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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Oct 09. 2018

마을은 어떤 곳일까?

제주해군기지가 들어선 아픔의 땅, 강정마을


마을은 단순한 물리적 1차 산업 공간을 넘어
이를 바탕으로 형성된 문화 공간이자
심리적 뿌리같은 곳이 아닐까?


 제주로 여행 올 때마다 마음의 빚처럼 남아 있는 곳이 있었다. 바로 해군기지가 들어 선 강정마을이다. 제주로 이주한 후 처음으로 한라산을 넘어 서귀포에 있는 강정마을로 차를 몰았다. 제주 한살림 생협에서 온 국제관함식 반대 집회 문자 한 통을 받고 참여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강정사거리 앞에 있는 강정평화센터에 잠시 내려 길을 물으니 커피 볶던 남자가 길을 알려준다. 해군기지 정문에 다다르자 정복을 입은 해군들이 차를 막아 섰고, 살짝 긴장한 나는 대충 얼버무리고선 근처 김영관 센터 주차장에 차를 댔다. 


 국제관함식을 앞두고 논란이 있었다.일본 해상 자위대의 군함이 욱일기를 달고 오느냐 마느냐 때문에 설왕설래가 있었고, 결국 일본이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반일 감정에 민감한 여론 때문에 오히려 문재인 정부는 지지율이 올라갈 듯 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논란이 되었던 국제관함식이 열리는 곳이 바로 제주해군기지가 있는 강정마을이라는 것을 모르는 듯 하다. 이곳이 제주를 ‘평화의 섬’이라고 명명했던 노무현 정부가 해군기지를 추진한 이후 지금까지도 서로 갈라져 고통당하고 있는 곳이란 걸 잊은 듯 하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주민이 반대한다면 개최하지 않겠다던 국제관함식이 결국 이렇게 열리게 된다. 강정주민들이 이미 한번 반대했던 것을 무효화시키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생채기가 생겼다. 국가는 또 한번 이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  


  우리에게 마을이라고 부르는 공간은 어떤 곳일까? ‘농촌, 어촌, 산촌으로 이름할 수 있는 주민들 대부분이 1차 산업에 종사하는 촌락’이라고만 정의하기엔 뭔가 빠진 듯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마을’은‘고향’과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일 것이다. 마을을 연상하면 푸근함, 아련함, 알싸함, 정겨움 등의 감정들이 슬며시 올라온다. 그러기에 삭막한 서울같은 대도시에서도 ‘마을 만들기’, ‘마을 공동체’ 같은 이름을 단 사업들이 유행하고 있다. 마을은 단순한 물리적 1차 산업 공간을 넘어 이를 바탕으로 형성된 문화 공간이자, 심리적 뿌리같은 곳이 아닐까? 이런 심리적 뿌리가 철저히 망가진 곳이 제주 강정'마을'이다.



  해군기지 앞에 피켓을 들고 서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했다. 강정 마을 사람들은 지난 11년간 하루라도 편할 날이 있었을까? 매일 서로의 얼굴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군함 한번 타보겠다고 자신들이 목숨걸고 반대했던 해군기지로 웃으며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11년간 싸워 온 이들은 이런 감정의 혼란 속에서 도대체 어떻게 삶을 지탱하며 살아 올 수 있었을까? 이들은 정말 해군기지가 다시 없어 질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아 지금까지 싸우는 걸까? 이들의 믿음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잔인한 학교 현장이 너무 힘들어 도피하듯 제주로 몸을 숨기고 떠나버린 나 같은 사람이 이해하기 힘든 사람들이 그곳에 서 있었다.  


당신은 참으로 잔인합니다


 ‘당신은 참으로 잔인합니다.’라고 쓴 만장이 바람에 아무렇게나 휘날린다. ‘당신’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 그저 나인것만 같아 마음이 콕콕 아픈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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