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다른 얼굴로 오는 봄에게.

[날씨] 정해진 날씨도, 약속된 계절도 없는 지금의 우리에게

by Mooon
ab9a5e939f807ade3a72a187a2ca3328.jpg @MaheshNimisha

봄은 늘 무언가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품게 한다. 꽁꽁 얼어붙었던 땅이 녹고 만물이 부드러워지는 계절, 사계절을 품은 나라에 산다는 것이 커다란 축복이라 믿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의 봄은 사뭇 다르다. 매서운 현실을 반영하듯 또렷했던 사계절의 경계는 희미해지고, 그저 뜨겁거나 혹독하리만큼 차가운 극단의 계절만이 남은 듯하다.


지금 내가 마주하는 봄날은 과연 다가올 따스함을 기대하게 하는가. 아쉽게도 대답은 '아니오'에 가깝다. 조금만 버티면 꽃이 피고 따뜻한 날이 올 거라는 위로는 더 이상 희망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지금의 추위는 봄을 예고하는 잠시잠깐의 꽃샘추위가 아니라, 그저 이유 없이 오랫동안 머무는 시린 공기 같다. 견디면 무엇이 올지, 버티면 어디에 도착할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시간. 희망이 없어서가 아니라, 희망을 확신할 수 없어서 이 계절은 더 춥게 느껴진다.


이 불확실한 추위는 집 안에서도 이어진다. 올해 중학교 2학년이 된 첫째 아들은 슬슬 '진짜 공부'를 해야 할 나이에 접어들었다. 긴 겨울방학 동안 부족한 것을 채우고 책을 가까이하는 아름다운 동화를 꿈꿨지만, 현실은 늘 상상을 배신했다. 그저 놀고 싶고, 자고 싶고, 먹고 싶은 열다섯 살 아이의 모습은 지극히 정상이며 건강하기까지 하다.


사실 내가 절망스러운 건 아들의 태도 때문이 아니다. 아이가 홀로서기를 해야 할 때, 지금의 공부가 어떤 의미가 있을지 부모인 나조차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정답을 맞히는 능력만으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었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정답의 가치는 하락하고 교과서 암기의 의미는 퇴색된 시대, 자고 일어나면 바뀌는 교육 정책 속에서 우리는 길을 잃는다.


공부를 통해 삶의 태도를 배운다고 스스로를 다독여 보지만, 앞날을 예측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가올 봄날을 굳게 믿어서가 아니라, 그저 주어진 오늘을 지나가기 위해 버틴다. 어쩌면 인생의 많은 순간은 꽃샘추위보다 끝을 알 수 없는 긴 추위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매일 다른 얼굴로 찾아오는 이 변덕스러운 봄처럼, 나의 오늘 또한 정해진 정답이 없기에 오히려 매 순간이 유일한 것 아닐까. 화창한 봄날이 아니어도 괜찮다. 이 시린 공기를 묵묵히 통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계절을 살아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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