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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Nov 21. 2018

곶감 말리기 21일차, 보관하기

21일 동안의 곶감 말리기를 마무리하다

| 곶감 테러의 발생 전모


 결국 사고가 발생했다. 어젯밤 12시 쯤 입이 심심해 툇마루에서 말리던 곶감 하나를 빼먹었을 때도 분명 멀쩡했으니 새벽에 일어난 사건이 확실하다. 눈을 뜨자마자 일어나 곶감들에게 인사하러 나가보니 참혹한 테러의 흔적들이 생생히 남아 있었다. 곶감 3개는 말리던 상에서 떨어져 상처를 입고 누워 있었다. 한 녀석은 아예 툇마루 아래 마당까지 끌려가 있었는데 누군가 대부분을 먹어버리고 꼭지만 남은 상태였다. 유력 용의자는 하얀 고양이 소다. 낮에 잘 보이지 않던 녀석이 최근 늦은 밤에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었다.


소다(하얀 고양이)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곶감 테러의 참혹한 현장


 소다가 이런 사고를 쳤지만(물론 소다가 범인이 아닐 수도), 이런 소다가 밉지 않다. 소다에겐 요즘 큰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다를 돌봐 주시던 학교 앞 돌집 할아버지께서 지난 주에 갑자기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을 포함한 많은 동네 이웃들은 소다가 어떻게 될 지 걱정들이 많았다. 다행히 근처에 사는 가족이 겨울에는 식사를 챙겨 주기로 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 젤리처럼 쫄깃한 반건시가 되다


 각설하고 다시 곶감으로 돌아와 보자. 11월 1일 곶감을 깎았으니 말린지 21일(딱 3주)째다. 지난 주부터는 곶감 색깔이 본격적으로 진한 갈색으로 변했다. 진득하고 끈적한 단물들이 밖으로 배어나오더니, 껍질은 젤리처럼 더욱 쫄깃하게 두꺼워졌고 속은 말랑해졌다. 곰팡이도 거의 피지 않았는데 아마 낮과 밤의 일교차가 커지고 바람도 잘 불어준 덕일 것이다.

제주의 햇살과 바람으로 말린 곶감, 젤리처럼 쫄깃한 껍질이 두꺼워졌다

 이제 먹기에 적당한 시간이 된 듯하다. 며칠 전부터 작은 감 몇 개는 거의 반건시 상태가 되어 하나씩 골라 먹었었다. 그늘에 매달아 말리지 않고 햇빛에 널어 말리다 보니 투명하고 때깔 좋은 모습은 아니지만 달콤함은 못지 않다. 홍시를 좋아하지 않는 우리 아이들도 맛있게 먹는다.  



| 반건시 곶감 보관하기

일회용 플라스틱 밀폐용기를 재활용해 곶감들을 냉장고에 보관했다
남은 곶감들은 대바구니에 담아 바람이 잘 통하는 외부 선반에 보관해 두었다

 이쯤에서 냉장고에 넣어 보관하기로 결정했다. 더 이상 야생동물들의 먹이가 되게 할 순 없다는 계산도 있었다. 이 날을 위해 버리지 않고 모아 두었던 일회용 플라스틱 밀폐 용기에 곶감을 담았다. 냉장고에 두면 음식 냄새가 밸 수 있기 때문에 밀폐가 되는 것이 중요하단다. 비교적 큰 용기는 장기간 보관하기 위해 냉동실에 넣어두고 겨울에 꺼내 먹을 예정이다. 냉장실에서는 1주 정도 밖에 보관이 되지 않는다고 하니, 작은 용기에 담아  빨리 먹어야겠다. 다 담지 못하고 남은 곶감들은 동물들이 먹지 못하도록 대나무 소쿠리에 담아 외부에 있는 높은 선반에 올려 두고 먹을 예정!



| 쌀쌀한 날씨엔 따뜻한 차와 함께


따뜻한 보이차와 함께 먹는 달달한 곶감

 아침 청소를 마친 후 쌉쌀한 차를 마시면서 곶감을 빼먹는 기분은 행복하다. 초콜렛이나 설탕처럼 확 퍼지는 단맛이 아니라 천천히 녹아드는 맛이라 더 좋다. 한달 가까이 매일 곶감을 아기처럼 돌보면서 오는 행복감도 나에겐 큰 선물이었다. 내년에는 시렁을 만들어 주렁주렁 곶감을 널어 말리는 꿈을 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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