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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Nov 19. 2018

백약이오름

풍광만으로도 약이 되는 오름

 생각보다 내가 사는 곳은 흐린 날이 많다. 중산간에 살고 있다 보니 남쪽 바다에서 바람이 불 때는 공기가 한라산을 타고 오르며 구름을 만들기 시작한다. 반대로 한라산을 넘어온 구름이 다 사라지지 않은 경우도 많다. 흐린 날에도 자동차를 타고 해발고도가 낮은 해안으로 내려가면 구름이 걷히는 걸 자주 경험한다.  


 날씨는 기분에도 상당히 영향을 미친다. 흐린 날씨는 특히 힘들다. 그런 날에는 스스로 힘들다는 걸 인식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가족들에게 짜증을 내고 있는 나를 본다. 잔소리도 더 많아진다. 이런 내가 너무 싫어지는 경험을 반복해서 하는 것도 정말 싫을 때가 있다.  


 반대로 파란 하늘이 드러나고 해가 비치는 날에는 컨디션이 좋아진다. 특히 오전이 좋은데, 오후로 넘어가면 약간의 권태감이 오는 편이다. 좋은 날씨가 너무 좋은 게 아까워 ‘빨리 사라지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도 든다. 내가 가장 안정되어 있고 움직이기 가장 좋은 시간은 그래서 맑은 날 오전인 것 같다.


 백약이 오름도 그런 날 오전에 아내와 함께 올랐다. 몸의 컨디션도 좋았지만 하늘의 컨디션은 더 좋았다. 생각과는 달리 제주에도 중국의 미세먼지가 영향을 미치는 날이 많다. 상대적으로 자연환경이 아름다워 이걸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뿐이다. 그 날처럼 이곳에서도 미세먼지 없는 날은 행운이다. 날씨가 반은 먹고 들어간다.



| 한라산과 성산일출봉을 함께 볼 수 있는 오름


 백약이 오름은 가을하면 생각나는 억새를 볼 수 있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아래에서 올려다 보기만 해도 편안할 뿐만 아니라 올라가서도 멋진 풍광을 볼 수 있다. 침목으로 굽이 굽이 놓여 있는 긴 계단은 마치 목장을 가로지르는 듯 하다. 계단을 따라 천천히 걸어 15분 정도 올라가는 동안에는 저 멀리 성산일출봉과 수많은 오름들이 반겨준다. 마치 이곳이 정말 제주라는 걸 알려주는 듯하다.  

목장을 가로지르듯 놓여 있는 침목 계단
오름을 오르다 보면 성산일출봉이 가까이 보인다
주변의 오름들은 이곳이 제주임을 알려준다

 정상에 올라가면 더욱 편안하다. 잔디가 깔린 분화구를 둘러싼 길을 따라 동네 운동장 돌 듯 편하게 걸을 수 있다. 경사도 급하지 않은 데다가 힘들면 그저 앉아서 쉬면 된다. 가장 좋은 건 무언가에 가려지지 않은 한라산을 볼 수 있다는 것! 아마 카메라 셔터를 멈추지 못할 것이다. 삼나무를 심은 많은 오름들과는 달리 이곳에는 소나무가 심겨져 있다. 분화구는 한 곳이 트여있는 말굽형이 아니라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둥근 원형의 분화구가 잘 보존되어 있다
둥근 분화구를 따라 잔디가 깔려져 있어 걷기에 좋다
무엇보다 가려지지 않은 한라산에 넋을 잃고 말았다



| 풍광만으로 약이 되는 오름


 백약이 오름이란 이름은 이 곳에서 백가지 약초가 자생한다고 해서 붙은 거란다. 하지만 백약이 있어도 우리 같은 까막눈으로는 찾을 길이 없다. 그저 한라산과 성산일출봉을 함께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과 맑은 하늘 그리고 시원한 가을 바람이 나에게 약이 된 건 확실하다.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산1

주차장 : 있음

정상 해발고도 : 356.9m

오름 아래서부터의 높이 : 132m

분화형태 : 분석구(scoria cone/cinder c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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