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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Oct 19. 2018

어땠을까?

제주에서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을까?

 집 근처에 있는 목공체험장에서 아내와 함께 일일 알바를 했다. 오늘 할 일은 목공 수업 보조. 아이들이 망치질 할 때 다치지 않도록 돌 봐 주고, 힘든 부분이 있으면 도와주는 그 정도의 일이다. 아침 9시 20분까지 체험장에 도착해 건내 준 파란색 앞치마를 입었다. 간단한 유의사항을 전해 듣자 마자 숨돌릴 틈도 없이 대형 버스에서 초등학생들이 우르르 내리고 있다. 체험장 앞에 반별로 줄을 세운 후, 차례대로 자리에 앉혀 수업을 준비했다. 


 어린 학생들을 보니 다시 학교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학생들을 인솔해 오신 선생님들이 눈에 보였다. 체험학습을 인솔해 온 선생님들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안다. 3개월 전에 나도 바로 저 위치에 서 있었다는 생각이 드니 기분이 참 묘했다. 내가 학교를 그만 둔 것이 잘 한 일일까? 나 지금 잘 하고 있는 걸까? 저 선생님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생각이 빠르게 지나갔다. 


 학생들이 모두 자리에 앉자 수업이 시작되었다. 한 교실에 150명이 넘는 아이들이 있다보니 정신이 없다. 못을 박는 망치 소리, 사각사각 사포질 소리, 아이들의 재잘대는 소리로 체험장이 떠나갈 듯 하다. 그래도 뭔가 문제가 생겨 학생들이 손을 들어 도움을 요청할 때, 내가 그 문제에 대답해 줄 수 있었던 것이 나름 뿌듯했다. 오랜만에 ‘선생님’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더 기분이 좋았나 보다. 자기가 만든 연필꽂이를 자랑하며 칭찬받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참 귀여웠다.  


 정신없던 2시간이 지나갔고 아이들은 돌아갔다.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후 체험장에서 받은 알바비 4만원이 든 봉투를 달당달랑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아내에게 이런 말을 건냈다. 


 “알바를 하고 보니 교사가 참 다르게 보였어. 내가 그 자리에 있을 땐 몰랐는데, 약간 거만해 보인다고 할까?”

 

 아내가 답했다.


 “그걸 여태 몰랐어? 왜? 옛날로 돌아가고 싶어? ” 


 여태 잘 몰랐다. 나름 최선을 다해 교직 생활을 한다고 생각했었기에 자부심이 있었다. 그 자부심이 다른 사람에겐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을 별로 해 본 적이 없다. 물론 그곳에 있던 선생님들이 잘 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만 내가 서 있는 위치가 달라졌기에 스스로 느끼는 어떤 감정일 것이다. 


 2개월 정도 쉬다 보니 ‘뭔가 돈벌이를 해야하는 거 아닌가?’하는 부담이 생긴다. 올해까지는 그냥 맘 편히 쉬기로 선언했지만, 아내도 일자리가 없는 지금의 상황이 신경이 쓰이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일자리 이야기만 나오면 내가 나갔으면 하는 바램을 비친다. 그럴 때마다 날카롭게 반응했지만 심리적으로 부담이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어땠을까? 만약  안정적인 교직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그런 상상이 죽은 자식 부랄 만지기라는 걸 알면서도 계속 하게 되는 건 미련이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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