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중산간에서 만난 동물 관찰기
해발 300미터가 넘는 제주 중산간 지역에 살다보니 여러 동물 친구들이 우리집을 방문한다. 집 주위에는 콩, 도라지, 무 등 밭작물을 재배하는 농경지가 많아 동물들의 먹거리가 풍부한 편이다. 홑담 너머 관리되지 않은 밭에는 키 큰 풀이 자라 덩치가 큰 노루 같은 동물들이 몸을 숨기기에 알맞다. 가끔 그 친구들이 우리집 담을 넘어오기도 한다.
| 노루와 텃밭을 공유하다.
“산희네 텃밭에 지금 노루가 와 있어!”
어느 날 아침밥을 먹고 있을 때 옆집에서 보낸 카톡 메세지다.
노루는 주로 아침에 자주 만난다. 잠을 깨 창문을 열거나 아침 먹은 후 설거지 할 때, 여유롭게 풀을 뜯고 있는 녀석들과 눈이 자주 마주친다. 두 마리가 짝을 지어 다니는데 한 마리는 아직 어린 듯 덩치가 작다. 큰 친구는 뿔이 나 있어 수컷인 듯하며 두마리 모두 엉덩이가 파운데이션 쿠션처럼 뽀얗다. 처음에는 나를 보고 급하게 피하거나 위협하듯이 ‘큭큭’ 소리를 내더니, 요즘은 빤히 서로 쳐다보기만 한다.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서로 친구가 된 듯하다. 물론 순전히 나만의 생각이다. 노루들은 자기만의 영역이 있단다. 이 동네엔 곳곳에 노루가 많은데, 우리집 홑담 너머에 있는 풀밭이 이 친구들의 영역인가 보다. 낯을 익혔으니 이젠 이름이라도 붙여줘야 할까 보다.
처음엔 고라니인 줄 알았는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제주도엔 고라니가 거의 없단다. 옛날엔 제주에서 노루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었는데, 멧돼지나 다른 포식자들이 없다보니 개체수가 너무 많이 늘어나 농가에선 골칫거리가 되어버렸다. 얼마 전에는 길거리에서 자동차와 부딪쳐 로드킬 당한 노루를 본 적도 있다.
| 고양이의 보은?
언제부턴가 우리 집 앞에 고양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 나타난 친구는 노란 고양이다. 우리집 딸래미가 ‘치즈’라고 이름 붙여줬다. 치즈는 겁이 좀 많아서 사람과 일정거리를 두고 움직인다. 햇볕이 따뜻한 날에는 우리집 텃밭을 어슬렁거리거나, 현무암 판석 위에 배를 깔고 있는 모습을 가끔 볼 수 있다.
두번째 만난 고양이는 ‘소다’, 흰색 고양이다. 근처 초등학교 앞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친구인데, 가끔 우리집에 들른다. 이 녀석은 손을 타서 그런지 사람에 대한 겁이 별로 없다. 부르면 꼬리를 세우고 다가와 쓰다듬어 주면 배를 뒤집거나 한다. 배가 고프다는 듯이 애처러운 눈빛으로 울기라도 하면 간식이라도 주고 싶지만, 알러지가 있는 아내의 불호령 때문에 참고 있다. 우리집 아이들이 몰래 간식을 주기도 하는데 알면서도 모르는 척 했다.
요즘 고양이에 관심이 생겨 아이들이랑 고양이 영화를 가끔 본다. 최근에는‘나는 고양이로소이다’라는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본 후 옆집에 사는 이웃이랑 ‘우리마을도 영화에 나오는 일본이나, 대만처럼 고양이 마을을 만드는 보는 건 어떨까?’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나와 아들이 잠자고 있는 방 앞 툇마루에 쥐 한마리가 예쁘게 올려져 있다. 아침에 청소하다 먼저 본 아내가 괴성을 지른다. 옆집에 물어보니‘고양이의 보은이 아닐까?’ 한다. 보은받을 만한 일을 한 적이 없는데, 그저 신기하다. 지난 밤 우리 이야기를 엿들은 걸까? 그냥 우연이겠지!
| 개근하는 까순이와 까돌이
매일 우리집을 들르는 친구는 까치다. 총총거리는 걸음으로 뛰어서 텃밭을 오가거나 잔디밭 사이에 곤충이나 지렁이를 잡아먹는 것 같다. 이 녀석들은 우리집 뒤에 있는 큰 측백나무에 사는 것 같은데 아직 어리다. 가끔 집을 짓기 위해 나뭇가지를 물어가는 모습을 봤는데, 집을 다 완성된 것 같진 않다.
우리집과 옆집을 왔다 갔다하는 모습이 귀여워서 ‘까순이’와 ‘까돌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물론 누가 수컷인지, 누가 암컷인지 모른다. 그저 남매 사이라고 생각해 아내가 그렇게 이름을 지었을 뿐이다. 부부일지도 모르겠다.
| 전깃줄을 점령한 가을의 무법자 떼까마귀
제비가 떠나고 10월 들어 전깃줄을 차지한 녀석들은 까마귀떼이다. 여름에도 까마귀가 몇 마리가 있었지만 최근에 수 백 마리가 떼를 지어 몰려와 조금 놀랐다. 검색해 보니 이 친구들은 겨울에 시베리아나 몽골에서 추위를 피해 우리 나라에 찾아오는 겨울 철새인 떼까마귀란다.
이 녀석들은 떼지어 하늘을 빙글빙글 돌다가 전깃줄에 줄지어 내려 앉거나, 농경지에 내려 앉아 먹이를 먹는다. 가을 걷이를 끝낸 우리집 앞 콩밭에는 매일 수 백 마리 까맣게 내려 앉아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살금살금 다가갔더니 전봇대에서 망을 보던 한 녀석이 깍깍 소리를 냈다. 그러자 식사를 하던 까마귀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전깃줄에 올라 앉는다.
망원경으로 녀석들의 모습을 관찰해 보니 깃이 반짝이듯 초록빛을 띤다. 바람을 타고 날개를 펴는 모습이 전투기가 비행하는 것처럼 멋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까마귀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가 많아 깨름찍했는데, 자주보니 이젠 괜찮아진다. 물론 이 녀석들의 세워둔 자동차에 볼 일을 보는 바람에 가끔 닦아주어야 하는 수고가 생기긴 했다. ㅠㅠ
이 친구들 말고도 주변에서 꿩과 족제비를 자주 만났다. 너무 빨라 제대로 사진을 찍지 못해 이번 이야기에는 올리지 못했다. 다음 기회에 이 친구들 이야기를 내 놓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