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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Nov 13. 2018

곶감 말리기 13일차

그늘에서 말리기를 포기하고 '햇볕 정책'으로 바꿨다


곶감을 깍아 말린 지 13일이 지났다. 처음 일주일 정도는 제주 날씨가 너무 좋아 그늘에서도 깨끗하게 잘 말랐다. 그런데 이틀 동안 비가 내려 실내에 들여 놓고 보니 문제가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 곶감을 콕콕 찔러보는 딸을 혼낸 후, 녀석들의 상태를 살펴보니 군데 군데 푸른색 곰팡이가 피어 있는게 아닌가! 바람이 통하지 않은데다가 습기가 많아 생긴 일이다. 결국 긴급 처방이 시작되었다. 



| 비오는 날엔 선풍기로 말리기


 첫번째 처방! 여름이 지나 창고에 처박아 두었던 선풍기를 다시 꺼냈다. 비 내리는 이틀 내내 선풍기를 이용해 강제 통풍을 시켰다. 바람이 잘 통할 수 있도록 감과 감 사이의 간격을 띄워 주고, 바람골을 만들어 감을 배치했다. 인공 에너지를 이용하지 않고 자연 건조를 시키고자 했지만 습한 날씨에는 배겨 낼 재간이 없다.  


 내가 먹을 곶감이니까 이놈들은 때깔이 나빠도 상관없지만, 그걸 팔아 돈을 벌어야 하는 농민들은 날씨가 나쁘면 애가 탈 것 같다. 그래서 자연 건조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건조 기계를 이용하는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듯 하다. 

비오는 날에는 실내에서 선풍기를 이용해 감을 말리고 있다



| 깨끗한 면포로 곰팡이 닦아주기


두번째 처방! 얇은 면포를 깨끗한 물에 씻은 뒤 푸른 곰팡이를 하나 하나 일일이 닦아 주었다. 마치 오랜 병원 침대 생활에 어르신들의 등에 욕창이 생기는 것처럼, 곰팡이는 주로 바닥과 닿아 통풍이 잘 안 되는 부분에 많이 생겼다. (이래서 줄에 달아서 곶감을 말리나 보다.) 아직 껍질이 두껍게 마르지 않고 겉만 살짝 마른 상태라 세게 닦아내면 껍질이 벗겨졌다. 그래서 땀띠 난 애기 엉덩이에 파우더 바르듯이 젖은 면포로 톡톡 두드렸다. 습기가 많아서인지 탄력을 잃고 축축 늘어지는 곶감의 모습이 마치 요즘 내 살갗 같다.  


젖은 깨끗한 면포를 이용해 곰팡이를 매일 아침 일일이 닦아주었다.
살갗이 축축처지고 공팡이에 공격당했던 불쌍한 곶감의 모습



| 이젠 햇볕 정책으로 !!


세번째 처방! 결국 그늘에서 예쁘게 말리는 정책을 포기하고 ‘햇볕 정책’을 시행했다. 일어나자마자 졸린 눈을 비비며 햇빛이 잘 드는 앞 마당에 감을 가지고 나와 말렸다. 골고루 햇빛을 받도록 상태를 확인하고 감을 자주 뒤집어 주어야 했다. 다행히 며칠간 날씨가 다시 좋아져 많이 회복(?)된 상태다. 껍질이 어느정도 두꺼워지면 파란 곰팡이 자국들을 소주를 이용해 더 세게 닦아 내야 할 듯 하다. 그늘에서 말리다 곰팡이 때문에 먹지 못할 바에야 먹음직스러움을 포기할 수 밖에 없다.  


햇볕이 바로 비치는 남향의 마당에서 곶감을 말리고 있는 모습
일부는 멀쩡하고 일부는 곰팡이의 공격을 받았다



 현재 상태는 곰팡이의 공격을 받았던 곶감이 절반, 깨끗한 놈들이 절반이 된다. 이제 목표는 최대한 햇빛에 빨리 말려 냉동실에 보관하거나 먹어 버리는 것!! 아무튼 곶감 하나 먹기 참 힘드네. 언제쯤 이놈들을 먹을 수 있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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