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와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중.

[D-393]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

by Mooon

D-393. Sentence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


@___elvina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로 마음을 안정시키고 싶진 않다. 지금의 상황을 합리화하거나,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것이 결코 나의 마음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어떤 일이 닥쳤을 때 그 사람의 진짜가 드러난다. 오늘은 기다리고 있었던 면접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다. 지난주 공개강의와 면접 분위기가 좋지 않았기에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사실 그럼에도 나는 믿고 있었던 것 같다. 가능성이 있다고.


그리고 결과가 발표됐다. 떨어지면 메일로, 붙으면 유선이나 문자 메시지로 알리겠다는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오늘 오전은 그림책박물관 워크숍에 참여하고 있었고, 메일을 확인하던 중 ‘3차 전형 결과발표’라는 제목의 메일을 발견했다. 전화나 문자는 오지 않았고, 메일이 왔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 이미 결과는 알 수 있었다.


수도 없이 불합격이라는 메시지를 받아봤지만, 오늘의 메시지는 생각보다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데미지가 있었다. 기대하고 있었다. 분명 올해는 작년과는 다른 자리에서, 다른 일들을 해볼 수 있을 것이라 때로는 설레며 상상하고 있었다. 드디어 나의 이름이 붙은 연구실을 갖게 되는 것인가. 혼자 그렇게 상상하고 있었던 나를, 불합격이라는 사실이 오늘 똑바로 마주하게 했다.


떨어졌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멘토분께 전화를 드렸다. 지나간 것은 돌아보지 않는 법. 그때 왜 그렇게 대답했을까, 왜 그렇게 선택했을까 후회하고 이 감정에 빠져 있는 것만큼 어리석은 게 없다는 말씀이셨다. 그리고 그렇게 여유로울 시간도 없다는 것.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이미 쌓여 있다는 말도 덧붙이셨다. 책도 발간해야 하고, 1학기 수업 준비, 연구재단 제안서 제출, 삼척 시범사업까지. 그 말들이 머리에만 와닿고 마음에는 와닿지는 않았고, 나는 기계적으로 “네, 네”를 반복하고 있었다. 머리와 마음의 길이가 여전히 먼 나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 또 다르게 아프다.


오늘까지만은 나 자신을 좀 봐주자.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고, 정말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나만의 생각들을 모두 내려놓고, 내일부터는 꿈에서 깨자. 지금 애쓰고 있는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라는 어둡고 무거운 생각들이 나를 장악하지 못하게, 머리를 흔들며 오늘을 버텨내자.


그리고 내일부터는 다시 리셋.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 나의 내일과, 나의 앞날과, 나의 미래가 말이다. 이 사실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온전히 받아들이고, 다시 진짜 웃음을 지으며 일상을 살아내는 어른이 되어보자. 삶은 절대 녹록지 않다. 그 어떤 것도 공짜는 없듯이. 오늘 또 한 번의 값을 치렀으니, 그 가치를 받아볼 내일을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내 안의 한 줄

오늘의 좌절은, 아직 가고 있다는 증거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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