 올해 8월이면 2년이 된다. 이사하며 정말 많이 버렸고, 꽤 열심히 정리했다. 그럼에도 집안은 어느새 새로운 짐들로 가득 차 있다. 나는 그 물건 덩어리들을 어떻게든 정리하고, 어떻게든 비워버리고 싶다.
나에게 가장 큰 관건은 둘째 아들이다. 첫째와 둘째의 나이 차가 여섯 살. 필요한 것도, 쓰임도 다르다 보니 짐을 줄이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게다가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둘째의 최애 취미는 자그마치 ‘만들기’. 방학인데도 학교 다닐 때보다 일찍 일어난다. 엄마와 약속한 방학 숙제를 후다닥 끝내는 이유는 단 하나, 만들기를 하기 위해서다. 엄마 컴퓨터로 도안을 고르고, 마음에 드는 도안을 찾으면 아빠에게 보낸다. 남편은 퇴근길에 출력물을 들고 온다. 그 도안으로 하루 종일 만들고, 또 만든다. 외할머니와 함께. 아침에 늘봄을 다녀와 열한 시부터 이른 저녁까지, 할머니와 꼼짝도 안 하고 만들기만 했다는 말에 엄마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자식과 손자에 대한 사랑이 이런 거겠지.
문제는 그 다음이다. 방학한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하루가 멀다 하고 아들 방은 만들기들로 넘쳐난다. 자르다 만 종이들, 꼼꼼하게 만들어진 인형 집, 종이 아이패드, 종이 노트북까지. 아들이 잠든 뒤 몰래 들어가 버리려 해도, 너무 열심히 만든 흔적들 앞에서 손이 멈춘다. 미니멀을 지향하지만, 이상은 이상일 뿐. 현실은 정리에 소질 없는 세 남자와, 매일 늘어놓고 치우고 늘어놓고 치우는 반복이다. 그럼에도 언젠가 두 아들이 다 커서 독립하고 나면, 반드시 정갈하게 내가 좋아하는 가구들로만 채워진 집에서 살리라, 혼자 조용히 꿈꿔본다. 그때는 물건뿐 아니라 삶의 모든 선택에서도, 멈춰야 할 때 멈출 줄 아는 미니멀한 어른이 되어 있기를.
내 안의 한 줄
미니멀은 비우는 기술이 아니라, 멈춤을 선택하는 용기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